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병동
"딩동- 704번 환자분, 3진료실로 들어오세요."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대기실의 무거운 공기를 가르고 울려 퍼졌다. 벽면에 매달린 전광판의 붉은 LED 숫자가 바뀔 때마다, 플라스틱 의자에 일렬로 앉은 사람들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이곳 병원 대기실에서 인간은 고유의 이름과 서사를 거세당한 채, 오직 세 자리 숫자로만 호명된다.
나 역시 손에 쥔 번호표의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며 붉은 숫자가 내 차례를 가리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동치는 신경을 억누르기 위해 정기적으로 처방약을 받아야 하는 나에게, 이 희고 차가운 공간은 익숙하면서도 영원히 적응되지 않는 활자 무덤과 같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방금 전까지 내 옆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이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흰 처방전이 들려 있었다. 그 얇은 종이 한 장은 의사라는 권위자가 그녀의 고장 난 육체를 해부하여 써 내려간,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명징한 단편 논픽션이다.
은유나 비유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 라틴어 병명과 화학 약품의 나열. 그 완벽한 사실주의 문장 앞에서, 여자의 표정은 길을 잃은 사람처럼 텅 비어 있었다.
문득, 소설가인 내가 평생을 바쳐 쥐어짜 내는 문장들이 저 얇은 처방전 한 장의 무게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서늘한 패배감이 밀려왔다. 나는 타인의 고통을 예쁘게 포장하고 비틀어 전시하지만, 진료실 안의 백의를 입은 편집자들은 환자의 가장 치부스러운 증상을 단 몇 개의 기호로 확정 지어 버린다.
"712번 환자분."
마침내 전광판에 내 숫자가 떴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 비상약을 쥔 손에 땀이 배었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불완전한 신경계가 의사의 차갑고 객관적인 키보드 타이핑 소리를 거쳐 어떤 텍스트로 박제될지 확인하러 들어갈 시간이었다.
오늘 밤 서재로 돌아가면, 나는 진료실에서 받아 든 이 차가운 논픽션의 처방전을 다시 가장 뜨겁고 끈적한 소설의 문장으로 해체해 버릴 것이다. 그것이 숫자로 전락해 버린 내가, 육체의 한계를 비웃으며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처절한 복수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