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에서 베를린 가는 길
저녁 11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 8시간이 걸리는 여정 중 발틱해를 배로 건너는 45분의 여정이 또 포함되어 있어 긴장된다. 이번에는 버스를 바로 잡아 타야지. 버스로만 여행하다 보니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다. 나이트 버스를 탈 때는 웬만하면 뒷 쪽의 좌석을 확보한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고 더 이상 승객이 타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면 맨 뒷좌석으로 간다. 그리고 다리를 쭉 벋고 그곳에 누워 자기.
오늘도 역시 그 계획을 하고 뒷좌석에서 계속 눈치를 보다가 출발 10분 후, 맨 뒷좌석으로 갔다. 그곳에서 발 뻗고 누워 차창 너머로 계속 지나가는 가로등을 바라보다가 잠들어 버렸다. 3시간쯤 지났을까. 발틱해의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내가 타고 온 버스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기억해두기 위해 버스를 뚫어져라 본 후, 배의 갑판으로 올라갔다. 새벽의 바닷바람은 너무 매서웠지만, 배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갑판 위에는 지금까지 살면서 본 것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밤하늘의 달과 별이 펼쳐져 있었다. 비록 배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때문에 다는 볼 수 없었겠지만, 검은 바다 위 유일하게 빛나는 별과 초승달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시간 발틱해 한가운데서 별을 볼 수 있는 행운은 또 얼마나 큰지. 그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길 헤매고 고생하고, 불편했던 시간들이 다 감내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45분의 시간은 얼마나 짧은지, 다시 버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도착했다는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버스에 도착하여 맨 뒷좌석에 다시 타서 누울 준비를 하는데, 어떤 사람도 끝 좌석에 같이 앉는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수단이라고 했나?)에서 어머니와 함께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 남자는 어머니를 앞좌석에 두고 편한 뒷좌석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내가 누워 있던 게 부러웠던 걸까? 머리는 각자 반대방향으로 하고 발을 마주 보게 해서 누워 자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한다.
'뭐야. 이 놈은.'
당연히 불편했지만, 그도 버스에서 자는 게 오죽이나 불편할까 싶어서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발만 마주 보게 하고 누워 있는데 이 남자, 자꾸 내 발과 다리를 건드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두가 잠든 버스 안에서 몇 번 눈치를 주었지만, 못 알아들은 건지 무시하는 건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그의 다리를 세게 걷어차고는 앞좌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한 번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나는 퀭한 눈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차창 밖 지나가는 풍경에 베를린에 도착했다는 설렘이 다가 올 무렵, 그 수단에서 온 남자가 내 옆에 오더니 친구가 되고 싶다며 연락처를 물어본다. 너 때문에 내 명당자리를 뺏기고, 성추행당한 것 같고, 잠도 못 자서 난 너와 친구 같은 거 안 하고 싶다고.
"전화번호 없어."
"그럼 페이스북 주소 좀 알려주면 안 될까?"
"없어."
"이메일 주소는 없니?"
"... 좀 저리 갈래?"
얼굴도 보지 않고, 짜증 섞인 내 목소리에 그 녀석은 물러나 그의 어머니 곁으로 갔다. 새벽에 좀 더 걷어차 줄걸 그랬나? 모두가 잠든 버스, 상관하지 말고 욕 좀 해줄 걸 그랬나? 내가 너무 친절했나?
혼자 여행을 하며 이런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막상 실제로 겪으니 기분이 더럽다. 이런 것을 신경 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씁쓸하다. 이 이야기와는 별개지만 타인(특히 모르는 남자)이 친절을 베풀 때 의심부터 하는 게 습관이 된 내가 싫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코펜하겐을 떠날 때도 달갑지 않은 해프닝을 겪으며 베를린에 도착했다.
PS. 여행 중 이런 일은 잊을만하면 겪게 돼서,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을 겪지 않을지,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대처법일지 이래저래 생각해 보고 있다. '여행 중 만날 수 있는 변태'로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고, '내가 지금까지 만난 변태' 혹은 '성추행'처럼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당했던 적지 않은 일들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나중에 써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