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의 전쟁

6화 : 영감은 번개처럼 치고, 안개처럼 사라진다.

by 현영강

인간의 뇌는 믿을 게 못 된다.

특히 나처럼 매일 약을 삼키고,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의 뇌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내 기억력을 1%도 신뢰하지 않는다.




작가 지망생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길을 걷다가, 혹은 샤워하다가, 기가 막힌 문장이 떠오르면, 이렇게 생각한다.


"와, 대박이다. 이따 책상에 앉아서 써야지."


단언컨대, 그 문장은 책상에 앉는 순간 증발한다.

꿈에서 본 로또 번호가 아침이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영감이라는 놈은 휘발성이 강한 기체다.


붙잡아두지 않으면 1분 만에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당신은 빈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 뭐였더라?" 하고, 자책하게 될 것이다.


자책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아니, 기록에 집착한다. 이것은 성실함의 문제가 아니라 강박증의 영역이다. 나는 주로 수첩을 들고 다니는데,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 영수증 뒷면도 좋은 방법이다.




길을 걷다 멈춰 서서

무언가를 미친 듯이 적고 있는

나를 보면 사람들은 수상하게 쳐다본다.


신경쓰지 마라.


무엇을 메모하는가. 거창한 플롯이나 주제 의식이 아니다. 그런 건 나중에 만들어도 된다. 우리가 채집할 건, 찰나의 '디테일'이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취객의 횡설수설하는 말투.

어느 직원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흐르는 묘한 권태.

비 오는 날 젖은 박스에서 나는 눅눅한 냄새.




이런 것들은 책상 머리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날것의 재료들이다. 소설의 리얼리티는 작가의 상상력이 아니라, 이런 구질구질한 메모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게 맞다. 그러나, 그전에 글은 '발'로 주워 담는 것이다. 하이에나가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듯이, 작가는 세상의 비명과 신음과 냄새를 찾아 헤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는 즉시 박제해야 한다.

메모는 작가의 적금 통장이다.

글이 안 써져서 막막할 때, 통장을 열어봐라.


거기에는 과거의 내가 저축해 둔 수많은 아이디어와 문장들이 이자까지 쳐서 기다리고 있다.


그 든든한 자산이 있는 사람은 결코 '백지의 공포'에 질려 도망치지 않는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그 생각. 잡아라.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펜을 들어라. 그리고 당신의 기억을 의심하고, 당신의 손을 믿어라.




천재는 기억하지만, 프로는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