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CHAPTER 17 : 지킴이 철폐에 대한 투표

17화

by 현영강

「투표가 열리는 날.」


개최 장소는 단상 앞 평지서부터 시작되었다. 부활의 장은 끝내 열리지 못했다. 전주까지만 하더라도 부흥의 기류를 타고 대회 준비를 하던 군과 포렌, 토슈, 세 사람은 하루아침에 일손으로 전락했다. 물론 그들 셋은 고운 얼굴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투표는 피크의 지시하에, 종이와 펜으로써 진행되는 걸로 결정 났다. 종이는 마을에 있어 귀한 축에 속하는 물건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사용처가 애매하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소금도 후추도 아닌, 설탕과 사카린의 경계 정도. 고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토에게는 예외였다.


「다시 말해, 군이 담배 마는 종이를 내놓아야 했던 이유는 그가 글쟁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경우는 딱 두 가지입니다.”


단상에 발을 걸친 디케이가 말했다. 사람들은 멸망의 날이라도 온 듯한 침울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을 사람 모두가 모인 규모는 네모 넓적한 단상 두 개를 나란히 붙여 놓은 것과 크기가 흡사했다. 평소와 가장 다른 것은 제일 앞쪽 열에 자리한 얼굴들이었다.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뒷줄에 자리한 피크 내외. 오랜만에 집에서 내려온 워블을 향해 끊임없이 뻗어가는 사람들의 눈길은 덤이었다.


“잉크 없는 펜과 종이입니다!”


디케이가 펜과 종이를 각각 소개했다.


“투표는 간단합니다! 지킴이 철폐에 동의하시면 구멍을! 철폐에 동의하지 않으시면 종이를 그대로 두시면 되겠습니다!”


디케이의 눈빛은 말을 이어 나갈수록 무섭게 변했다. 디케이는 목소리를 긁으며 말을 이었다.


“종이는 마을 사람 수에 맞게 준비하였습니다! 무효표의 시비가 나오지 않게 괜한 서명을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구멍! 원본! 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디케이는 몸을 돌려, 단상 뒤쪽의 그림자를 가리켰다.


“투표는 저곳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천막으로 하늘과 사위를 빛으로부터 가려 놓았습니다! 누출로 인한 피해는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걸, 저 디케이가 약속하겠습니다!!”


몇몇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누가 봐도 구멍을 뚫을 사람이었다. 정확히 그들 사이였다.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았고, 인기척조차 풍기지 않던 곳. 낮은 곳에서의 목소리였지만, 정말이지, 장소를 울리는 소리였다.


“지킴이가 사라진 뒤에는 어떻게 할 셈인가?”


―레드였다.


그가 벌린 입을 닫고, 말을 그칠 때면 늘 뒤따르던 코웃음. 오늘만은 그 누구의 입에서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벽처럼 서 있던 사람들이 레드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길을 여는 사람들의 눈빛은 강렬했다. 디케이의 대답 소리가 울렸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여기에 계신 모두는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초창기 마을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자유 하나만을 갈구하며 다른 무엇에도 눈을 두지 않던 본연의 시절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시절은 당연하게도, 배가 고플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쫓기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내 왔듯이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거기서 레드는 또 한 번 반문했다.


“자네는 확신할 수 있나? 여기 있는 모두는 도피를 꾀한 자들이야. 꿈으로의 도피도 아니지. 당장 마주한 현실이 싫어 무의 땅으로 뿌리를 옮겨 온 이들이라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레드 씨.”


디케이의 싸늘함, 그 싸늘함에 레드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로 걱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레드는 웃으며 대답했다.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듣고 싶은 걸세. 자네 역시도 말을 듣고 싶은 것 아닌가.”


순간, 수군거리는 소리가 일었고, 퓨티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덮었다. 레드에 대한 경탄과 동조였다. 그와 같은 장소는 사람들이 모인 곳 군데군데로 번져 나갔다.


“상황은 비슷하지만, 그때와는 다를 겁니다. 우리에겐 경작지가 생겼으니까요. 기존에 드시던 양에서 절반가량을 줄이면 되는 수치입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현영강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반갑습니다. 소설 쓰는 글쟁이 '현영강' 이라고 합니다.

15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6화CHAPTER 16 : 퓨티가 건넨 케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