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살인'을 공모한다.

18화 : 네 번째 장편소설 '조향사'를 시작하며

by 현영강

어제 『반반한 마을』 원고를 송고했다.

텅 빈 모니터를 보며 느꼈던 그 지독한 공허함.

그걸 견디는 방법은 술도, 여행도, 휴식도 아니다.

나 같은 글 중독자에게 해독제는

오직 하나, '새로운 이야기' 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쓴다.

이번에는 비릿한 피 냄새 대신,

지독하고 매혹적인 '향'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묻는다. 좀 쉬엄쉬엄하라고.

하지만 멈추면 내 심장은 고장 난 엔진처럼 식어버린다. 나는 살기 위해, 이 불안을 태우기 위해,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연다.


이것은 나의 네 번째 장편소설,『조향사』의 시작이다.

가장 향기로운 살인이 시작되는 첫 페이지.


이 글을 읽는 순간,

당신의 코끝에도 비릿한 향수가 스치기를.





[0 : 프롤로그]


붉은빛의 환락가. 향에 취한 사람들이 휘청거리는 건지, 그들에 취한 내가 휘청거리는 건지, 아무튼 지금 내 시야는 멀쩡하지 않다.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어도 이곳을 가득 채운 향을 막지 못했으리라.


‘내 생에 이런 곳에 와 볼 줄이야.’


근 한 달을 고민했다. 어쩌면 그 메일의 첫 문장을 읽은 순간부터 홀린 걸지도 모르겠다. 제보 메일이 온 건, 아주 후덥지근하던 7월 말.


“안녕하세요, 서 기자님.”


여기까진 그래,

정상인인 척하는 제보자의 인사였다. 문제는 뒷부분.


“저는 [모름지기]에서 몸을 파는 창녀입니다.”


까지도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았다. [모름지기]라는 곳을 모르는 기자는 없으니까. 그러나 그다음을 읽고서는 평정심을 유지키 어려웠다.


“언젠가부터 금방이라도 미쳐 버릴 듯한 향이 끊이질 않아요. 관계 시에 감도가 높아졌고, 흰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동생들을 보는 것도 거진 일상이 돼 버렸습니다. 도와주세요, 기자님. 제가 드릴 수 있는 정보는 없습니다. 그저 양귀비라고 불리는 사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뿐.”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아니, 도파민을 느꼈다. 제보가 거짓이면 찌에 걸린 물고기처럼 피를 한 번 뱉고 말면 그만이고, 제보가 진실이면 그것대로 재밌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그녀의 제보처럼 이 기묘한 향에 맨정신으로 서 있지조차 못할 줄이야.


“처음 보는 얼굴이군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며 몸을 돌렸다. 진청색의 페도라, 눈을 가릴 정도로 눌러쓴 탓에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야 했다. 모자와 마찬가지로 진회색에 가까운 정장을 입고 있었다. 맞춤처럼 몸에 딱 붙어 그의 체형이 보였다. 탄력 있는 몸이었다. 그의 구두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후각이 좋으면 더욱 타락하기 쉽지요.”


그가 말했다.


“최음제야?”


“…최음제, 그런 저급한 물건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표현이 있지요. …미약이라고 하는.”


“당신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


“저를 아십니까?”


그러다 그는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럴 정신상태는 되시고요?”


“새로운 손님이 올 거란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리 강한 미약을 쓰진 않았을 텐데…, 운이 없으시군요. 아, 이 향의 이름은.”

―「타락한 성소」라고 합니다.

“이름 한번 지랄맞네.”


“그런가요? 제가 짓진 않은 터라. 아아, 어코드 설명을 빠뜨렸군요. 탑은 프랑킨센스, 하트는 로즈 앱솔루트, 바텀은 오우드와 코스터스 루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몸을 감싸며 말했다.

“궁금하지 않아.”


“알아서 나쁠 건 없습니다. 일단 들어나 보세요. 프랑킨센스는 너무 유명하니 설명을 뺄까 싶기도 합니다만, 초심자의 행운을 드리는 의미로 친절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프랑킨센스. 절을 떠올리시는 분이 많던데, 그건 좀 품위가 없지요. 조금 더 고풍스럽게, 아니, 우아하다는 표현이 적절하겠군요. 차가운 소나무 수지. 이 정도면 만족할 듯합니다. 하트는 로즈 앱솔루트라고 말씀드렸듯이, 장미입니다. 풋내기 장미가 아닌, 수백 송이의 꽃잎을 꿀에 절인 듯 진득하고도 관능적인 장미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듯합니다, 듯합니다. 자기가 그라스의 그르누이라도 된 듯 말하는, 그 모든 게 거북했다.


“오우드는 생략하겠습니다. 흔하디흔한 나무거든요. 물을 가득 머금은 숲.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는 향은 아닙니다. 당신이라고 저를 부르셨나요? 저도 당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말을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말할 부분이 가장 중요한 단락이라서요.”


