성 요한 교회, 마리아의 집, 에베소(셀축 Selcuk), 터키
한때 교회에 열심히 다닌 적이 있다. 일요일에 3번의 예배에 참석하고, 눈물 질질 흘려대며 위선적이고 정말 나쁜 짓을 한 나를 못 견뎌서 열심히 회개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회에 있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다. 출근길에 성경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던 시절. 나의 작은 머리로 그 내용을 전부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읽다가 포기했던 구약성경과 달리 신약성경은 재미까지 느껴가며 2번이나 다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어서일까... 회의를 느꼈고 교회에 발길을 끊고 지금까지 왔다.
아무튼 그때 다닌 교회와 그때 읽고 들었던 성경과 말씀 덕에 베드로라는 인물을 알게 되고 좋아하고, 유럽에서 마주친 그 수많은 교회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때로는 교회에 조각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체도 할 수 있었다.
터키에서 로마 유적을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온 셀축. 이스탄불보다 작은 건 말할 것도 없고, 트로이 유적을 봤던 차나칼레보다도 직은 도시. 하지만 성경을 읽어본 적도 없고, 교회, 성당에는 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들어본 이름, 마리아와 요한의 자취가 남아있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하러 오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보지 못했던 그룹 투어를 이 작은 도시에서 꽤 많이 마주쳤고 이방인의 언어도 드문드문 발견했다. 한국 기독교인들도 많이 방문하는지 이스탄불에서도 보지 못했던 한식당을 발견했다.
나이트 버스에서 잠을 설쳐가며 도착한 셀축이라 오전에 눈 좀 부치고 밖으로 나왔더니 날씨가 참 좋다. 주위를 크게 둘러보니 근처 언덕에 성이 하나 보인다. 냅다 그곳을 향해 갔다. 가는 중간마다 보이는 로마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기둥. 이곳은 현재 터키 땅인데 로마제국은 도대체 그 옛날 어디까지 영토를 넓혔단 말인가. 입장료를 내려 잠시 정지한 입구에서 비로소 교회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하나인 사도 요한을 기념하여 지은 "성 요한 기념 교회(Basilica of Sait John)". 사도 요한은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요한 1,2,3서의 그 요한이라고 했고, 이 도시의 옛날 이름이 '에베소'(에페수스)로 '에베소서'의 그 에베소란다. 게다가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지역이 이곳이라니 태어나 처음으로 성지에 와 있다는 감동이 몰려온다. 글자로만 봐온 에베소에 이렇게 오게 되다니 한때 열혈 신자였던 내 마음속에 그때의 바람이 분다. 막상 교회 터였던 곳을 걸어 다녀도 교회보다는 정말 성이나 그리스 신화의 신전 같은 기분이 많이 든다. 밖에서 봐도 터키 국기가 걸려 있고 높은 지대에 지어진 탄탄한 벽 때문에 전혀 교회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경기도의 남한산성이나 부산의 금정산성 같이 적과 치열하게 싸웠던 산성 같다고나 할까.
이곳이 교회라고 계속 나 자신에게 말하며 뜨거운 햇살 아래 교회터를 걸었다. 거의 무너진 터라 무얼 어떻게 봐야 할지 조금은 난감했지만, 어디에 있어도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는 참 마음에 들었다. 사도 요한의 무덤터가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교회라고 하는데, 살아생전 그렇게 핍박받고 고생했지만 죽어서 참 좋은 곳에 묻혔구나 싶었다. 그가 묻힌 곳이기에 더더욱 기독교도들에겐 남다른 의미일 이 곳. 에베소가 로마제국의 큰 도시 중의 하나였듯이 이 교회도 한때 번창했을 게 분명하지만, 흥하면 쇠한다는 역사의 진리가 그렇듯 로마제국이 점점 힘을 잃고 아랍인이 이곳을 쳐들어 왔다. 그리고 지진까지 일어나면서 이 교회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한 제국의 흥망성쇠도 느낄 수 있는 이 곳, 성 요한 기념 교회.
로마제국의 황제가 만든 교회라 그런지 기둥과 기둥의 조각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전 같은 분위기가 많이 나타난다. 사실 흔한 십자가도 없어서 이곳이 교회인가 싶기도 하지만 교회의 중간 어디쯤에서 커다란 세례소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을 좇으며 온 생애를 핍박받으면서 태어난 곳을 떠나 지금의 터키 땅까지 와서 숨을 거둔 요한. 그 당시 고달팠지만 신념으로 뭉친 삶을 산 덕분에, 몇 천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의 흔적을 찾아 이곳까지 온다. 바티칸 제국의 성 베드로 교회도 그랬지만, 신념이란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내 마음속에는 손톱만큼이라도 어떤 것에 대한 신념이 있는지 모르겠다.
성 요한 기념교회를 다녀온 다음날, 성모 마리아가 그녀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고 하는 집에 왔다. 셀축 중심가에서는 조금 떨어진 근처의 부르부르 산의 중턱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의 집. 교회를 주로 다닌 사람으로서 마리아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고 있는 게 없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었어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들 뿐이어서 마리아에 대해 궁금한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유럽 여행을 시작하고서야 그 차이점을 궁금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유럽의 그 많은 교회의 입구에 성수대가 있는 걸 보고 '이곳은 내가 아는 교회가 아니라 성당이겠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뭐가 다른 걸까 궁금해하며 기독교 종파 사이의 차이점을 몇 번 읽어 보았지만 이해도 안 되고 와 닿지도 않아서 포기했다. 언젠가 더 간절히 그것을 구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지 하며...
입구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리아 상을 지나면 각국 언어로 번역된 "마리아의 집(Meryemana)" 설명을 볼 수 있다. 한국어도 그 틈에 있는 걸 보고 새삼 우리나라에도 참 많은 기독교 인구가 있구나 싶었다. 게다가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괴상한 번역이 아니라 깔끔한 번역물을 보니 이곳에 많은 신경을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돌로 만들어진 작은 집은 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도 요한이 마리아에게 지어드렸다고 하는 돌로 만들어진 작은 집은 굉장히 아늑해 보인다. 내부는 안타깝게도 촬영 금지였으나, 작은 성모 마리아 상 외에 그다지 특별한 건 없었다. 하긴 아들을 먼저 보내고 그의 제자와 함께 낯선 타지로 와 생의 마지막을 보냈을 그녀를 생각한다면 화려한 집이 무슨 소용일까 싶다.
마리아의 집을 나와 모든 병을 낫게 해 준다는 성수대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걸어가면 곧 사람들의 소원이 빼곡히 적혀 있는 소원의 벽이 있다. 각국의 언어로 각자의 소원이 적혀 있는 소원의 벽. 나도 얼른 소원을 적어서 저 틈 사이에 끼워 넣고 벽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기복신앙이 되어 가는 종교를 비판하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릴 수는 없는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달라'라고 기도한다. 그렇게 욕심과 집착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좀 편하게 마음을 먹고자 하는 기도가 '제뜻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누가 주님의 뜻을 알겠는가. 누군가도 그렇게 말했다. '마음대로 안 되는 우리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기도 한다고. 이곳에 있는 대부분은 모두 자신의 소원을 빈다. 물론 그 소원을 빌어라고 이 공간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이기적이고, 일신의 안위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작은 머리와 마음을 가졌다. 그래서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작은 나를 인정하고 단 한 번이라도 내가 아닌 남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로에는 터키항공이 새겨놓은 투쟁의 글씨가 있다. 무슨 일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