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 Sep 27. 2018

싱가포르에서 축의금을 얼마나 내요?

 “헤이, 빅뉴스, 빅뉴스! 나 프러포즈 받았어! 결혼식에 올 거지?”

 “응. 당연히 가야지.”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결혼 생각이 없어 보이는 남자 친구 때문에 행복하다가도 속상해하던 친구는 한 달 전,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웨딩드레스를 입게 되었다. 남자 친구와 함께 놀다가도 목소리를 낮춰 ‘점마는 도대체 뭐 하는지 모르겠다.’(아, 내 친구는 경상도 사람이 아니고 싱가포르 사람이다.)고 하던 친구였다. 드디어 그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려는 참이었다.

이곳에서 결혼식에 올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그 말은 레스토랑 혹은 호텔에서 올리는 싱가포리안들이 ‘진짜 결혼식’이라고 부르는 결혼식, 즉 파티에 올 거냐는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Registries of Marriage(ROM)이라 불리는 혼인청에서 아주 간단한 서약식을 하고 혼인신고를 한다. 친구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며 바로 서류에 사인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혼인청에서 하는 방식과 비슷한 것 같았다. 예전에 프랑스에서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딱 시장님의 간단한 주례사, 서약, 혼인신고서에 사인을 하고 30분 안에 끝냈다. 결혼식은 서류에 사인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성당에서 하는 만큼 크리스천인 그들에게는 의미가 있었겠지만. 그리고 그 의식이 끝난 후 ‘진짜 결혼식’이 시작한다.

출처: 통플러스

잘된 건 잘 된 건데, 애매한 고민이 생겼다.

 ‘축. 의. 금.’

도대체 얼마를 내야 하지? 한국에서는 친한 정도에 따라, 사회나 회사에서의 관계에 따라 축의금의 액수가 얼추 정해져 있지 않은가? 이 곳에서는 얼마를 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전에도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축의금을 내지 않아도 되거나(예전 보스가 거래처 사장의 결혼식에 갈 때 센토사 호텔에 밥 먹으러 가자며 초대도 받지 않은 나를 데려갔다.), 한국인 언니의 결혼식에 갔을 뿐이었다.


“그거 알아? 싱가포르에선 축의금을 낼 때 어떤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갔는지에 따라 축의금이 다르대~”

 “정말? 이 인간들 어지간히 손해 안 보려고. 어휴 진짜 질린다.”

몇 년 전 싱가포르의 축의금 이야기를 들은 나와 내 친구들은 '이 약아빠진 인간들!' 이라며 있는 욕 없는 욕 다 한 적이 있다. 결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 아닌가? 한 사람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이벤트에 축하하는 기준이 고작 ‘그 호텔이 얼마짜리인가?’라니… 그 말을 듣고 싱가포르에 그나마 있던 정이 또 떨어졌다. 하지만 그때 떨어진 정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 내 사정이고 나는 곧 참석해야 할 결혼식의 축의금을 얼마 낼 건지 정해야 했다.


 ‘결혼식이 열리는 장소마다 다르다면 혹시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첩장에 적힌 레스토랑 이름과 wedding gift money를 함께 검색해 봤다.

 “!!!!!”

구글링 한 방에 내 고민이 해결됐다. 도대체 왜 멍청하게 지금까지 되지도 않는 고민을 한 거야?


느긋해진 마음으로 구글이 내게 보여주는 검색 결과를 즐기던 나는 곧 경악했다. 스크롤을 내리니 싱가포르 내 결혼식이 열릴만한 거의 모든 호텔과 레스토랑의 축의금 리스트가 나왔다. 심지어 주말과 평일, 점심과 저녁의 가격도 구분되어 있었다.

짧게 캡처해 본 싱가포르의 축의금 리스트 http://www.weddingangbao.com/

 ‘고민이 해결되어 고맙긴 한데… 너희,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니?’

축의금 표의 존재를 확인하며 새삼 오랜만에 싱가포리안의 치밀함을 다시 느꼈다.

불알친구끼리는 어떤 식으로 결혼을 축하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축의금 액수는 결혼식 장소에 따라 달라졌다. 몇 년 전 이들의 축의금 문화가 꼴 보기 싫었던 이유는 아마도 지인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의미보다는 호텔 구경하러 가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일지도 몰랐다. 마치 돈 내고 호텔 밥 먹으러 가는 느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내가 싱가포리안이 아니고 그만큼 깊이 사귄 친구들이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의 느낌은 그랬다.


누군가 수고스럽게 만들어 놓은 축의금 표 덕분에 쉽게 고민을 해결하고 결혼식을 다녀왔다. 그리고 한 달 후, 어쩌면 이런 싱가포르의 문화가 더 나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을 기준으로 축의금이 정해진다는 사실에 마음속의 찝찝함이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친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사이그만 두면 평생 볼일 없을 거래처의 박 대리님, 부장님 아들의 결혼식에는 초대하지도 받지도 않으니 전체적인 시간/돈 낭비가 적다. 합리적(?!)으로 먹은 만큼 내고 간다. 아무리 스몰웨딩이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축의금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국에서 온 내가 그들의 문화에 왈가왈부할 입장이 될까?


“결혼식 비용에 술값 비중이 너무 높아. ㅠㅠ”

결혼식 준비를 하며 칵테일과 와인 비용에 기겁하는 친구를 보며 새삼 싱가포르 주류세를 실감했다. 나야 뭐 Free flow 칵테일에 행복했지만. ^^;




축의금 표가 궁금하신 분들은 구글에서 ‘Wedding *Angbao rate 2018’ 검색해 보시기를. 심지어 친절한 누군가들이 인플레이션과 해당 장소의 사정까지 고려하여 매년 업데이트한다. 'Rate'라는 표현을 쓴 만큼 정확하게 저 금액대로 내는 게 아닌 참고하여 엇비슷하게(??) 내는 걸로 이해하면 되 듯하다. 보통 짝수 금액으로 S$ 100~160 수준으로 낸다.


*Angbao는 빨간 봉투라는 뜻으로 선물로 주고받는 빨간 돈 봉투이다. Red envelop, Angpow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설날, 출산 등을 축하하는데 쓰이는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축의금에도 쓰이고 있었다.


외국계 대기업 1년 후기 (brunch.co.kr)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선택한 일터, 싱가포르에서> 책이 나왔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