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감옥일지도
당신이 만약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한 가지는 확실하게 각오해야 한다.
당신은 지독하게 외로워질 것이다.
단순히 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물리적인 고립을 넘어,
정서적인 유배를 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글을 쓴다는 건,
세상의 속도에서 이탈해 멈춰 서는 행위다.
남들이 웃고 떠들며 흘려보내는 순간들을, 당신은 현미경을 들이대고 관찰해야 한다.
친구가 실연을 당해 울고 있을 때, 당신은 그 친구를 위로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저 눈물의 농도는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저 떨리는 어깨를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까'를 계산하게 된다.
그 순간 당신은 친구의 곁에 있지만, 동시에 아주 먼 우주에 떨어져 있는 이방인이 된다. 이것을 나는 '관찰자의 저주'라고 부른다. 삶에 온전히 뛰어들지 못하고, 항상 한 발짝 물러나 기록해야 하는 자의 비애.
그 거리감 때문에,
당신은 군중 속에서도 섬처럼 고립될 것이다.
새벽 2시.
모두가 잠든 시간,
하얀 모니터의 커서만이 당신을 노려본다.
그 사각의 링 위에는 코치도, 세컨드도 없다.
오직 당신과,
당신이 이겨내야 할 문장이라는,
괴물뿐이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부모도, 연인도, 그 어떤 스승도 대신 써줄 수 없다.
그 처절한 독방의 시간을 견뎌내는 건,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사람들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 밥 먹다 말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지.
왜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왜 멀쩡한 직장을 놔두고 그 돈도 안 되는 자판질에 목숨을 거는지.
그들은 당신의 고뇌를 '유난 떤다'고 폄하할 것이고, 당신은 해명할 힘조차 없어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그렇게 관계는 서서히 멀어진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그 외로움은 형벌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어지는 입장권이다.
시끄러운 시장통에서는 내면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모든 소음이 차단된 진공 상태, 그 적막강산 속에서만 비로소 당신의 영혼이 말을 걸어온다.
그때 튀어나오는 문장들이 진짜다.
외로워서 미칠 것 같고, 고독해서 뼈가 시릴 때, 그 통증을 잉크 삼아 쓴 글만이 독자의 가슴을 벤다.
그러니 외로움을 피하려 하지 마라.
술자리로 도망치지 말고, SNS의 '좋아요'로 위로받으려 하지 마라. 그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씹어 먹고, 소화해라. 당신이 지금 사무치게 외롭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지금 작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길은 혼자 걷는 길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면, 펜을 꺾어라.
하지만, 견딜 수 있다면.
당신은 그 고독의 끝에서,
세상 그 누구보다 찬란한 문장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