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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Apr 21. 2021

Timeless가Timeless 했다

눈 감는 그 날 내가 가져갈 추억 만들어 줘서~워우워어어예이예에에

2004년 1월, 동네에서 치맥을 즐기던 나와 친구들은 티브이에서 나오는 뮤직비디오와 노래에 맛있게 먹던 닭다리를 놓고 빠져들었다. 얼굴 없는 가수와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가 유행하던 시절. 지금 그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우리는 떠드는 것과 먹는 것을 중지하고 다 같이 텔레비전을 뚫어져라 본 기억이 난다. 그때 나왔던 노래는 SG워너비란 그룹의 데뷔곡인 <Timeless> 였다.

 "오 노래 좋은데?"

비록 그 닭집은 그로부터 몇 년 후 없어졌지만 그 노래를 들을 때면 그 장소와 치느님과 맥주와 친구들과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그 겨울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수능이 끝났다는 약간의 기쁨과,

수능 점수가 거지 같다는 약간의 자괴감과,

어느 대학에 가게 될지에 대한 약간의 설렘에 더불어

그 시절에는 가장 중요했던 주제로 고민하던 친구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재수를 해야 할까?"

더 이상 친구네 집이나 몰래 청소년들을 받아주던 술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약간의 안도감도 기억난다.


우리가 그 노래를 처음 알게 된 시절에 하던 고민은 이성친구, 학점, 군대 가는 시기, 진로 등의 주제로 바뀌었다. 우리는 참 징그럽게도 꾸준히 만나 술을 마시고, 거리에서 진상을 피우고, 여름이면 여기저기로 놀러다니고, 서로의 연애 상담을 하고, 군대 가는 친구들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그들이 남긴 허전함을 함께 기억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나누었다.




 "자, 이거 선물."

그리고 2004년 3월, 입학한 대학교에서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CD에 아주 따끈하게 구워주었다. 요즘에야 클릭 몇 번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선물도 줄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다. 왜 '굽는다'는 표현을 썼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CD를 구워주었다. 그때 그가 주었던 CD에는 주로 발라드 음악이 있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음악은


MC 더 맥스의 "그대는 눈물겹다.",

테이의 "좋은 사람",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유미의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와  

"Timeless"를 비롯한 SG워너비 1집의 4곡 등이 들어있었다. 

(하.. 이렇게 쓰고 보니 죄다 띵곡들... 혹시 최근 SG워너비에 입덕하신 분들께 1집 <우습지> 완전 강추해요!!)

CD를 맛있게 구워봐요

누군가 나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쓰고 직접 뭔가를 만드는 것이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값진 것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상대방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느끼는 소소한 행복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게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노래방에서 그는 항상 그 노래를 불렀다. 그때가 봄이었으니 그 노래를 들으며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거리도 함께 걸었다. 수업을 마치고 놀러 가던 길 버스 뒷좌석에서 이어폰을 각자 하나씩 서로의 귀에 꼽고 노래를 들었다.


<Timeless>의 전주만 들어도 그때 버스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따뜻한 봄바람과 파란 하늘과 벚꽃과 캠퍼스내 옆에 던 그 사람의 온기가 기억난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모든 낮과 밤의 거리도, 밤마다 전화하며 가끔 내게 불러주던 노래들도 기억난다.  

혹시나 휴대용 CD플레이어를 모르실 분들을 위해.. (이걸 설명해야 하는 날이 오다니 ㅠㅠ)


20대에는 그 사람들이 그리운 건지 그때가 그리운 건지 항상 헷갈렸지만 이제는 안다. 

가 그리워했던 건 그때, 스무 살의, 20대의 나와 그 시간이었다는 것을.

서로가 너무나도 달라져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예감한 순간에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항상 기억하고 있을 거란 걸.

들 중 지금까지 내 옆에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불안했던 시절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건 다 고마운 그 사람들 덕분이었다.


요 며칠 유튜브에 '놀면 뭐하니'와 'SG 워너비'가 계속 떴지만 무시하고 지내다가 도저히 클릭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제목이 나와 어쩔 수 없이 클릭을 했다.

 

- '놀면 뭐하니' SG워너비 <Timeless> 2021 라이브 버전


2021년 라이브라니 절대 못 참지.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Timeless 라니.

가사 한 번 잘 썼다. '눈 감는 그 날 내가 가져갈 추억 만들어줘서'라니.


+고맙고 축하해요 SG워너비!

+이래서 레트로는 절대 망하지 않나 봅니다.



https://brunch.co.kr/@swimmingstar/353
















#놀면뭐하니 #SG워너비가왔다! #TIMELESS개띵곡 #04학번모여라 #역시레트로 #스무살그때 #브런치작가 #브런치시작 #추억은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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