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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an 24. 2018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화려한 복수극을 꿈꾸며

그냥 나의 바람.

1. <미루기의 기술>이란 책은 내게 많은 명분과 변명거리를 주었다. 과연 책 제목부터 그랬다. 몇 분전까지 원고를 열심히 쓰다가 갑자기 다른 게 쓰고 싶어 졌다. 원고를 끝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 화려하게 춤추는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서 새 한글파일을 열어버렸다. ㅠ 혹시나 미루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길ㅎ  https://brunch.co.kr/@swimmingstar/159


2.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 <장고:분노의 추격자>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어요.          




어릴 때는 고어 무비도 잘 봤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영화를 보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아마도 나이 먹으면서 경험도 쌓이고 읽은 책도 자연스럽게 많아지니 예전에는 거의 없던 공감능력이 생긴 탓이리라. 그래서였을 거다. 꼭 고어 무비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라든가 내가 알지 못하는,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세상의 잔인함을 담아낸 영화를 보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안 그래도 힘든데 딱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을 무조건 써는 영화는 더 피하게 됐다. 


몇 년 전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라는 영화가 정말 보고 싶었다. 흥미로운 스토리였지만, 내가 볼 수 있을까 두려웠다. 잔인한 장면도 장면이었지만, 복남이 겪은 괴로움은 영화를 보지 않은 내게 이미 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보지도 않은 영화의 별점을 찾아보며 궁금함을 점점 쌓아가는 것도 할 짓이 아니었다. 결국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잠 안 오는 밤에 그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왜 하필이면 또 밤이냐?)     


어느 작은 섬에서 태어난 복남은 한 번도 그 섬을 벗어난 적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성, 노동력 착취를 당하며, 섬사람들이 함부로 이용해도 되는 물건 같은 존재로 살아왔다. 그 섬을 탈출하려는 시도가 실패할 때마다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전보다 더 악랄해진 폭력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건 하나뿐인 딸의 존재였고, 그 딸 역시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다. 그러던 중 섬을 탈출하려는 시도가 다시 실패로 돌아가고, 삶의 희망이었던 딸은 남편이란 놈의 실수로 죽었다. 그 후 미친 사람처럼 일하던 복남의 머리 위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서영희 배우님, 제가 참 좋아라 합니다.

그때부터 영화는 화끈한 복수극으로 방향을 튼다. 당하기만 하던 복남은 그 섬의 가장 강력한 전사가 되어 섬사람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한다. 그녀가 받는 고통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사람들과 그녀를 갖가지 방법으로 괴롭혔던 사람들은 하나씩 그녀의 손에 나가떨어졌다. 복남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된 그녀의 시동생은 복남의 몸에 다시 손을 대려 하지만, 곧 그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그렇지. 복남아! 더 깊이 쑤셔!”

 내 마음의 소리가 육성으로 나왔다. 복남이가 주변의 여러 도구를 이용할 때마다 피가 낭자하고, 카메라는 물러서지 않고 모든 장면을 다 담아낸다. 


그녀는 처절하게 복수했지만, 행복해지진 못했다. (복남이가 믿은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가 어떤 행동을 하고 나중에 어떻게 변하는지도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여기선 다루지 않겠다.) 그 영화를 본 뒤 며칠 동안 나는 조금 우울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중 스틸컷

 “저놈들이 더 나쁜 놈이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일본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전일이 범인을 밝혀내고 그 뒷이야기가 나오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숙연해진다. 과거에 피해자는 범인에게 소중했던 사람을 (대게는)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법망을 교묘히 피해 지금껏 잘 살아온 사람이다. 범인은 법이 미처 심판하지 못한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완벽한 살인을 계획하며 서서히 악마가 되어갔다. 김전일에 나오는 수많은 트릭에 재미를 느끼면서도 전일이 범인을 잡고 나서는 기분이 씁쓸했다. 범인의 지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는 않아 그에게 온전히 감정이입이 되진 않지만, 그가 지난 시간 겪었을 고통은 충분히 짐작되었다.




<장고: 분노의 추격자>에서 흑인 노예였던 장고는, 자신의 아내를 산 백인 농장주 캔디를 찾아가 그의 가족, 부역자들을 모두 죽이고, 집까지 날려버린다. 이 영화를 마지막까지 보고 나서 기분이 상쾌(!)했던 건 그 영화가 해피엔딩(?)이기 때문일 것이다. 뭐 사실 장고는 일가족을 몰살시키고, 집까지 폭발시켜버린 살인범이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에게 공감하고 그의 복수에 통쾌함을 느낀다. 그건 영화가 관객의 마음속에 그 당시 백인에 대한 분노를 조금씩 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 최고의 장면은 ‘미국 남부 최고의 총잡이’가 된 장고가 캔디의 대저택에서 그의 부하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일 것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피가 낭자하는 이 장면을 '과즙이 터지는 과일'처럼 그렸다. 마치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가 연상되는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희열을 느꼈다. 복남과 <소년탐정 김전일>에 나온 범인들의 복수가 이렇게 끝났다면 어땠을까? 더 이상 노예도 아니고 아내까지 되찾은 장고는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이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소년탐정 김전일>,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는 우리가 용서하기 힘든 사람들이 나온다. 물론 살인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희대의 악인들과 그들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들의 삶이 대비되면서 그 이후 펼쳐질 잔혹한 액션은 일종의 정당성을 갖는다. 그들이 당한 고통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마음 놓고 주인공을 응원할 수 있다.

    



'정신승리?'

이쯤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을 대상으로 한 화끈한 잔혹복수액션극이 언젠가 나오면 좋겠다. 칼, 창, 검, 총, 폭탄 등 더 다양한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허나 중요한 건 일본이 1900년 초 약 반세기 동안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녔는지를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에서는 1/10도 이루어지지 않은 과거 청산이 영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건 어떤 모습일까? 그저 '정신승리'처럼 여겨져 영화가 재미있으면 재미있을수록 찝찝할지 모른다. 

역시나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만든 쿠엔틴 타란티노의 다른 작품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을 보고 개운(?)할 수 있는 건 어쩌면 현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21세기를 사는 보통 사람이라면 <장고>의 백인우월주의나 <바스터즈>의 군국주의 나치가 잘못된 이념이라는 걸 대부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제재와 심판은 도덕적, 법적으로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뭐 여전히 갈 길은 남아있지만, 어쨌든 이런 영화는 한국의 경우와는 달리 현실의 판타지 액션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다. 


'장고'를 보는 것보다 '복남'을 보는 것이 더 힘들었던 건 한국이 배경이고, 내가 여자고, 꼭 섬이 아니라도 알게 모르게 이 사회에 일어나고 있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런 영화가 나오면 우리의 일이라 또 보는 게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고와 복남을 응원하던 마음으로 언젠가는 나올 그 영화를 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정신승리'에만 머무르지 않는 날도 오기를.


*글에 쓰인 모든 그림은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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