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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Feb 19. 2016

프랑스에서 만난 진짜 결혼식

소박하게 자신들의 축제를 만드는 예비부부

  

프랑스의 작은 도시 라 바스티 데트. 그리고 그곳의 시청. 오늘, 이곳에서 친구의 결혼식이 열린다. 시청이라고는 하지만, 구청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곳. 그리고 그것만큼이나 건물보다는 넓은 논밭이 더 눈에 띄는 곳. 시청 맞은편에, 오래된 성당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유럽 여행의 첫날 운이 좋게도 친구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됐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결혼식은 어떨까? 늘 흥미로운 주제인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 커플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어서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며 담소를 나눈다. 하객들은 양가 가족, 친구들 다 합쳐 약 30명 정도 될까? 아기자기하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두신부가 도착하였다. 그렇다, 오늘 내가 참석하는 결혼식은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 작년부터 프랑스에서는 동성애자의 결혼식이 합법화되었고, 드디어 오늘, 친구는 그녀의 여자친구와 결혼을 한다.  한쪽은 턱시도를 입지 않을까란 묘한 내 상상과 달리 둘 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시청에 도착하였다.  한 사람씩 볼을 살짝 대고 ‘Bon jour’라고 말하는 프랑스식 인사.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과 일일이 인사를 하는 두 신부. 신부를 숨겨두는(!) 우리네 결혼식과는 달리 신부들이 자유롭게 하객들과 인사하고 담소를 나눈다. 모든 사람과 일일이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에서 소박한 결혼식의 매력이 보인다. 내 결혼식인데 내가 모르는 사람이 많은 일반적인 한국의 결혼식과는 사뭇 다르다. 심지어 신부 중 한 명은 하객들과 이야기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게다가 임신 중인데... 웨딩드레스 입은 여인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내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사진기사, 결혼식 도우미, 사회, 주례사? 그런 것 없다. 그 역할들은 모두 하객들이 한다. 친구들 중 제일 사진 잘 찍는 녀석이 사진을 찍고, (보통 그런 녀석들이 카메라도 좋은 걸 들고 있다.) 꽃가루 뿌리기, 폭죽, 비눗방울 등등 모두 다 하객의 몫이다. 덕분에 나도 결혼식에서 열심히 비눗방울을 불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30여분, 드디어 결혼식이 거행된다. 

배경음악도, “신랑/신부  입장.”이라는 외침도 없다. 예비부부와 하객들은 다 같이 결혼식이 진행될 홀(이라 부르기 민망한 작은 방)에 들어간다. 큰 도시의 시청에는 결혼식 사회를 전담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는 시장이 직접 결혼식의 사회와 짧은 주례를 한다. 들어갈 때는 두 신부 모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갔지만, 막상 식이 시작하니 그들의 옆에서 있는 사람은 부모가 아닌 그 결혼식의 증인들이다. 증인은 주로 신랑 신부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하고, 그들은 일종의 혼인신고서에 함께 서명을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증인이 있어야 그들의 결혼도 효력을 가진다.


프랑스어라 시장이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친구에게 들어보니 이 도시에서 또 한 쌍의 부부가 탄생해서 기쁘며, 특히 첫 동성애자 커플이라 더욱 감회가 깊다고 했단다. 그렇게 20분 정도 식이 거행되고, 나머지 10분 간은 그 자리에서 증인을 포함한 여섯 명이 혼인신고에 서명을 한다. 그렇게 결혼식에서부터 혼인신고까지 30분 만에 이들은 법적으로도 완전히 부부가  되었다.. 이 얼마나 간단한가. 지금부터는 결혼식 파티의 시작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두 신부가 팔짱을 끼고 나오는 길, 하객들의 폭죽과 꽃가루, 비눗방울로 이렇게 결혼식은 끝이 났다. 너무나 조촐하고 아담한 결혼식을 보며, 결혼식 회의주의자였던 나도 이런 결혼식이면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많은 결혼식을 가 본 것은 아니지만 그 부부들 중 아직도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뿐더러 누구의 결혼식에 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두 사회생활하며 어쩔 수 없이 참석했던 그런 결혼식이라 더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내 삶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그런 결혼식이 너무 싫었다. 게다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해서 당장 몇 달만 지나도 그 결혼식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벤트. 평생 이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자리보다는 내가  그동안 뿌린 축의금 회수전과도 같은 결혼식. 나에게도 하객들에게도 잔치가 되어야 할 결혼식이 그저 웨딩 사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비즈니스가 되어 버린 결혼식. 그리고 내 결혼식인데도 내가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닌, 항상 누군가에게 맡기는 그런 결혼식.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때론  욕먹어가며 열심히 모아 온 돈을 그렇게 특별하지 않게 써야 한다는 사실에서 난 결혼식을 올리지 않으려고 마음먹어 왔다. 그러다 이 결혼식을 만났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정말 원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엉뚱한 곳에 돈을 쓰지 않는 소박한 결혼식.

 결혼식이 끝나고 시청에서 빌려준 다목적홀로 갔다. 이제 본격적인 결혼식 파티가 열린다. 말 그대로 파티.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춤추는 파티. 어제부터 이곳을 열심히 꾸몄을 부부와 그 친구들의 수고가 엿보인다. 테이블을 이어 붙이고, 각각 사람들이  앉을자리를 지정하고, 풍선과 색색의 종이들, 그리고 잘 차려진 다과들로 다목적홀은 근사한 파티장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함께 파티를 꾸미는 과정이 결혼하는 사람과 하객들에게 평생의 이야깃거리가 될 생각을 하니 나도 흐뭇해진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두 신부가 그윽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추는 블루스. 동성 커플의 춤이라는 느낌보다는 막 부부가 된 그들의 행복한 기분에 나도 동화되는 느낌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많겠지. 아무리 동성 결혼이 합법화라고 해도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도, 편견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데 그 모든 것을 함께 견디고 평생 함께 하자고 약속하는 그들의 모습에 괜히 울컥했다. 정말로 사랑이라는 것은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거라고. 

그리고 파리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둘이서 행복하게 곧 태어날 아이를 잘 기를 수 있고, 작지만 삶에 필요한 것들이 다 있는 도시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해 본다. 비싼 혼수 따위 없고, 이미 서로 가지고 있던 가구와 자신들의 수준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들로 신혼집을 조금씩 채워가며 그렇게 시작하는 그녀들을 보며 그들이 가진 돈 따위와는 상관없이 참 행복해 보였다.

 

물질적인 것을 절대 배제할 수는 없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하는 그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웨딩홀, 예물, 집, 차 등이 아닌 서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라는 것을 머나먼 이곳 프랑스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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