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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Mar 31. 2017

[터키] 트로이 유적의 도시, 차나칼레

차나칼레 Canakkale, 터키

새벽에 이스탄불을 떠나는 버스를 탔다. 목적지는 차나칼레(Canakkale)라는 도시. 10만 명 정도 사는 작은 도시지만, 이 도시는 몇 천 년 전에도 사람들이 문명을 이루어 살고 있던 그리스의 도시국가 트로이가 있던 곳이다. 영화로든,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드』이든, 역사든, 컴퓨터 바이러스든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보았을 '트로이 목마'. 이 트로이 목마를 이용해 하룻밤에 정복당한 이 도시의 이야기는 몇 천년이 지나도 참으로 매력적인 소재다. 게다가 이 매력적인 이야기가 실제 펼쳐진 곳을 찾게 된 계기도 정말 영화 같아서 예전부터 궁금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좇은 사람들'이란 주제로 자기계발서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트로이를 발굴한 '슐리만'이란 남자. 그 때문에도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차나칼레

새벽 6시에 출발한 차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 중에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거대한 페리를 타고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주변 풍경을 감상하다 어느새 도착한 차나칼레. 이곳에 바로 트로이 유적이 있는 게 아니라 또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논과 밭. 지금은 너무나 전원적인 느낌의 조용한 시골인데 그 옛날 거대한 성이 있던 잘 나가던 도시국가였다니...(물론 그때도 농사를 짓고 있었겠지만) 오히려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트로이 유적지까지 가는 길은 이렇듯 논과 밭을 가로질러 가는 2시간 여의 길이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그 길에 있던 유일한 가게에서 잠시 쉬어 간다. 한눈에 봐도 급하게 일반 가정집을 가게로 만들어놓은 듯한 이 곳. 버스 기사와 이 가게 주인은 비즈니스로 맺어진 친한 사이인지 기사는 이곳에서 꽤 오래 쉬어간다. 가게 주인아저씨는 얼른 트로이 유적이 복구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복구되면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오겠냐며 눈을 반짝이던 아저씨.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으려나?

트로이 군의 전투복을 입어보세요. (feat.여기도 드러누워 있는 개) 

다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에는 누가 봐도 인공적인 나무 목마가 세워져 있다. 귀여워 보이는 목마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데 밖에서 볼 때는 꽤 커 보이던 그 목마에는 성인 5명이 채 함께 서 있기도 버거웠다. 트로이 목마가 정말 전쟁에서 쓰인 건지 전쟁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기 위해 지어낸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건장한 남성 특공대가 그 안에 들어가 있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큰 목마였을지...


재미난 전쟁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던 걸까. '어디 어디 유적지'라는 곳이 항상 그렇듯 황량한 터만 남겨진 이곳을 보고 괜히 진이 빠진다. 이곳이 어떻게 트로이인 줄 알았는지, 그것을 연구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트로이는 소설 속의 이야기라며 슐리만을 말리던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아무리 황량한 터지만 작은 광장, 우물 등은 알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오랜 시간 전 이곳에서 문명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 과연 왜 그리스가 서양문명의 시작일 수 있었던가 생각해 보게 됐다.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땅의 주인은 수도 없이 많이 바뀌었지만 결국은 터키의 땅이 되었다. 몇 천년 전에 사람들이 도시를 이루어 살던 곳인데 겨우 몇 백 년 전에야 후손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그전의 몇 천년 동안 세상에 없는 것처럼 존재해 오던 트로이. 아름다운 진주도 그걸 알아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당시 트로이를 재현해 놓은 그림

차나칼레 시내로 다시 나왔다. '없는 거 빼고 다 있어요.'라는 시내 중심의 시장에는 없는 게 없다.   

차나칼레의 다운타운

이스탄불 물가도 물론 저렴했지만 이곳은 훨씬 저렴하다. 그래서 여행 중 찢어진 바지를 버리고 새 바지를 사고 맛있고 저렴한 케밥을 먹었다. 로컬들이 좋아하는 걸로 보이는 케밥과 요거트 세트. 서로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아직도 이해는 안 간다. 시내 중심가에는 아무렇게나 경적을 울려대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주변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지막지한 간판도 많다. 이런 배경에 사람들도 동양인이다 보니 동남아의 어디쯤 온 듯한 느낌도 난다. 트로이 유적과 가까운 곳인데도 트로이 유적 복구에 대한 기대를 품은 투자 유치나 상점 매매 등의 문구를 거리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난 그저 터키의 어느 작은 도시에 있다. 

이스탄불에서부터 봤던 터키 국기는 이곳에서도 자주 보였는데, 바다 건너 산에는 군인으로 추정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산에 김씨 부자 이름을 써놓았던 북한의 어느 그림이 오버랩되었다. 작은 도시를 돌고, 바다와 연결된 강가를 걷고 그렇게 해가 졌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레스토랑의 불빛이 하나씩 켜지고 야경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는 터키 사람들이 하나둘 보인다.

이건 무슨 빵이었을까 먹어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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