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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un 08. 2016

싱가포르에 살면서 장애인을 대하는 것에 느낀 몇 가지.

"선생님, 싱가포르에는 왜 이렇게 장애인이 많아요?"


그랬나? 싱가포르에 장애인이 더 많았나? 한 번도 의식한 적 없던 이야기를 누군가가 꺼낸다. 


"여기라고 장애인이 특별히 많겠냐? 여기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개방적이니까, 그들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잘 되어 있으니까, 그 사람들도 남들 의식하지 않고 바깥 생활을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지."


그 대답을 듣는 내가 왜 그리 부끄러웠을까. 장애인이 많은 게 아니라, 그들이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해서, 우리 눈에 많이 보이기 때문에 그렇단다... (물론 싱가포르보다는 북미, 유럽, 호주, 뉴질랜드 등이 훨씬 낫겠지만.)



"아, 기사 뭐하냐,  출발 안 하고.."


투덜거리며 버스 기사님을 한껏 째리러 고개를 들었을 때, 기사는 휠체어를 탄 승객을 버스에 태우고 있었다. 독일의 버스는 승하차시 버스의 한쪽이 기울어져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스스로 탈 수 있다고 했었나? 싱가포르에서는 기사가 직접 내려 휠체어를 밀어 버스에 태운다.(버스의 출구 쪽에는 숨겨진 받침대가 짠 하고 나타난다.) 그리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 그것을 기사가 직접 하다 보니 버스의 출발이 지체되지만 승객 중 그 누구 하나 재촉하거나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없다. 순간 짜증을 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운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차가 늦게 출발한다고 해서 승객들이 눈치를 주지도, 탄 사람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이전 직장상사의 아들은 소위 장애인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다리가 불편해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다 했다. 실제로 그 아이와 몇 번 대화를 하면서 그 아이의 영특함에 놀랐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이렇게 똑똑한 아이가 단지 몸이 조금 불편하단 이유로 특수학교에 다니며 일반학교에 다니는 2살 어린 동생과 똑같은 내용의 수업을 듣고 있다는 것이. 

한국인이지만 싱가포르에서 계속 자라서 한국어보다 영어가 훨씬 편한, 영어가 모국어인 그 아이. 한국에 돌아갈 수도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대우가 한국보다 싱가포르가 더 낫기에 부모들은 싱가포르에 계속 살기로 했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교통약자를 위한 버스"가 운행 중인 것을 보았다. 확실히 4년 전과 비교해서 이런 제도가 생겨나서 참 다행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일반 버스와 '다른' 버스로 또 다른 선을 그어놓은 것만 같아 불편하다. 현재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는 것이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이 걸리겠지만은 정말로 교통약자들을 생각한다면 구분 없이 우리 모두 함께 타는 버스로 만드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겠지. 그리고 그런 방향을 가지고 있으리라 긍정적인 믿음을 갖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휠체어를 탄 사람을 다 태울 때까지 버스 안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싱가포르 사람들. 모두가 장애인의 버스 승차를 얌전히 기다리는 그 분위기가 아니었더래도 난 그것을 가만히 기다리고 앉아 있을 수 있었을까? 우리의 의식도 많이 선진화되고 있지만, 버스가 늦게 출발하는 순간 한 사람이라도 불평하는 사람이 아직은 있지 않을까? 조금은 조심스럽다... 제도도 제도지만, 필요한 순간 인간으로서 배려할 수 있는 그 마음이 먼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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