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니스, 프랑스의 해양도시
한여름의 어느 날 이른 오후, 프랑스의 해양도시 니스에 도착했다. 이제까지 봤던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과 뭔가 다른 느낌이다. 굉장히 어수선하지만 그만큼 더 생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왠지 낯설지 않은 이 느낌.
성수기라고 모든 게 비싼 건 어느 나라나 똑같은지 짜증을 유발하는 주차요금을 내고, 근처에 봐 두었던 성당으로 갔다. 이 성당 역시 이름은 노트르담 성당. 노트르담은 'Our lady'란 뜻으로 프랑스 전역에 이와 같은 이름을 한 성당이 많다고 하는데, 다만 파리에 있는 것이 워낙 크고 아름답기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대명사가 된 것뿐이란다. 그러고 보니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과 그 외관이 비슷하다.
프랑스 제5의 도시 답게, 그리고 최고의 휴양도시 답게 거리엔 상점들이 넘치고, 여행객들은 도로를 가득 점령하고 있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감탄하게 되는 유럽식 전통건물 안에 들어서 있는 현대식 상점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지중해 바다.
'저 색깔이 사람들이 말하는 에메랄드 색이라는 거구나.'
부산에 살면서 심심하면 찾아가서 볼 수 있는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볼 때마다 항상 새롭고, 다른 느낌을 내게 준다. 그래,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바다다.
게다가 오늘은 역사적인, 내 생애 처음으로 지중해를 만나고 있으니.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부산의 바다를 계속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쭉 태평양 너머로 뻗어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지중해와 맞닿은 니스의 해변은 괜스레 끝이 보이지 않는 아주 큰 연못 어느 귀퉁이에 있는 것 같다.
파란 바다 색깔에 맞추어 백사장에 늘어선 파란 파라솔까지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유료 해변이고, 파라솔 없이 사람들 마음대로 놀고 있는 곳은 무료 해변이다. 서비스의 차이긴 하지만 돈으로 바다를 구분 지어놓은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좀 이상하다. 니스의 새변은 모래사장이 아닌 자갈마당이라 오래 걷지는 못하겠다. 앉으려고 하니 엉덩이도 따갑고 돌도 햇볕에 상당히 익었다. 그래도 무료 해변에 있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섰을 때 오른쪽으로는 쭉 벋은 해변이 있다면, 왼쪽을 봤을 때 높은 언덕이 눈에 보인다. 이 모습이 익숙하다. 어디서 보았지? 그래, 해운대! 해운대 바닷가도 딱 이런 지형이지.
"내게 해운대가 바다 그 자체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 해운대는 일 년에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던 곳. 수많은 추억이 있는 곳. 난 온전히 해운대의 풍경만을 내 가슴속에 담은 적이 있을까? 항상 누군가와 함께 했던 추억, 혹은 울적함에 소주병 사 들고 혼자 갔던 곳인데. 바다를 보면서도 바다를 본 게 아니라 내 옆의 사람과 혹은 나 자신과 이야기했지 바다와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해운대를 쉽게 자주 갈 수 있었던 건 참 행운이지만, 해운대의 기억이 바다 그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에 괜히 해운대에게 미안해진다. 하지만, 내게 해운대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여행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가끔씩 내 앞에 마주하고 있는 것만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내 앞에 있는 바다, 내 앞에 있는 음식, 내 앞에 있는 거리, 내 앞에 있는 사람.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에 집중하고, 이 순간 나와 함께 있는 사람과 공간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그래서 여행이 필요할 수 있다.
해변가에서 놀고 있는 섹시한 오빠들과 예쁜 언니들을 흐뭇하게 감상하며 도착한 언덕. 과연 내 예상대로 지중해 앞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너무 눈부셔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니스를 내려다보는데도 아까 해변에 두고 온 부산 생각에 갇혀 있다. 이곳에서 니스를 보니 더욱 부산 같다. 내 시선 어디에나 들어오는 산과 좁다란 골목길 그리고 바다까지. 니스에 도착하자마자 들었던 낯설지 않았던 그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비록 건물은 한국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지만, 한여름의 니스는 부산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프랑스 북쪽의 건물들은 대게 회색 건물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곳 니스는 색색의 건물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혹시 남쪽의 따뜻한 날씨와 북쪽의 습기가 많은 눅눅한 날씨가 사람들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쳐 건물 색깔도 차이가 나는 걸까? 국토가 넓다 보니 지역별로 삶의 방식도 많이 다를진대, 이곳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는 니스에서는 이렇게 밖에서 빨래를 말리는 반면, 프랑스 북쪽에서는 습기 때문에 외부에서 빨래를 말리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도 지역별로 음식과 문화가 다른데 하물며 한국보다 더 넓은 나라에서는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날까.
유럽 음식에 지쳐 베트남 쌀국수 가게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들어갔다. 프랑스어를 굉장히 잘 구사하는 베트남 주인이 나와 자리를 안내해 준다. 나중에 우리 옆으로 그녀의 친구들이 들어와 앉는다.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보다 더 열심히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을 보니, 자유로운 유럽의 생활방식에 그녀가 이미 많이 익숙해진 듯하다.
늦게 해가 지는 유럽. 8시 반이지만 아직도 해가 지지 않았다. 으레 그렇듯이 이곳에도 가판대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길에서 레게머리를 만들어 주며 돈을 벌고 있는 사람도 발견했다. 모든 것을 길에서 팔 고 있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한참을 구경하였다.
드디어 해가 지기 시작한다. 시간은 밤 10시가 되었다. 밤이 된 시내는 해운대 바닷가를 연상시킨다.
걷기에 적당한 온도가 된 해가 진 니스 거리를 계속 걸어 다녔다.
골목길도, 건물도, 성당도 다 프랑스의 그것이지만 바다가 있어 니스는 그 자체로 고유한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니스의 밤은 더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