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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ul 20. 2019

난 언제나 싱가포르를 떠나는 것을 꿈꾼다. ①

여기선 갈 데가 없어!

이번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을 생각할 때, 맨 처음 떠올랐던 문구인데...

싱가포르 이야기 잘하다 뭔 소리?,

그래도 이 정도 어그로는 끌어야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조용히 백스페이스를 눌렀습니다. 아무튼 다른 제목으로 글을 써 나가고 출판사와 함께 두세 번 수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마지막 교정할 때 이 내용이, 그러니까 제가 싱가포르를 깐 내용이 통편집됐어요. 책의 분위기와 안 맞기도 하고 호불호가 갈릴 내용이라 그런 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저도 7년간 저를 이만큼 키워준 싱가포르를 욕하는 게 불편합니다. 아무리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며 정말 많은 것을 겪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마저 저의 협소한 생각과 경험에서만 나온 이야기는 아닐까 고민도 좀 되고요. 하지만 이왕 썼던 내용이니만큼 브런치 독자님들께 보여드리고 싶어 올려봅니다. 내용은 좀 많이 더 추가했어요. 에세이에 넣으려던 내용이니만큼 저의 느낌, 생각, 뇌피셜, 엄청 주관적^^이라는 점 참고 바랍니다.


*****************


절대 피할 수 없는 너란 존재, 쇼핑몰.

나는 싱가포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던 음식은 차치하더라도 나는 싱가포르에 사는 사람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쇼핑몰의 존재가 아직도 싫다. 이곳 사람들의 삶은 쇼핑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의 쇼핑몰은 밥을 먹고 쇼핑을 하는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는 학원이 있고 도서관이 있다. 심지어 대학교 졸업식이 쇼핑몰에서 열리기도 한다. 웬만한 동네에 다 있을뿐더러 대부분의 전철역, 버스 터미널 근처에는 쇼핑몰이 하나씩 있다. 쇼핑몰을 거쳐야만 지하철을 탈 수 있고, 쇼핑몰을 거쳐야만 내가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는 곳이 꽤 많다. 솔직히 정말 편리하기에 이런 소리를 하면 배부른 소리라며 핀잔을 받기도 한다. 이곳의 아이들은 쇼핑몰에 가는 걸 마치 놀이공원에 가는 것처럼 여긴다. 뭐 실제로 특별한 시즌이 되면 놀이기구를 갖다 놓기도 한다.

 "집에 하루 종일 있으면 에어컨을 틀어야 하니까 대신 쇼핑몰에 가.”

전기요금을 아끼고 싶어 했던 싱가포리언들에게 심심치 않게 들었던 말이다.

 '그럼 커피를 사 먹든 뭘 사든 해야 될 거 아냐? 그 돈은 괜찮아?'

 

어쩔 수 없이 쇼핑몰에 발을 디뎌야만 하는 많은 순간들. 어쩌면 내가 본 투 비 미니멀리스트라 더 그럴지도 모른다.(예전 룸메이트 한 명은 사람이 어떻게 이것만 가지고 사냐며 나를 '스님'이라고 불렀다.) 딱히 사고 싶은 물건은 없으니 그냥 지나치고 싶지만 화려한 윈도 너머 상품들은 계속 내게 말을 건다. 이래도 날 안 쳐다봐? 너 참 촌스럽구나?

그러다 보면 내게 주어진 걸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면 내가 원하는 곳에 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 길을 지나야만 하는 게 못 견디게 짜증이 난다.

그러다 보면 괜한 것에 딴지 거는 내가 너무 삐딱해 보인다.

그러다 보면 내가 프로 불편러인가 싶다.


아시다시피 적도 근처에 있는 이 나라에서 더위는 언제나 해결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다. 한낮에는 5분만 밖에 있어도 땀이 줄줄 난다. 그런 날씨가 일 년 내내 지속되니 커다란 건물 하나에 모든 것을 다 때려 넣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버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여름 더위를 피해 괜히 한 번 들어가 보는 은행처럼, 쇼핑몰은 사람들이 더위를 아늑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이다. 더위 걱정 없이 내 할 일을 할 수 있다.  큰 은혜나 다름없는 쇼핑몰 안에서 나는 밥을 먹고, 랩탑을 들고 내 일을 한다. 덕분에 나의 활동반경은 이 건물로 단정 지어진다.


