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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Dec 01. 2015

[프랑스] 프랑스에서 만난 진짜 결혼식

게다가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 in Labastidette, France

2015년 7월 25일.

나름 내게는 역사적인, 내 생애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는 날..

싱가포르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13시간의 비행. 그리고 다시 국내선으로 환승하여 Toulouse란 도시에 도착. 이미 장시간 여행으로 지쳤으나, 아직 끝이 아니다. 내 유럽여행의 첫 목적지는 프랑스의 Labastidelte라는 작은 소도시.

Toulouse에서도 차로 한 시간 여 떨어져 있는 곳. 가는 길에 보이는 파란 하늘과 초원이, 비록 근사한 풍경은 아닐지라도 싱가포르의 콘크리트 숲에서 4년을 살아온 내게는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Labastidelte의 시청. 오늘, 이곳에서 친구의 결혼식이 열린다. 시청이라고는 하지만, 구청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곳. 그리고 그것만큼이나 건물보다는 넓은 논밭이 더 눈에 띄는 곳. 시청 맞은편에, 오래된 성당이있어 운치를 더한다. 

대부분의 프랑스인처럼 친구도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 커플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어서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며 담소를 나눈다. 하객들은 양가 가족, 친구들 다 합쳐 약 3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을보고 경적을 울리며 축하의 인사를 날린다. 아기자기하고 참 좋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두 신부가 도착하였다. 그렇다, 오늘 내가 참석하는 결혼식은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 작년부터 프랑스에서는 동성애자의 결혼식이 합법화되었고, 드디어 오늘, 친구는 그녀의 여자친구와 결혼을 한다. 한 쪽은 턱시도를 입지 않을까란 도대체 근거를 알 수 없는 내 상상과 달리 둘 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시청에 도착하였다.

 한 사람씩 볼을 살짝 대고 ‘Bon jour’라고 말하는 프랑스식인사.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과 인사를 하는 두 신부. 신부를 숨겨두는(!) 우리네 결혼식과는 달리 신부들이 자유롭게 하객들과 인사하고 담소를 나눈다. 모든 사람과 일일이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에서 소박한 결혼식의 매력이 보인다. 내 결혼식인데 내가 모르는 사람이 많은 일반적인 한국의 결혼식과는 사뭇 다르다.아니,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좋은데 심지어 웨딩드레스 입은 친구의 여자친구가 담배까지 피워대며 하객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게다가 임신 중인데... 웨딩드레스 입은 여인이 담배 피는 모습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모습인데, 내겐 살짝 충격이었다. 자유로워도 너무 자유롭네. ^^;

 사진기사, 결혼식 도우미, 사회, 주례사? 그런것 없다. 혹시 필요하다면 그 역할들은 모두 하객들이 한다. 친구들 중 제일사진 잘 찍는 녀석이 사진을 찍고,(보통 그런 녀석들이 카메라도 좋은 걸 들고 있으니.ㅎ) 꽃가루 뿌리기, 폭죽, 비누방울 등등 모두다 하객의 몫이다. 덕분에 나도 결혼식에서 열심히 비누방울을 불었더랬다. 열심히 나팔 불고 있는 귀여운 꼬맹이.

그렇게 기다리기를 30여분, 드디어 결혼식이 거행된다. 

“신랑/신부 입장.” 이런거 없다. 그냥 하객들과 다같이 결혼식이 진행될 홀(이라부르기 민망한 작은 방)에 들어간다. 큰 도시의 시청에는 결혼식 사회를 전담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는 시장이 직접 결혼식의 사회와 짧은 주례를 한다. 들어갈 때는 두 신부 모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갔지만, 막상 식이 시작하니, 그들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부모가 아닌 그결혼식의 증인들이다. 증인은 주로 신랑신부의 절친들이 되고, 그들은 일종의 혼인신고서에 함께 서명을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혼식

프랑스어라 시장이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친구에게 들어보니 Labastidelte에서 또 한 쌍의 커플이 탄생해서 기쁘며, 특히 첫 동성애자 커플이라 더욱 감회가 깊다고 했단다. 그렇게 20분 정도의 식이 끝나고 나머지 10분은 그자리에서 혼인신고에 증인을 포함한 여섯명이 서명을 한다. 그렇게 결혼식에서부터 혼인신고까지 30분에 끝. 이 얼마나 간단한가! 브라보! 그리고 이어지는 결혼식 파티!


