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눈에 공백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시간에 지원자가 무엇을 했는지 알고 공백이란 단어를 갖다 붙이는 거지?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더 근사한 일을 했을지 누가 알고?
두번째, 나는 그 누구보다 공백기가 많은 사람이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만 적어도 아래와 같다.
1) 졸업 직후
2) 수술 후 요양하며
3) 싱가포르에 취업할거라고 무작정 나라를 옮겨 구직하던 때.
4) 1차 싱가포르 거주 후 한국에 돌아와서.
5) 호주에서 거주하며.
6) 다시 싱가포르에 돌아와서
.....
여기까지 일단 적었지만 지금도 '아 그때!'하며 생각이 나는 공백기가 참 많다.
공백기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 기간에 따라 두 개로 나눠봤다. 6개월 이하는 공백기로 생각 안 하기로 했다.
1) 6개월~1년 정도의 공백기: "취업 준비하며 OO 공부를 했어요."
2) 1년 이상의 공백기: 1년 이상의 공백기면 취업 준비했다는 말로 퉁치기에는 빈약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내가 그때 정말 뭘 했는지를 보여준다. 공부를 했으면 공부를 했다고 하고, 어떤 프로젝트를 했으면 프로젝트르 했다고 쓴다. 이걸 이력서에 쓸 때도 있다. 사실 1년 이상이면 지원자도 나름 뭔가를 시작하고 실행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라고 생각이 된다.(꼭 결실을 보지 못해도 배운 것을 어필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지원하는 회사의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이 시기에 했다 하더라도 취업 준비했다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여 아래와 같은 대답을 했다.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습니다. 그때가 워킹홀리데이를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거든요. 제 커리어에 공백기가 생기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다른 세상을 볼 기회를 가지는 것도 청년 시절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호주에 서른 한 살에 갔고 소지한 비자만 워홀비자였다. 보통 워킹홀리데이로 가는 사람과 호주에 가는 목적이 완전히 달랐고 한 일도 달랐지만 대충 이렇게 둘러댔다. 설명하기가 복잡하거나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으면 둘러대도 괜찮다. 거짓말은 안 되지만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건 상관 없다. 무슨 고해성사 자리도 아니고...)
"이러이러한 책을 썼습니다. 책을 쓰는 게 제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습니다."
"와 책을 썼다고요? 오~ 근사한데요?"
(만약에 면접 시 이런 반응이 오면 관련 업무에 이 일을 굳이 이끌어내어서 PR을 할 수 있는 타이밍)
"저는 글만 잘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편집자, 교정, 디자인, 나중에는 책 마케팅까지도 저자가 관여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타 부서, 타 회사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효과적으로 마케팅하기 위해 공부하고 실제로 적용해 보기도 했습니다."
---> 위와 같이 이야기해서 면접 합격한 적 있음.
나는 몇 년의 공백기가 시작할 때 '책을 써야지, 호주에 가야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1도 없었다.
번아웃 후 혹은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다시 직업을 구하기 끔찍하거나 애매한 상황이 발생 >
그리고 몇 개월간 혼자서 뭘 할지 방황을 시작 >
방황 후 서서히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거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실행하기 시작.
고민에서 실행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느려터져서 적어도 몇 개월 길게는 1년까지 걸리는 경우가 많다.(완료가 아니라 겨우 시작하는 걸 말한다. 일단 결정하면 열심히 하지만 결정 내리기까지 우왕좌왕 끝도 없이 IF 생각을 하는 게 나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내가 무언가를 시작해서 끝을 내어 놓는다면 그 공백기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충분하다. 가끔씩 더 흥미로운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전은 기세야. 기세!" - 이 말로 과외 학생과 부모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기생충>의 기우.
이 공백기는 내가 참여한 모임이 될 수도, 정말 필요하고 꼭 따고 싶은 자격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무얼 했다는 것만 말하지 말고 '내가 거기에서 무얼 배웠나. 그것이 지금 지원하는 곳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관련'이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 갖다붙일 수 있다.) 를 설명할 수 있다면 공백기는 더이상 공백기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지내온 시간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면 그 확신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실전은 기세야, 기세!"
영화에서 이 대사가 나온 상황 자체는 웃겼지만 사실 이 말은 실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적용된다. 나의 기운과 에너지에 따라 일이 좌우될 때가 정말 많기 때문에.
아무튼 남에게는 공백기지만 나에게는 공백이 아닌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와 같은 시간을 지나는 모든 분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