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고 싶어요
내가 인터넷에서 열심히 연재 중인 글을 출판사에서 '발견‘하여 책으로 만들자고 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그런 일은 소수에게나 일어나고,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렇듯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렸다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조앤. K. 롤링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 「쇼생크 탈출」과 「샤이닝」의 원작가이자 스릴러, 호러물의 대가인 스티븐 킹도 출판사의 문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그리고 당연히 거절도 많이 당했다. 스티븐 킹은 거절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핀으로 벽에 꽂아서 모았다고 했는데, 2년이 지난 어느 날 핀이 종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다고 했다.(그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인용.) 롤링의 이야기야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었는데 그 대단한 스티븐 킹도 수도 없이 거절당했다니 참 놀라웠다. 그 이야기를 보고 투고하는 것에 어느 정도 부담을 덜었다. 잘난 사람들이든 나 같은 사람이든 시작은 다 똑같았다. 그들도 그렇게 거절당했는데 내가 거절당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투고를 어떻게 해야 할까? 출판사에 보내기만 하면 될까? 아닌 게 아니라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사람이 보낸 그 긴 원고를 인내심을 갖고 읽어줄 편집인은 거의 없다. 그래서 책을 내고 싶은 보통 사람은 '출판기획서(제안서)'란 것을 원고와 함께 보내야 한다. 그 기획서를 통해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건지 보여줘야 한다. 어쩌면 출판기획서는 ‘엘리베이터 피치’처럼 투고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단 몇 분의 기회이다. 기획서를 읽고 마음에 들어야 나의 원고를 읽어볼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사실 나는 출판기획서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원고부터 냅다 썼다. 하지만 책을 쓸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고를 쓰기 전에 출판기획서를 쓰시길 추천한다. 출판기획서가 도움이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스스로 책에 대해 정리를 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 완벽했던 내 계획이 막상 글로 내 눈앞에 나타나면 그 두서없음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기획서가 필요하다. 기획서를 쓰면서 중구난방으로 나 잘났다고 설치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서로 아귀가 맞기 시작한다. 나는 출판기획서를 쓰면서 내 이야기가 놀랍게 정리되는 것을 보고는 앞으로 어떤 일을(꼭 출판이 아니더라도) 시작하기 전엔 이 양식으로 꼭 써보겠다고 다짐했다.
2) 독자의 입장에서 원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쓴 글은 다 좋고 애착이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가 차이가 있듯 글도 마찬가지다. 출판기획서는 그런 내 시각을 좀 더 객관적으로 틀어주는 역할을 한다.
3) 좀 더 전략적이 된다: 기획서를 쓰는 동안 스스로도 몰랐던 원고의 장단점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떤 부분을 그대로 가져갈지 지울지, 혹은 어느 부분을 더욱 어필할지 눈에 보일 것이다.
그럼 출판기획서에는 어떤 내용이 구체적으로 들어가야 될까? 사람과 출판사에 따라 항목은 바뀌겠지만,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 책의 기획의도: 말 그대로 내가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이유다. 시대와 맞아떨어지고,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특정 현상이 있고, 내가 무얼 했고,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어떤 것. 그런 내용을 담으면 된다. 이게 뭔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획의도나 시놉시스를 읽어 보면 느낌이 올 것이다.
2) 이 책의 콘셉트: 출판기획서를 쓰면서 이 부분이 제일 난감했다. 난 그냥 글을 쓰고 있는데 콘셉트는 무슨 콘셉트란 말이지? 하지만 같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더라도 어떤 사람은 담담하게 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비판적이거나 혹은 자기주장을 가득 담아 쓸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실의 전달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춰 어떤 식으로 어떤 어조를 가지고 이야기할 것인지에 대한 항목이다. 어떻게 보면 책 소개라고도 볼 수 있다.
3) 경쟁 도서와의 비교 및 차이점: 책을 쓰기 전에 같은 분야의 책을 최소한 20권은 읽어보는 게 좋다. 그 분야의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보면 더 좋을 것이다. 그 분야의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 반복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내 책을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지 알게 된다.