이야기를 멈춘 그는 어느새 내 발 앞에 서 있었다.


“당신이 지금 젖은 이유, 궁금하지 않습니까?”


나는 어디에 눈을 두는지도 모르는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치욕스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붉은 눈시울, 상당히 고혹적이군요. 입술을 탐하고 싶을 만큼.”


“미친 새끼.”


“바텀의 터치, 코스터스 루트. 일명 살냄새라고 하죠. 쿰쿰하다는 분도 있고, 구역질을 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살냄새가 뭡니까. 인간 그 자체로 환장하게 하는 거거든요. 저는 지금껏 그보다 원초적인 향을 맡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꺾더니 정말로 내 입술에 입을 포개기라도 하려는 듯 가까이 다가왔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 줄이 툭― 하고 끊어질 것 같았다.


“어때요, 미치겠지요?”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말문이 마비되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여기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한데. 직업이 뭘까, 호기심? 흥미? 그런 감정이 느껴집니다. 찢김이 없는 온전한 청바지를 입은 걸 보면 아래쪽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아니시겠고. 장신구, 하다못해 엄지나 검지에도 반지가 없으니, 이것 참 어렵군요. 남은 건 숄더백인데…, 명품은 아니군요. 아무래도 안쪽을 수색해야 이 번거로운 스무고개를 피차 손쉽게 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제가 당신의 가방을 감히 뒤져 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군말 없이 가방을 넘겼다. 기자 생활을 하며 그나마 배운 처세술이다. 도망칠 구멍을 찾을 수 없으면 상대가 바라는 대로 하는 게 최선의 피신처라는 것. 그 가르침을 준 선배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뭐. 가방을 뒤적거리는 손이 아지랑이처럼 겹쳐 보였다. 도대체 이 취함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걸까. 그래도 짐을 쌀 때 예상한 일인지라, 걸릴 건 없었다. 녹음기, 수첩, 하다못해 신분증까지도 두고 왔으니까. 아, 신분증은 당연히 빼야 하는 물건인가.


“뭐가 많이 없군요.”


불쑥 그가 말했다.


“…뭐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간신히 물었다. 그는 물건들을 나열했다.


“카메라, 초소형 녹음기, 볼펜, 렌즈, 생리대, 지갑, 그리고…, 폭이 좁은 스프링 제본, 빳빳한 하드커버의 취재수첩.”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모자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기자 분이 너무 조심성만 갖추고 오셨군요. 이러면 돌아가기 어려우십니다. 진심이에요.”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눈이었다. 저런 눈은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운동을 했거나, 살인을 했거나, 둘 중 하나이다.


“돌려보낼 생각이 없어?”


거기서 난 승부수를 띄웠다.


“일국의 기레기를 우습게 보면 쓰나. 그 정도 뒷배도 없이 이 시궁창을 방문했을까. 그 좋은 추리력 다시 한번 써 봐, 잘하던데.”


통하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난 지금 영화 ‘타짜’의 피날레에서 고니가 건넨 세 끗보다 더한 뻥카를 날리고 있다. 입안에 침이 가득 고여 삼켜야 했지만, 작금의 상황 앞에서는 무얼 해도 실이 될 것 같았다. 그때, 썩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입에 있는 침을 모두 게워 냈다. 취한 인간은 손에 꼽을 수 없이 봤기에, 그들을 흉내 내는 건 너무도 쉽다. 남자의 표정을 살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뒤따라왔다. 내가 봐도 고운 정장에 묻은 양이 상당했으니 말이다. 이제 그가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었다. 그는 소리 내지 않았다. 조용히 지나가는 단말마도, 재수가 없다는 듯 토하는 욕설도, 아무것도 없었다. 녀석은 그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옷을 닦아 냈다. 그 침착함이, 그 정돈된 움직임이, 나를 더 절망케 했다.


“기자 아가씨.”


놈이 말했다.


“작금 당신의 천박한 행동을 당신이 말한 뒷배가 감당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꺼져.”


그리고 나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놈은 웃었다. 모든 걸 안다는 듯한, 완벽한 비웃음이었다. 놈은 품 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투박하고 못생긴 병이었다. 놈은 내 앞에서 무릎을 굽혀 앉았다. 눈이 맞닿았다.


“이건 제 작품입니다.”


놈이 유리병 마개를 여는 소리가 들렸다. ‘퐁’ 하는 가벼운 소리. 순간,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다. 관능적이고 진득한 향이 아니었다.

「달랐다. 맵고, 시큼하고,

뇌를 곧장 후려치는 듯한 냄새.」

나는 손으로 코를 막으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놈은 내 턱을 강하게 붙잡았다. 꼼짝할 수 없었다.


“당신이 맡은 코스터스 루트가……”


놈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