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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Aug 20. 2016

비 오는 코펜하겐, 교회 콘서트

비 오는 도시는 아름답다

코펜하겐에는 3일 머물렀는데 도착했던 첫날을 제외하고 전부 비가 내렸다. 코펜하겐 시내에서 먼 곳에서 지내고 있는 데다 비까지 내리니 아침마다 나가지 말고 그냥 푹 쉴까란 고민을 살짝 하곤 했다. 여행이 길어지니 처음 온 곳이라도 꼭 다 둘러봐야 한다는 중압감(?)도 사라지고, 여행이 특별한 것이 아닌 게 되어 점점 귀차니즘만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도 다시 나를 다독여 비가 그치자마자 집을 나와 전날 지도에서 봐 두었던 로젠보르 펠리스 가든(Rosenborg palace garden)으로 갔다. 성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은 멋진 저택 같은 곳이지만, 왕족들이 여름에 별장처럼 사용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원도 더욱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흐린 날씨라서 좀 안타깝지만 그래도 정원과 성은 여전히 아름답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로젠보르 성 (Rosenborg palace)

성 안에는 왕족들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지하에는 진짜 금수저와 금왕관, 금으로 장식된 만든 술잔, 빗자루(로 보이는 물건), 칼 등 모든 게 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당시 왕족은 얼마나 호화롭게 살고 있었는지... 공책마저도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그곳에 글이나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정말 아름다웠다. 

 '그렇게 잘 생기고 예쁜 것 같지도 않은 얼굴들을 왜 이리 많이 그려놨을까?'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부터 했던 질문. 왜 이렇게 유럽에는 초상화가 많을까?  아마도 사진 기술이 없던 그 시절 그들이 '중요하다'라고 생각되는 인물의 얼굴을 남겨놓기 위한 하나의 행위겠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심지어 가계도에도 해당 인물의 얼굴을 그려놓은 건 정말 귀여웠다. 

그렇게 중세 덴마크의 최상위 금수저들이 금으로 무얼 만들어 놓고 놀았는지를 구경한 뒤, 역시나 화려한 타일과 가구로 이루어진 그들의 방을 함께 보았다. '왕좌의 게임'에 나올 법한 의자와 무엇 하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는 물건들. 이 방에 품위 있게 앉아 밖의 정원을 보며 그렇게 유유자적했겠구나. 한편 그 당시 이미 아시아와 무역 거래를 하고 있었던지 일본과 중국의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가 함께 있던 건 꽤나 신기했다. 아마 왕족들의 사치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겠지. 

밖에 내리는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릴 겸 성을 둘러보고 있었건만 폐관 시간이 되도록 비는 그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성을 나가는 길.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근위병들이 성을 지키고 있었다. 우비도 입지 않고, 정면만 응시한 채 우뚝 서 있는 그들. 괜히 안쓰러워 보인다. 흐린 하늘과 더불어 이제는 더 이상 화려한 왕을 위한 성이 아닌 박물관이 되어 버린 성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마침내 비는 그쳤지만 곧 해가 졌다. 이렇게 흐린 날씨 덕에 코펜하겐은 내게 조용하고, 차분한 곳으로 남아있다. 아무튼 그 덕에 걷기는 참 좋은 그런 곳이다.

코펜하겐 시청

으레 그랬듯이 교회로 보이는 건물이 있으면 무조건 들어가 보고 봤던 나는, 마침 화장실도 갈 겸 눈에 들어오던 교회에 들어갔다. 항상 적막감만 감돌았던 그동안의 교회들과 달리 그곳에서는 어떤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10대로 보이는 아이들이 빽빽하게 의자를 차지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교회 바닥에도 앉아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들 틈에 같이 앉아 버렸는데, 5분쯤 지났을까. 음악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덴마크어로 부르는 노래라 무슨 노래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멜로디가 참 아름다웠다. 그렇게 음악회가 끝날 때까지 함께 앉아 있었다. 그들의 문화, 언어, 그 어떤 것도 나는 아는 게 없지만, 그 멜로디는 참 편안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멜로디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가졌던 따뜻함, 친절했던 교회 신부님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룬데타른(Rundetaarn) - 17세기에 지어진 천문대
코펜하겐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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