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고스트
모니터 세 대가 뿜어내는 푸르스름한 광원이 어두운 방 안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은호의 직업은 '디지털 장의사'다. 육신의 장례식장에서는 유족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통곡을 하지만, 은호의 작업실에서는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한 인간이 세상에 남긴 가장 은밀하고 찌질한 궤적들이 조용히 소각되고 있었다.
오늘의 의뢰인은 며칠 전 교통사고로 급사한 서른두 살 남자의 부모였다. "우리 애가 남긴 흔적들, 누가 보기 전에 하나도 남김없이 지워주세요. 참, 바르고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울먹이며 아들의 노트북 비밀번호를 건넸다. 하지만 은호가 마주한 '바르고 착한 아들'의 디지털 이면은 장례식장의 국화꽃 향기처럼 향기롭지 않았다.
남자의 웹 브라우저 검색 기록은
처연할 정도로 날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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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숨겨진 클라우드 드라이브에는 상사에게 보내려다 만 분노에 찬 저주 섞인 메일 초안들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SNS에는 차마 올리지 못한 조악하고 우울한 일기들이 수백 메가바이트의 용량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은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폴더들을 하나씩 선택해 영구 삭제를 눌렀다.
사람들은 죽음을 미화하려 든다. 남겨진 자들은 고인의 아름다운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만 기억하려 애쓴다. 하지만, 은호는 안다. 한 인간의 진짜 본질은 영정 사진 속의 인자한 표정이 아니라, 매일 밤 혼자 모니터 앞에서 깜빡이는 커서에 토해내던 검색어와 지우지 못한 방문 기록에 있다는 것을.
Delete.
경고창이 떴다. '이 항목을 영구적으로 삭제하시겠습니까?' 은호는 망설임 없이 '예.'를 클릭했다. 진행 표시줄이 녹색으로 빠르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32년이라는 불완전하고 너절했던 한 인간의 생애가, 0과 1의 데이터 쪼가리로 환원되어 영원한 무(無)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간은 고작 45초에 불과했다.
화면은 이내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바탕화면으로 돌아왔다. 은호는 눈을 비비며 의자에 깊숙이 기댔다. 방금 전까지 이 모니터 안에서 탈모를 걱정하고 헤어진 연인에게 집착하며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던 한 영혼이 완벽하게 증발했다. 부모의 바람대로, 그는 이제 세상에 어떤 치부도 남기지 않은 '완벽하게 바르고 착한 아들'로 남을 것이다.
그 거짓말처럼 깨끗해진 화면을 보며 은호는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이토록 쉽게 지워질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증명하기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로그인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은호는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어둠이 깔린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창문 너머로, 내일이면 누군가의 휴지통에 처박힐지도 모를 위태로운 데이터들이 푸른 불빛을 뿜어내며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