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가득한 해외취업수기? No, 짠내 진동하는 이야기
“해외 취업을 하기 전에 다만 일본으로 2박 3일이라도 다녀오는 게 어때요? 온갖 노력을 다해서 해외취업을 했는데 막상 타국이란 환경에 적응 못해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취업도 취업이지만 정작 그 나라와 잘 안 맞으면 아무 소용없잖아요? 특히나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은 해외에 대한 감이 없어 그런 경우가 더 많거든요.”
한참 세계지도를 보며 마음에 불을 지필 때, 코트라 해외 취업 담당하시는 분과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내게 꽤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는데, 그가 말한 ‘감’이 없는 사람(나)은 그 조언을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일본에 다녀올 돈 같은 건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모아 싱가포르 정착금을 만들어야 했다.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던 나는 나라를 고르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1) 영어권 국가
2) (해외에 한 번도 나가지 못했던 내가 받을 문화적 충격을 덜기 위해) 아시아권
그렇게 생각해서 싱가포르를 선택했다.(싱가포르라는 옵션을 알려준 ex에게 감사해야 할 판) 뭐가 됐든 선택을 하니 불안감이 조금씩 사라졌다. 회사의 사정으로 예정일보다 3개월 늦게 싱가포르로 가면서, 결국 해외취업을 생각한 지 1년 만에 한국을 떠나게 됐다.
“이게 뭐야? 이게 다야?”
사실 처음 싱가포르에 도착한 나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나라가 작은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쥐똥만 했다. 깨끗한 나라로 유명한 싱가포르지만, 정말 현지인이 사는 곳은 더럽기 짝이 없었다. 정말 아껴가며 싱가포르의 비즈니스 중심지구 CBD, 마리나 베이 Marina Bay와 래플스 플레이스 Raffles Place를 보려 했건만 그때까지 볼만한 다른 풍경이 없었다. 결국 3일째, GG를 치고 CBD로 갔다.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다워서, 그게 다라서 급 우울해졌다. 지금의 나는 어느 곳에 던져놓든 적응을 잘 하며 그곳의 아름다움을 찾아내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싱가포르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이렇게 질러버린 내가 한심했다.
하지만 더 절망적이었던 건 음식이었다. 정말 음식이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없었다. 한국음식이 이렇게나 담백했던가? 매일 이 음식을 먹으면 나중에 돼지가 되어 굴러다니지 않을까? 생각지도 못했던 음식이 문제가 될 줄이야... 그제야 나는 밥과 김치를 꼭 먹어야 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신이라 불리던 나였는데, 그것도 한국에 있을 때 이야기였다.
“그 나라가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해야 돼요!”
코트라 직원분이 내게 해 준 조언이 다시 돌비 서라운드로 휘몰아쳤다.
"아아아악!!! 집에 가고 싶다고!!!
3일 만에 이런 생각이 들다니... 딴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취직을 빨리 해야 했다.
"해외취업이 가능하겠니?"
"너 영어도 잘 못하잖아."
"니가 갖고 있는 건 그냥 해외에 대한 환상일 뿐이야."
하던 일도 그만두고 응원보다는 비아냥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더더욱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나저나 1편에서 말했던 DHL 면접은 어떻게 됐을까?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예상할 수 있듯이 면접에서 똑! 떨어졌다. 만약 그 면접에 붙었다면 고생은 안 했겠지만, 이런 글을 쓸 만큼의 경험치는 못 쌓았을 것이다. '싱가포르 DHL 생존기' 뭐 이런 글을 쓰려나?(그런 글에 더 관심 있으신가요?) 첫 번째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는 지원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정식으로 취업해서 비자를 발급받기까지 이백 군데가 넘는 곳에 이력서를 돌렸고, 거의 서른 번이 넘는 면접을 봤다. 첫 번째 면접은 운 좋게도 싱가포르에 온 지 3주 만에 하게 됐지만, 너무 운이 빨리 왔던 걸까?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마치 '면접 도장깨기'를 하는 사람처럼 싱가포르 전역을 돌았다. 차암 감사하게도 그 덕분에 싱가포르 지리에 아주 빠삭하게 됐지만.
사실 면접을 이렇게 보지 않았다면 난 금방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가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보는 이 면접이 그래도 날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신기했던 건 한국에서는 내 이력서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기업들이 내 이력서를 보고 면접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대기업보다 훨씬 거대한 글로벌 기업들이! 면접을 보는 건 정말 값진 경험이었지만, 내 직업은 면접자가 아니었다. 떨어질 때마다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다음 면접으로 달래며 지냈다.
그리고 싱가포르 온 지 5개월이 지난 어느 날,
1) 싱가포르 현지 기업에서 정식 오퍼(합격 통보)를 받고 일 시작
2) 헤드헌터가 다른 회사를 소개해 줌
3) 2) 번 일이 생긴 후 얼마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 둘 상황이 됨
4) 새로운 회사와 면접
5) 나를 채용하기로 한 회사가 입 싹 닫고 모른 척 시전
6) 다시 백수
이 짓을 다시 하다 마침내 제대로 된 곳에 취직을 했다. 반갑지 않은 일을 겪고, 돈, 비자 걱정하며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9개월간 지내다 보니 솔직히 멘탈이 탈탈 털렸다.
사실 내가 겪은 과정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조금 꺼려지기도 한다. 취업이라는 게 고생스럽기도 하고, 나만 잘한다고 잘되는 게 아닌 운도 작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걸 보고 더 이상 내 글을 읽지 않으실까 봐 겁도 난다) 사실 나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앞으로 이력서를 이백 곳 넘게 돌리고, 몇 달을 백수로 지내며,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거의 다 까먹을지도 모른다고 누가 이야기했다면 도전했을까 의문이 든다.(하지만 위에 보신 것처럼 나는 중간에 일이 좀 꼬였다.) 하지만 해외라고 다를 거 없잖은가?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인데... 우린 너무 해외에서 잘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만 봐 왔다.
비록 고생도 많이 했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멘탈도 강해졌으며, 영어는 확실히 늘었다. 아마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것 같다. 물론 조금 고생을 덜 하는 방법으로. 그 시절의 나는 이십 대의 사회생활과 이십 대의 해외생활(만약 해외취업에 실패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중 해외생활이 더 가치 있다고 여겼다.
현재도 해외에서 일하고 사는 한국인은 정말 많다. 서울의 좋은 대학교, 심지어 외국의 유수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일했던 것보다 더 좋은 곳에서 일 잘 하시는 분들, 정말 많다. 가끔 그들이 가졌던 좋은 패가 부럽고, 나 자신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가난해서 정부 보조금으로 십 대 시절 학교를 다녔던 사람이, 해외 유명 대학을 졸업한 것도, 영어도 유창하지 않았고, 해외취업 전에 해외에 나가 본 적 없는 사람이, 가진 거라곤 튼튼한 몸 하나(물론 그 마저도 졸업 후 수술을 하는 바람에 인턴 그만두고 집에서 몇 달 요양해야 했지만) 뿐인 나 같은 사람도 해외에서 직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자리잡지 못하는, 분명 능력이 있으나 한국 사회가 만들어놓은 여러 채에 걸리고 걸려 뜻을 펼치지 못하는 그 수많은 20대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외취업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자주 짠내(=현실) 풍기며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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