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여자의 강박
카페 창가 자리에 앉은 여자의 앞에는 두꺼운 바인더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방금 주문하고 받은 영수증을 소중한 부적이라도 되는 양 바인더의 빈칸에 끼워 넣었다. 그 안에는 날짜도, 결제 금액도 알아볼 수 없게 하얗게 바래버린 수백 장의 영수증들이 빼곡했다.
"왜 다 지워진 영수증을 모으는 겁니까?"
나의 무례한 질문에도 여자는 불쾌한 기색 없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의 손끝이 매끄러운 감열지 표면을 스치듯 지나갔다.
"이 종이 위에 찍힌 글씨들은 열을 받거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증발해 버려요. 처음엔 내가 그날 무엇을 먹었고 어디에 있었는지 선명하게 증명하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 백지가 되죠."
여자는 텅 빈 영수증 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바스락거리는 얇은 마찰음이 건조하게 울렸다.
"내가 세상에 남긴 흔적들도 이렇게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투명해졌으면 좋겠거든요. 이것들을 보고 있으면 묘한 위안이 돼요. 내 삶의 오점이나 후회 같은 것들도 언젠간 이렇게 하얗게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가만히 내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소설가인 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활자를 세상에 새겨넣기 위해 매일 밤을 고뇌와 활자 사이에서 발버둥 친다.
타인의 고통과 나의 결핍을 먹물 삼아 가장 지독하고 선명한 문장으로 엮어내려 안달하는 나와, 자신의 존재가 휘발되기를 바라며 백지가 된 영수증을 수집하는 여자.
우리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각자의 구원을 향해 걷고 있었다. 누군가는 영원히 기억되기 위해 기록하고, 누군가는 완벽하게 잊히기 위해 지워짐을 수집한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가 카페 문을 열고 나갔다.
테이블 위에는 방금 전까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아직은 검은 잉크가 선명한 영수증 한 장이 버려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이 선명한 증명도 언젠가는 그녀의 바람대로 백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소설 속에서 그녀의 창백한 얼굴만큼은, 아주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문장으로 남게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