 결혼식이 끝나고 두 신부가 팔짱을 끼고 나오는 길, 하객들의 폭죽과 꽃가루, 비누방울로 이렇게 결혼식은 끝이 났다. 너무나 조촐하고 아담한 결혼식을 보며, 결혼식 회의주의자였던 나도 이런 결혼식이면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우리나라의 결혼식. 평생 이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자리보다는 내가 그동안 뿌린 축의금 회수전과도 같은 결혼식. 그리고 결혼식이 다 비슷비슷해서 당장 몇 달만 지나도 그 결혼식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벤트. 나에게도 하객들에게도 잔치가 되어야 할 결혼식이 그저 웨딩사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비즈니스가 되어 버리고, 그동안 낸 축의금을 회수하는 이벤트가 되어버린 결혼식. 그리고 내 결혼식인데도 내가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하는게 아닌, 항상 누군가에게 맡기는 그런 결혼식.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때론 욕 먹어가며 열심히 번 그런 돈을 특별하지 않게 그저 남들과 똑같은 결혼식에 써야 한다는 사실에서 난 결혼식 안 하려고 마음 먹어 왔다. 그러다 이 결혼식을 만났다. 나와 정말 친한 사람들만 참석하는, 엉뚱한 곳에 내 귀한 돈을 쓰지 않는,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정말 원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그런 결혼식.


 결혼식이 끝나고 시청에서 빌려준 다목적홀로 갔다. 본격적인 결혼식파티가 열린다. 말그대로 파티.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춤추는 파티. 어제부터 이곳을 열심히 꾸몄을 부부와 그 친구들의 수고가 엿보인다. 테이블을 이어 붙이고, 각각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지정하고, 풍선과 색색의 종이들, 그리고 잘 차려진 다과들로 다목적홀은 근사한 파티장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함께 파티를 꾸미는 과정마저도 결혼하는 사람도, 하객들에게 큰 추억이 된다.

 근데 이 프랑스인들. 참 수다쟁이들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것은 알겠지만, 식사 전 간단히 칵테일이나 와인 그리고 다과와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무려 3시간이나 가진다. 아무리 결혼식의 파티는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밥부터 좀 먹고 하면 안 될까요?(역시 난 한국인.) 이런 식전의 가벼운 음주 및 수다 시간을 칭하는 ‘Apero’라는 단어가 있을 만큼 프랑스인들은 이 시간을 사랑한다. 가끔 길에서 누군가 뛰어가거나, 과속하는 자동차가 있으면 아뻬오(Apero)에 늦어서 저리 서두른다는 농담을 할 정도. :p 어쨌든 여기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없고, 나는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고.. 내겐 살짝 곤혹스런 시간이었다. ^^;

‘제발 내게 먹을 것을 줘.’

 더군다나 지금은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해가 지는 한여름의 유럽이다. 결혼식은 이미 7시에 끝났는데 해가 질 때까지 아뻬오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목적홀 뒤로 보이는 황색 평원과 석양을 보며 그런 마음도 다 가라앉았다. 그래, 아뻬오를 즐기기에 최고의 시간과 장소구나.

 드디어 해가 지고, 본격적으로 파티가 시작된다. 친구 커플의 짧은 인사와 함께 시작된 저녁식사와 다과. 그리고 본격적인 게임 시간. 분위기는 흡사 대학교 엠티에 온 것만 같다.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하객들이 게임에 활발하게 참여한다. 


위 게임은 일명 미이라게임. 2명씩 팀을 만들어 한 사람이 상대방을 두루마리 휴지로 돌돌 마는데, 이 것을 가장 빨리 하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꽤 흥미진진했지만, 휴지가 좀 아깝네. 이런 종류의 게임들로 분위기는 흡사 대학교 엠티에온 것만 같다. 그리고 막간에 이어지는 휴식시간. 그 사이 친구 커플은 이렇게 블루스를춘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사랑하는 두 신부가 그윽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추는 블루스. 동성애 커플의 춤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들의 행복한 기분에 나도 동화되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많겠지. 아무리 동성 결혼이 합법화라고해도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도, 편견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데 그 모든 것을 함께 견디고 평생 함께 하자고 약속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정말로 사랑이라는 것은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그리고 파리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둘과 태어날 아이를 잘 기를 수 있고, 작지만 삶에 필요한 것들이 다 있는 도시에서(프랑스도 한국처럼 수도집중 현상이 심하다.) 이미 서로 사용하고 있던 물건들과 자신들의 수준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들로 신혼집을 조금씩 채워가며 그렇게 시작하는 그녀들을 보며(혼수가 뭐니?) 그들이 가진 돈 따위와는 상관없이 참 행복해 보였다.

나도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박하게 그리고 화끈하게(!) 다같이 놀수 있는 결혼식이라면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


PS. 이날 난 시차적응에 실패해 11시에 그만 파티장에서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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