1965년에 태어난 나라, 싱가포르. 싱가포르가 태어날 때쯤에는 이미 참고할 나라들이 많이 생겨나 당연히 계획적으로 도시를 만들 수가 있었을 거다. 그 덕에 주거 구역과 상업 구역, 비즈니스 구역이 잘 나뉘어 있다.(싱가포르 생활 초반, 집 근처에 술집이 없어서 얼마나 짜증이 났던가...) 어쩌면 쇼핑몰은 도시계획이 얼마나 잘 짜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일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그 계획이 숨 막히는 걸까?


 "아 진짜 편한 건 알겠거든? 그런데 자꾸 누군가 설계해 놓은 대로만 움직이는 인형이 된 것 같아."

  "설계대로 움직이는 거 맞아. 그런데 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니야?"

나는 정말 오버하는 것일까? 멀쩡히 잘 있는 쇼핑몰을 물고 늘어지는 것일까?


우빈 섬에서 본 일출

"갈 데가 없다....."

맨 처음 나를 놀라게 한 사실은 이곳에 제대로 된 자연이 없다는 것이었다. 산이 없었다. 가장 높은 곳은 부킷 티마 '힐'이라는 164m의 언덕이다. 웃기게도 싱가포르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bar'라는 'one altitude'가 있다. 사람이 만든 것이 자연보다 더 높은 것. 이만큼 싱가포르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게 또 있을까.

바다는 언제나 자기 차례를 가다리며 서 있는 배로 둘러 싸여 있다. 배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앞바다에 발 담그기도 찝찝하다. 가끔 센토사에서 발 담그고 놀기도 하지만 찝찝한 건 변함없다. 섬나라지만 바다에서 놀기 힘든 아이러니. 도시국가라는 것이 개념으로만 존재했을 때와 내 생활이 되었을 때의 차이는 천지였다. 한국에서 들으면 웃길 수도 있지만, 산을 타고 해수욕을 하려고 국경을 건넌다.

  "싱가포르에 산이 없잖아요? 그래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근처 HDB(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훈련했어요."

싱가포르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8,000M를 등반한 분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훈련할 만한 장소를 찾는 것도 그녀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었다며 다른 산악인들보다 더 자주 외국 땅을 밟아야 했단다. 


이렇게 적고 보니 쇼핑몰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즐길만한 자연이 없어 괜히 인위적인 쇼핑몰의 존재에 시비 걸었나.(그래도 너무 많은 것 같은데?) 게다가 땅이 좁으니까 웬만한 곳의 개발이 불가피했을 거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도 매립해서 생겼으니 어쩌면 자연이 없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자연이 없는 건 없는 거고, 그런 곳에 가지 않으면 내가 갑갑하니 약간 쥐어짜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거의 모든 저수지와 공원에 가는 것은 물론 자전거 타러 많이들 가는 싱가포르의 우빈 섬에서 캠핑도 했다. 싱가포르의 센토사보다도 아래에 있는 St. John 등의 여러 섬에도 갔다. 싱가포르의 북서쪽 군부대 근처에서 정글(진짜 정글이 싱가포르에도 남아 있다. 하늘을 다 가릴 수 있을 정도로 높이 서 있는 숲과 정말 희한한 식물들, 정글 특유의 찝찝함이 있는 곳.)에서 트레킹을 했다. 버려진 공동묘지에도 놀러 갔다. 

하지만 한국에서 어느 곳에 시야를 두든 산이 들어오는 것처럼, 싱가포르에서는 어느 곳에 있든 고층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기에 위에서 언급한 곳 중에서도 몇몇을 제외하면 여전히 내가 도시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받을 뿐이다. 요즘 보면 trail 코스도 많이 만들어 놓아 운동하고 산책하기 좋아 감사하지만 그래도 인공적인 건 어쩔 수 없다. 또 아쉬워진다.


도시인간이지만 내게 자연을 자주 보여줘야 한다는 걸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됐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자연이 있는 한국에 있었으니 깨닫지 못한 것일 뿐.(호주에 있다가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왔을 때 더 아쉬워졌다.) 물론 싱가포르에서는 해외로 나가는 게 정말 쉽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국내와 비교할 수 있을까. 일하고 사는 데 있어서 한국보다 덜 팍팍하지만, 가끔씩 갑갑했던 게 바로 이게 아니었을지? 사소하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내게 중요한 것. 여기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싱가포르에서 서식하며 열심히 도토리를 모으는 나는 언제나 탈출을 꿈꾼다. 

그래도 야생 수달을 봤을 때는 감동! (그나마 남은 자연을 정말 잘 관리한다.  리스펙트!)


**또 다른 주제와 함께 2편으로 돌아올게요. 


https://brunch.co.kr/@swimmingstar/285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394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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