4) 예상 독자층: 내 책을 주로 읽을 사람들. 내가 이야기를 하면 관심 있을 것 같은 사람들. 내 이야기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을 사람들. 구체적일수록 좋다.
ex) 30대 초반 미혼 직장인, 아이를 막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학부모, 은퇴를 앞두고 제2의 삶을 준비 중인 사람들, 반려견/묘와 함께 사는 싱글, 혼밥족을 위한 요리책 등등
5) 홍보전략: 홍보전략을 쓰는 게 좀 난감하고 민망하긴 하다. 하지만 그저 책 한 번 내 보고 싶은 저자와 책을 내서 열심히 팔겠다는 저자 중에 어떤 사람의 책에 출판사가 더 관심 가질까? 예전에야 평범한 개인이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해도 지금은 SNS가 있다. 열심히 활동 중인 SNS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을 기재한다. 본인 SNS의 구독자나 팔로워 수가 꽤 된다면 그 숫자를 함께 기입해서 어필하는 것도 좋다. 또한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나 모임이 있다면 이를 이용한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6) 저자 소개: 본인의 이력을 간단하게 적으면 된다. 가능하면 책의 내용과 관련된 이력을 쓰는 게 좋다. 좋아하는 책이나 내가 쓰고 있는 책과 같은 분야에서 몇 권의 책을 골라 그들의 저자 소개를 보고 어떻게 적으면 될지 연구해 보면 도움이 된다.
7) 예상 페이지 수: 단행본 한 권 분량은 대략 한글이나 워드에서 글자크기 10, 글자체 '바탕'으로 120페이지 정도 쓴 내용이다. 그걸 책 페이지 수로 옮기면 거의 220~250페이지 정도 된다. 물론 책에 삽입되는 그림이나 사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8) 원고 완성 일정: 원고가 다 완성되었다면 완성되었다고 쓰면 될 것이고, 아직 완성 전이라면 '몇 % 이상 진행되었음. X월 X일까지 완성 예정"이라고 쓰면 된다. 책쓰기에 대한 글을 보면 어떤 사람은 원고를 다 완성해서 보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한 50%정도 완성해서 보내라고 한다. 내 눈에는 완벽해 보이는 원고라고 해도 분명 편집자들과의 회의를 통해 수정해야 할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리라.
9) 목차: 사실 누구나 제목을 보고 글을 읽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처럼 목차 안의 소제목 하나하나는 원고 안의 각 내용을 설명해주는 단서이자 사람들을 유혹하는 카피이다.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거나, 혹은 눈에 그려지는 듯 생생한 목차를 써 보자. 목차를 쓸 때만큼은 내가 카피라이터가 된 것처럼.
이외에도 책의 예상 가격, 책 표지에 들어갈 문구 등의 내용이 출판 기획서에 들어가기도 한다. 위의 내용도 다 중요하지만 출판사에 아마 가장 중요하게 검토하는 내용이 기획의도와 목차가 아닐까 싶다. 매일 책을 만들며 사는 분들이니 이 두 가지만 봐도 대략 어떤 내용인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성한 출판 기획서를 원고와 함께 투고하면 된다. 책을 내고 싶은 분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출판기획서를 쓰기 전에 참고했던 자료 - 위 내용보다 알찬 내용이 많으니 꼭 한 번씩 보시길 추천한다.
1) 김새해 작가의 '책쓰기 수업'
책 기획부터 출판까지 관련된 4개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원고를 투고하고 출판까지 한 그녀이기에 할 수 있는 디테일하고 귀한 이야기가 다 담겨 있다.
2) 브런치 '생각창업학교'님의 매거진, '1인 창업을 위한 책쓰기 교과서'
이 매거진을 보고 내가 얼마나 생각 없이 원고를 쓰고 있었나 급 반성하게 됐다.
https://brunch.co.kr/magazine/bookproject
3) 남시언닷컴의 '출간기획서 쓰기'
출간기획서의 각 항목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실질적으로 알려준 고마운 블로그.
브런치에서는 '남시언'이란 이름으로 글을 연재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