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 선샤인』
"제발 이 기억만은 남겨주세요."
보는 내내 얄짤 없이 눈물 펑펑 쏟는다길래 선택한 영화였다. 그저 아무 느낌 없이 보던 내내 조엘이 외치던 영화 속의 대사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다.
최근에 내 맘에 불쑥 들어와 버린 그 아이 덕분에 밤에 잠도 편히 푹 못 자고 매일 연락만 기다린다. 어린 시절 감정은 있었으나, 무엇하나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그렇게 끝냈었던 그 아이와 우연히 그리고 다시 만났던 며칠.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이 이렇게 나를 하루 종일 지배한다면 이 감정은 무엇일까?
참 아파서 차라리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하던 때에 만난 이터널 선샤인. 영화가 조용히 내게 말한다.
'그래도 내 어린 시절 한 페이지를 폼나게 장식해 준 그 아이를 다시 만났으니,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순수했던 그때처럼 감정이 생기니, 게다가 지금은 감정과 시간마저 함께 공유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축복이잖아. 지금 이 아픈 감정마저도 그 사람과 너와 함께 한 시간의 흔적이야... 그걸 정말로 없었던 일로 하고 싶니?'
처음 만난 줄 알았던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사실 각자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다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끌리고, 다시 만나는 그 사람들. 한번 사랑했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어도 서로에게 다시 끌리는 걸까? 아무리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때의 그 느낌과 감정까지는 가져가지 못하는 걸까.
연애는 끝났지만, 기억은 남아있다. 아픈 기억은 지웠지만, 그 마음까지는 지우지 못한다. 그렇게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잡고 싶어 간절하게 도망친다. 그렇게 기억이 지워지는 게 아까울 만큼 그 사람은 소중한 사람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 그건 그래도 나일까, 아니면 그저 타인일 뿐인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서로가 지웠던 기억을 듣는 순간 보는 사람의 손까지도 오그라들게 만드는 그 하찮음. 그 하찮은 이유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지고 아파한다. 한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었던 그 이유는, 지금 서로를 더 이상 참아낼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 돌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시작한다. 기억을 지웠어도 끝난 게 아니므로. 다시 그 가시밭길일지 모르는 길을 가기로 한다. 아니 다시 만나는 사람들은 다시 같은 이유로 서로에게 끌리는 걸까?
하지만 이것만큼 비현실적인 게 있을까? 과연 그렇게 절절히 사랑하다가 헤어진 사람들 중에서 다시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차라리 아파서 끝났더라면, 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현실이 아니기에 우리는 기억 속 소중한 그 누군가와 다시 만나는 그런 판타지를 영화를 통해서나마 실현시키고 싶은걸까.
사랑의 많은 기억이 지워지더라도, 어느 때 어느 시간 어느 장소. 분명히 그때의 느낌과 감정은 다시 떠오른다. 기억은 가도 마음은 가슴 한편에 고이 자고 있다.
그래, 없던 일로 하기에 참 행복하고 설렜어. 당신이 아니라면 이 시간 이 장소 내가 과연 설렐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내 마음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난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