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의 추출

6화 : 검다.

by 현영강

​그 카페의 바리스타는 마치 수술대에 선 외과의사 같았다. 저울 위에 포터필터를 올리고 영점을 맞추는 손길에는 일말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서늘한 결벽이 묻어났다.


1그램의 원두, 1도의 물 온도, 그리고 1초의 추출 시간.


그는 단순히 커피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검고 쓴 어떤 관념을 기계의 압력으로 억지로 쥐어짜 내는 중이었다.


​"크레마의 두께가 미세하게 무너졌군요. 다시 내리겠습니다."


​그가 방금 추출한 에스프레소 잔을 싱크대에 미련 없이 쏟아버리려 할 때, 나는 짧게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냥 주십시오. 실패한 쓴맛도 맛이니까요."


​바리스타의 미간이 좁혀졌지만, 그는 이내 불편한 기색을 숨기며 잔을 내밀었다. 진득하고 어두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혈관을 타고 날카로운 각성 상태가 밀려왔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그것을 활자로 해체해야 하는 소설가의 일상에서, 카페인은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우는 꽤나 위험한 촉매제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이 통제할 수 없는

심박동을 조용히 즐긴다.


​"왜 그렇게까지 숫자의 정확함에 집착합니까?"


빈 잔을 내려놓으며 묻자, 그가 융포로 기계를 조심스레 닦아내며 답했다.


​"원두는 로스팅되는 순간 이미 불에 타 죽은 열매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새까만 시체에서 가장 완벽하고 응축된 유언을 뽑아내는 것뿐이니까요.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그건 그저 역겨운 잿물일 뿐입니다."


​죽은 열매의 유언. 그 건조한 비유가 뇌리를 때렸다. 나는 방금 그의 '실패한 유언'을 기꺼이 삼킨 셈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매일 밤 키보드 위에서 치러내는 의식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내면에 침전된 타인의 상처와 나의 결핍이라는 죽은 열매들을 문장으로 압착해 내는 과정.


그 역시 단어 하나, 조사 하나의 무게에 따라 누군가의 마음을 관통하는 소설이 되거나, 아무도 읽지 않는 텍스트의 찌꺼기로 전락하고 만다.


​나는 혀끝에 맴도는 짙은 쓴맛을 음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밤엔 나 역시 서재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독하고 시커먼 유언을 모니터 위에 추출해 내야 할 것이다. 완벽한 타점이 빚어낼 그 한 잔의 문장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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