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의 살의

18화 : 헤밍웨이와 카뮈가 내게 가르쳐 준 패배감에 대하여

by 현영강

서점에 가는 건 내게 취미가 아니라 '자해'에 가깝다. 남들은 마음의 양식을 쌓으러 간다지만, 나는 패배감을 확인하러 간다. 매대에 깔린 명작들을 펼칠 때마다, 나는 활자로 이루어진 주먹에 명치를 얻어맞고 숨을 헐떡인다.


"젠장, 이 문장은 내가 썼어야 했는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보다 질투가 먼저 솟구친다. 이건 명백한 살의(殺意)다. 이 작가들은 내 머릿속에 들어와 내가 평생을 바쳐 쓰고 싶었던 문장들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훔쳐 가서 보란 듯이 박제해 놓았다.


가장 지독한 도둑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그의 소설『노인과 바다』를 읽던 밤을 기억한다. 그는 뼈만 남은 청새치처럼, 내 문장에 붙어 있던 군더더기 살점들을 잔인하게 발라버렸다. 형용사 하나 없이, 감탄사 하나 없이, 그저 묵묵히 낚싯줄을 당기는 노인의 등처럼 건조한 문장들. 그 메마른 문체로 기어이 독자의 눈물샘을 터뜨리는 그 솜씨가 너무 완벽해서, 나는 책을 덮고 한참 동안 허공에 욕을 뱉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또 어떤가. 전쟁과 사랑, 그리고 죽음. 세상에서 가장 신파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는 울지 않는다. 마지막 장,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주인공이 연인의 시신을 뒤로하고 걸어가는 장면에서 나는 질식할 것 같았다. 슬프다고 말하지 않아서 더 슬픈 그 문장들 앞에서, 내 소설 속 감정 과잉들은 싸구려 휴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괴물이 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아니, 어쩌면 어제."


이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미 졌다.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무관심을 이토록 서늘하게, 이토록 무심하게 툭 던질 수 있는 배짱.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방아쇠를 당기는 뫼르소의 권총 소리가 내 고막을 찢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압도적인 허무주의 앞에서 펜을 꺾고 싶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이미 세상에 다 나와 있다면, 나는 왜 쓰는가. 이미 그들이 정점을 찍어놓은 산을 오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지만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질투는 나의 가장 좋은 연료다. 나는 그들의 책을 덮지 않는다. 대신 그 문장들을 씹어 먹는다. 그들의 건조함을 훔치고, 그들의 허무를 베끼고, 그들의 문체 위에 내 식대로의 색깔을 덧입힌다.


헤밍웨이의 바다에 빠져 죽더라도, 카뮈의 태양에 타 죽더라도. 나는 기어이 그들 옆에 내 책 한 권을 꽂아 넣고 싶다. 살의를 느낄 만큼 부러운 그 문장들이, 오늘도 나를 쓰게 만든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읽다가 책을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질투 나는 작가'가 되기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