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유자차
머그잔 바닥에서 쇠스푼이 달그락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서재의 정적을 깼다. 뜨거운 물을 붓자, 유리병 안에서 딱딱하게 굳어 있던 샛노란 덩어리들이 형체를 풀며 진득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수면 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유자는 본디 생으로 씹어 삼킬 수 없는 과일이다. 그 껍질은 지독하게 쓰고, 과육은 혓바닥이 말릴 정도로 시큼하다.
인간은 그 폭력적인 원초의 맛을 견디지 못하고, 과일을 난도질해 자신과 똑같은 무게의 설탕 속에 파묻어 버린다. 빛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곳에서 설탕에 절여진 유자는 서서히 숨을 죽이며 달콤하게 부패해 간다. 그것을 우리는 '숙성'이라는 우아한 단어로 포장한다.
나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넘겼다. 혓바닥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단맛 뒤로, 미처 다 죽지 못한 껍질의 씁쓸함이 목구멍을 칼칼하게 긁고 지나갔다.
불현듯,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내 소설의 문장들이 이 유리병 속의 유자청과 다를 바 없다는 기묘한 자각이 들었다. 나는 타인의 기구한 삶, 감추고 싶은 치부, 내면의 신경증적 불안이라는 날것의 쓴맛들을 도마 위에 올린다. 그것들을 가차 없이 활자로 난도질한 뒤, '서사'와 '은유'라는 이름의 달콤한 시럽을 잔뜩 부어 독자들이 삼키기 좋게 절여내는 것이다.
독자들은 내 문장을 읽으며 그 적당한 비극의 농도에 위로받았다고 착각하겠지만, 실상 그들이 삼키고 있는 것은 철저하게 가공되고 부패한 누군가의 생살이다.
그리고 나는 그 끈적한 비극을 팔아 안도를 얻는 위선적인 조향사나 다름없었다. 바닥에 가라앉은 유자 껍질 하나를 건져 어금니로 꾹 씹었다. 징그러울 정도로 달콤한 즙액이 터져 나온 뒤, 기어이 숨어 있던 날카로운 쓴맛이 혀뿌리를 강타했다.
그래, 아무리 설탕으로 범벅을 해두어도 본질적인 쓴맛은 결코 증발하지 않는다.
나는 입안에 남은 씁쓸한 잔여물을 억지로 삼키며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설탕에 절여진 가짜 위로 따위는 버려두고, 혀가 마비될 정도로 지독하고 쓴 문장들을 기어이 끓여내야 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