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월요일 오후마다 라헬 중창단 연습이 있어 데려다주는 길. 연습 시작 10분 전에 도착해 자기 혼자 기다릴 수 없다며 "엄마랑 같이 있을래." 하던 애가 100m 앞에서 걸어오는 친구를 보자마자 "이제 됐어. 가!" 라며 차에서 내린다. 아직 애기인데 친구 앞에선 쿨하고 싶은 곧 10살 딸내미를 둔 어머님, 아버님들은 잘 들으시오.
우리는 치고 빠질 때를 잘 알아야 하오.
혼자 씩씩하게 걸어오는 친구 앞에서 엄마가 차로 데려다준 게, 더구나 쿨하지 못하게 엄마 차 안에서 같이 기다리는 게 창피한 곧 10살 소녀가 부리나케 사라져 친구와 꽁냥 거릴 때, 우리는 소녀의 뒷모습이 아련해도, 혹은 귀여워서 더 지켜보고 싶어도 신속하게 사라져 주는 게 뭘 좀 아는 개념 있는 엄마라오.
그렇게 얼른 집에 와서 저녁 준비를 하는데 띠리링 울리는 핸디(Handy, 휴대폰의 독일어). 며칠 전에 만나 한 잔 했던 친구 Andrea가 알려달라 부탁했던 책 링크를 보내줬는데 고맙다며, 자기는 그날 나 만나고 나서 주말까지 아팠다며, 너한테 옮기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문자를 보냈다. 나아서 다행이다, 조만간 만나서 산책 가자는 답장을 써놓고는 저녁 준비 하느라 정신없어 밥 다 먹고 나서 보냈다.
Andrea는 내가 스위스 와서 제일 처음 사귄 친구로 벌써 서로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어간다. 알고 지낸 햇수로 우정을 논할 수는 없겠지만, 손절의 여왕이었었던(었었던'에 밑줄 쫙, 지금은 아니에요) 내 곁에 스위스에 산 기간 내내 친구로 옆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친구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집주인/세입자의 관계에서이다. 엄밀히 얘기하면 Andrea의 아버지 Rolf 아저씨 집에 나와 내 남편의 신혼시절 세 들어 산 것인데, 그 집을 Andrea가 상속받을 예정이라, 이 친구 집에 산거나 다름없다.
결혼해서 살던 부엌 창에서 언덕 위의 집들을 바라보며 '언제가 저기서 꼭 살아보고 싶다.' 로망을 키우던 중,
집 거래 사이트에 내가 딱 원하던 스타일의 집이 월세로 나온 것이다! 남편에게 보여주면서 "우리 당장 가보자!" 하고는 그날로 전화해 집주인 Rolf 아저씨가 집을 보여주는데, 그러면서 하는 말,
"세입자 구한다는 글 올리자마자 1시간 안에 45명이 전화해서 글 내렸어. 이번 주 안에 집 다 보여주고 연락 줄게."
'아, 안될 수도 있겠구나.' 마음을 비우고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 Rolf에게서 전화가 왔다.
"월세로 나온 집 밑에 딸네 가족이 사는데, 4 커플을 초대해서 딸네 가족이랑 만나게 해 보고 제일 어울릴만한 커플에게 월세를 주기로 했다."라고.
'네? 하하....'
이건 뭐 오징어 게임 챌린지도 아니고, 월세만 꼬박꼬박 내면 될 줄 알았던 일이 관문이 여러 개다. 좀 유난이다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너무나 살고 싶은 집이라 약속 날짜에 아끼는 원피스에 그 당시 난 아직 된장녀의 된장물이 덜 빠졌던 시기라( 지금은 된장물 다 빠졌다..... 라기보단 어중간한 명품 살 바에 에코백을 들겠노라! 를 외치며 ultimate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라 해두자. 캬캬) 체인이 어여쁜 검은색 명품백을 메고(ㅎㅎ) 약속 장소에 갔다.
그곳에는 집주인 Rolf와 그의 딸, 나와 동갑내기 Andrea의 가족이 있었다. 그 당시 그 집 애들이 2살, 6개월 아가들이었으니 굉장히 힘든 시기였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Andrea는 깨끗하게 다린 폴로셔츠에 진주 귀걸이를 한 요즘 유행하는 단정한 올드머니룩을 한 모습이었다(Gen Z들아, 너네가 말하는 그 룩 우린 90년대부터 입던 룩이다! 꼰대 자폭 주의). 첫눈에 '내 스타일인데?' 싶었지만 내 성격상 갑자기 훅 다가가지도 못하거니와 정말 원하는 게, 좋아하는 게 있을 때 속에서는 요동이 칠지라도 겉으로는 더 조용해지는 사람이기에 그날 기분 좋으면서도 낯가리며 와인 한잔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그다음 날 Rolf에게서 전화가 와 남편옆에 딱 붙어서 전화소리 듣고 있는데,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이야." (오마이!ㅠㅠ)
"너희가 살 집 밑에 2살짜리가 있는데 걔가 한 번씩 되게 시끄럽게 떼쓰고 폭발해서 엄청 시끄러울 거야. 거기다 6개월짜리는 밤낮없이 울어. 정말 유감이야."
"푸하하!!"
처음 문장만 듣고 엄지 손가락을 밑으로 내려 보이던 남편이 빅웃음 터뜨리며 바로 위로 치켜세운다. 앗싸!!!! 이사 간다!!!
그 후 한 달 만에 우리는 꿈의 집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5년간 첫째 태어나고 둘째 임신, 또 내 집 마련해서 나올 때까지 Andrea의 가족과 때 되면 같이 저녁 식사도 해가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정말 잘 살았다. 생후 6개월이던 그 집딸과 우리 라헬도 친구가 되어 아침 7시에 띵동 거리며 같이 노는 한 지붕 두 가족이 되었다.
저번에 스위스 사람과 친구가 되기 어렵다 했는데, 그건 천천히 사귀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천천히 알아가는 게 어떤 이들은 답답하게 느껴지겠지만 나는 워낙 천천히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을 선호하는 극 I재질의 사람이기에 이곳의 템포와 잘 맞다.
우리 극 I들은 훅 들어오면 훅 달아난다!
5년 동안 잠깐이라도 매일 마주치며 지내온 세월이, 또 함께 울고 웃으며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지켜주며 생긴 믿음이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는 원동력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친구 입장에서는 너무 속속들이 아는 스위스인보다는 좀 동떨어진 곳에서 왔지만 마음은 잘 맞는 내가 더 편했을 수 있겠다 싶다. 왜 그렇지 않은가, 내 옆집에 너무 엮여있는 한국인 가정보다는 신분 확실하고 품격 있는 (예를 들면 저요) 외국인이 사는 게 편할지도.
그렇게 친해진 내 친구 Andrea는 나의 첫 스위스인 친구로 지금도 한 번씩 애들 저녁 주고 후딱 만나 한잔 하며 이런저런 남편 디쓰(남편, 한글 배우지 마!) 도 공유하고 나에게는 스위스인의 기준이 되는, '아, 스위스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를 체험시켜 주는 친구이다. 이 친구와의 에피소드가 많은데 친구 소개하다 얘기가 길어져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그녀의 명언, '고생스럽게 왜 공부를 열심히 시켜. ' 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언제나처럼 나는 애들 밥 해줘야 하므로 바빠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