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크마르(Alkmaar), 네덜란드
대도시 암스테르담에 지쳐 찾아간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알크마르.(Alkmaar)
매주 금요일이면 네덜란드의 이 작은 도시는 전 세계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치즈 시장이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열리기때문. 하루 30만 kg 이상의 치즈가 거래되는데 치즈를 검수하고, 그 치즈가 운반되는 모든 과정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35분 정도 가면 알크마르에 도착할 수 있어서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충분하다. 그리 길지 않은 여정이지만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차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이 자아내는 풍경에 도시에 지쳐있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기차역을 빠져나오면 안내원이 친절하게 치즈 시장이 열리는 바흐 광장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하지만 그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나는 다른 관광객들 뒤를 설렁설렁 따라가며 알크마르 시내를 구경한다. 시끄럽던 암스테르담과 달리 고요한 소도시와 그에 어울리는 호수, 그리고 그곳에 노니는 백조.
이미 바흐 광장은 사람들로 꽉 차 있다. 광장 한 편의 계량소에서는 추와 저울을 이용해 아날로그식으로 치즈의 무게를 재고 있다. 무게를 확인하고, 품질검사를 마친 치즈는 광장으로 옮겨지는데, 그곳에서 치즈 검사원의 검품이 이어진다. 치즈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데, 주황 빛깔의 치즈와 원색의 옷차림이 마치 조립 블록의 인물들 같기도,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사람들 같기도 하다.
사실 가장 재미있던 장면은 치즈를 어깨에 메고 뒤뚱거리며 걷는 아저씨의 모습. 이 지게를 어깨에 매면 저절로 뒤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는지, 아저씨들이 치즈를 옮기는 모습은 무척이나 귀엽다. 가끔은 치즈가 아닌 사람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구경꾼들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하기도 한다.
충분히 현대화 가능한 이 모든 절차를 알크마르 사람들은 굳이 옛날 방식대로 진행하고 있다. 현대화된 것이 있다면 이 모든 과정을 멀리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광장에 설치해 놓은 대형 스크린과 사회자가 들고 있는 마이크 정도. 디지털이 우리의 삶을 빠르고 편하게 만들었지만,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은 결국 아날로그이다.
행사가 끝날 무렵 사회자는 치즈시장 말고도 볼 게 많으니 바로 가지 말고 더 둘러보라고 권하지만, 치즈 거래가 끝난 후 도시는 곧 조용해졌다.
그 덕분에 게으른 나는 관광객들이 다 사라지고, 주민들만 남은 소도시 알크마르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사람에 치여, 비싼 물가에 치여 암스테르담에서는 생각도 안 했던 운하 투어를 알크마르에서 하며 운하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교회를, 집들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내가 딛고 있는 땅 아래에 항상 물을 두고 사는 사람들. 새삼 이 불모지나 다름없었을 땅에 길을 내고 삶을 이어나간 네덜란드인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한 시간 가량의 운하 투어 후에 이 조용한 도시가 더욱 좋아진 나는 내친김에 자전거를 빌려 알크마르의 교외로 나갔다. 오후의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던 창가에 앉아 조용히 뭔가를 쓰시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던 할아버지, 함께 보트를 타고 오후의 일몰을 감상하던 가족들. 머리는 이미 하얘졌어도 보트 위에서 열정적으로 생일파티를 하던 노인분들… 그렇게 그들의 삶을 살짝 훔쳐보고, 괜히 부러워하며 그 전원의 삶을 엿보고는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