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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Oct 14. 2020

그래서 그 다음은?

feat. 스타크래프트

어렸을 때부터 남동생 덕에 컴퓨터로 하는 게임을 많이 했다. 동생이 내게 전파해서 내가 참 열심히 했던 게임으로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스타크래프트, 롤러코스터 타이쿤, 녹스, 날아라 슈퍼보드, 파랜드 택틱스, 카트라이더, 오디션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 제일 어려운 건 당연히(!) 스타크래프트였다. (+그렇게 동생은 컴퓨터 쟁탈전을 만들며 스스로 무덤을 팠다.)


동생은 그 당시 정석대로 저그, 테란, 프로토스 순으로 내게 게임을 가르쳐 주었다. 프로토스로 게임하는 법을 배우다가 그만 지겨워진 탓으로 프로토스를 내 종족으로 해서 게임을 하진 못한다. 물론 그때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나를 가르치는 동생에게 말하곤 했다.  

 "건물이 뭐 이래 다 똑같이 생겼노.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안 해!"

 "뭐라노 프로토스만큼 건물이 독특한 게 어딨다고."

정말 오랜만에 보는... :)

건물이 비슷하다는 건 당연히 핑계였고, 사실 배우는 게 지겨워졌었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성질이 급하고 복잡한 거 싫어하는 나는 한 건물(이라기도 뭣한) 안에서 몽땅 생산해낼 수 있는 저그를 주종족으로 게임을 했다. 열심히 생산한 미네랄로 해처리를 짓고 히드라를 뽑아 한 부대를 만든다. 그리고 적들을 다 때려 부술 때의 그 희열. 나는 나의 전사들이 열심히 부시고 있는 것을 흐뭇하게 구경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게임하고 있던 나를 보고 말했다.


 "누나 실력이 왜 안 느는 줄 알겠네."

 "뭐가?"

 "누나야, 지금 히드라가 마린 죽이는 걸 볼 때가 아니다. 얘네는 알아서 싸우게 놔둬놓고 오버로드 띄우고, 해처리를 짓고 미네랄이랑 가스를 캐야지. 그래야 다음 부대를 만들고 또 쳐들어가고, 게임에서 이길 거 아니가?"

 "엥? 이 재미있는 걸 보지 말라고?"

 "싸우는 건 다 이겨놓고 봐도 된다."


동생은 다음 계획과 행동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 눈 앞에 있는 재미난 구경거리에 정신이 팔린 내게 일침을 놓았다. 대부분 나는 눈앞의 전투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가 나중에야 비로소 부랴부랴 자원을 캐고 생산하기 바빴다. 그에 반해 잘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다음 부대를 만들고, 새로운 땅을 정찰하고 개척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스스로 하고 싶어서 했던 일들(영어, 해외에서 일하기, 출판 등등)을 마침내 해낸 후에 나는 허전함과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포기하지 않고 그 일들에 매달려 어찌 됐든 이뤘다. 하지만 그다음은? 그다음에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맨 시간을 계산해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린 것보다도 훨씬 길거다.


단기적인 계획을 세울 때는 괜찮다. 하지만 내 인생, 아니 10년? 5년? 5년도 거창하다. 많이 양보해서 2년을 두고 봤을 때 지금 이 일은 어디쯤에 속해있는 걸까. 하기 전에는 커 보이는 일도, 막상 해 보면 작게 여겨지지 않는가.


앞의 스타크래프트의 이야기에 비유해 보자면 나는 게임 전체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거다. 단지 눈 앞의 전투에만 관심이 있었다. '전투'가 아니라 '전쟁'을  봐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눈 앞의 전투만 보고 있으니 일이 꼬이거나 느리게 진행될 때마다 마음이 힘들다. 일희일비한다.


나는 내가 열정과 끈기가 없어서 쉽게 질려하고 일에 대한 애정이 빨리 식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어쩌면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 내가 목표처럼 여겼던 일들은 사실 그리 큰 일도 아니었고, 단지 큰 흐름 속의 과정이었을 뿐인데.


이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까? 내게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웬만하면 몇십 년은 더 살 텐데, 오늘 나의 계획은 내 인생에서 어디쯤에 와 있는 걸까.

한때 내 최애였던 히드라.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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