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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스 아주미 May 04. 2024

미안, 너 예정일에 난 휴가야.

바빠서 이만

루체른 시내에는 화요일, 토요일 오전 일주일에 2번 장이 선다. 나는 지금 장에 나와 있다. 오랫동안 날씨가 우중충했었는데 5월 치고는 아직 많이 쌀쌀하긴 하지만 오늘 드디어 해가 쨍 났다! 산책 겸 장도 좀 보려고 아침 일찍 준비해서 나왔는데,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던지 시내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돌고 돌았다.


아침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는데,

아, 이 익숙한 냄새, 온도... 지금 이곳의 습도.. 좋ㄷr


유럽 시장에서는 한국 시장에서와는 다른 냄새가 난다. 한국 시장에서 젓갈, 생선, 시장 음식.. 뭔가 다이내믹한 냄새가 난다면, 유럽은 셀러리 같은 야채, 허브, 꼬릿 한 치즈 냄새, 뭐랄까 은은한 내음이다. 한참을 이집저집 기웃거리다 샐러드거리, 큰 슈퍼에서는 살 수 없는 소상인 치즈 메이커의 치즈, 예쁜 작약 한 뭉치를 들고서 계산하려는데, 의례 내가 관광객이겠거니 영어로 상대하던 상인이 내가 스위스에서만 통용되는 Twint로 계산 가능하냐고 물으니,


"어, 너 여기 사네?" 진한 스위스 독일어로 구수하게 반가워한다.

"ㅎㅎ 응." (두유노 스위스 아주미?)


차로 서둘러 걸어가는 길에 동양인이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가는 게 눈에 띄었는지 반대쪽에서 걸어오던 행인 몇몇, 평소보다 많은 이가 Guten Morgen 가벼운 인사를 건네온다.


여기가 왜 이리 익숙한가 생각해 보니 우리 애들 어릴 때 다니던 어린이집이 이 근처에 있어서 한 번씩 애들 데려다주고 여기를 거닐곤 했었다. 둘째 아이 출산 수술일에 오전에 첫째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짠했던 그 마음은 평생가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가 누굴 걱정해? 오바스럽기 그지없었다 생각한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의식의 흐름대로 우리 애들 태어났을 때 얘기나 한번 풀어볼까나?

봄이면 꼭 생각나는 아스파라거스
까꿍 데쓰네

여러분 올 것이 왔습니다. 아주미들 군대 이야기. 애~들은 가! (아참, 여기는 애들 없지)


라헬을 임신 한 걸 알고 그전에는 산부인과라고는 건강 검진 때만 갔던지라 당장 산부인과 전문의를 찾아야 했다. 스위스는 Hausarzt라는 주치의 시스템이 있어서 다른 전문의에게 갈 때는 anweisung이라 해서 주치의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데, 보통은 주치의가 보내주는 이에게 가야 하는 시스템으로 예외적으로 환자 본인이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과가 몇 개 있으니 산부인과가 그중 하나이다.


믿을 만한 사람의 추천을 받아 가고 싶은 마음에 전에도 등장했던 친구 Andrea에게 물어보았다.

"너 산부인과 선생님 좋아? 어디로 가?"

"내 산부인과 선생님 세상에서 제일 좋아! (얘가 원래 좀 중간이 없음) 전화해 놓을게. 무조건 거기로 가!"


추천받은 선생님의 프로필도 살펴보고 내가 출산을 하고자 했던 이 동네 큰 병원에서 분만도 담당하신다니 잘 됐다 싶어 가보았다. 50세 중반의 인상도 신뢰가 물씬 풍기는 남자 선생님의 성함이 폴란드식 이름이길래 처음 검진 간 날 남편이 물었더니 반가워하며 자기 할아버지가 폴란드인으로 독일에 정착하셔서 본인은 독일인이란다. 내 남편과 같은 조상의 피가 흐르고 있다니(폴란드 단일 조상설) 뭔가 푸근하고 친근한 느낌도 들었고, 선생님이 전문적인 지식을 이야기할 때는 진지하지만 그 외에는 유머러스해서 겁쟁이 임산부(저요)에게 최고 명약이라는 안도감을 안겨주셨다. 첫 번째 진료 이후에 4주에 한번, 2주에 한번 임신기간 내내 검진 가서 선생님 얼굴만 봐도 그동안의 걱정 근심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매직을 경험했었다.


스위스 산부인과를 가면 현타 오는 순간이 있는데, 이곳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한 번이라도 가보면 우리나라 병원들이 여자사람의 수치심을 극소화하기 위해 얼마나 배려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내 기억에 심한 독감으로 내과 검진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의사가 환자의 맨 살에 청진기를 대야 하니 간호사가 환자에게 달라붙어 최소한의 면적을 노출하도록 배려했던 생각이 난다. 또 산부인과 검진 시에는 아는 사람은 안다는 고무줄 치마를 줘서 적당히 가릴 데 가리고 그 무셔븐 의자에 앉으면 되었었다.


내가 스위스에서 간 산부인과에 그 고무줄 치마는 없었다 한다.


남편과 의사 선생님과 실컷 근황토크하며 웃고 떠들다,

"그럼, 저기 들어가서 하의 탈의하고 와." 선생님이 진료실 한켠에 있는 칸막이 부스를 가리키면,

"으.. 응." 갑자기 뭔가 숙연해져서 진정한 하의 실종 복장으로 쭈뼛거리며 나오곤 했었다.

몇 번 그런 경험 이후에 산부인과 검진 시에는 내 비록 몇 초 후에 쩍벌 신세가 될지언정 그 무서운 의자에 앉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긴 원피스 치마를 입고 갔었다(내 마지막 자존심 내가 지킨다!).


그렇게 몇 번의 진료를 거치고, 불러오는 나의 배만큼 선생님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커져 가던 어느 날 진료 때였다.

"너 예정일이 어디 보자. 7월 말이네? 내가 8월부터 여름휴가라 혹시 애기가 예정일보다 늦게 나오면 나는 스위스에 없을 거야 (난 바빠서 이만 총총->이건 내 머릿속에서 들린 대사임). "

"네?.. Wie bitte? 아니.. 저기.."


두둥! 이게 무슨 소리죠? 저기 선생님.. 나 데리고 가요, 그 휴가!!


그 당시 나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의 말에 충격을 적잖이 받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일, 빠른 포기만이 살 길이었다. 선생님이 분만을 하는 큰 병원의 의료진이 빵빵하니 그날 누가 되었든 잘해 주실 거야,라는 마음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애썼다.

스위스에 봄에 오면 스위스산 딸기를 꼭 드셔보시라. 싱그러운 단맛이 특별히 맛있다. 가운데 사진은 한국인의 눈에만 보이는 깍두기샷

예상했던 일이지만 라헬이는 예정일이 되도록 나올 생각이 없었고, (난 여기가 편하다 응애)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나 간 병원 체크업에서 처음 만난 의사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은 이미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잔하고 계셨다 한다) 아가 머리가 꽤 크니 더 크기 전에 유도 분만을 시도하자 했다.

그렇게 요런조런 일 끝에 앞으로 감기 4배속 후 라헬은 새벽 3시경 제왕절개 수술 후 태어났다.


수술 담당의는 스위스인으로 연세도 있으시고 경험도 있어 보이는,

"push!"  한 번 시도하시고는 " 아가 머리 안 나오겠다. 수술 준비!" 하시는 쿨한 선생님으로 물론 좋으셨지만, 난 이 와중에 심각할 때 심각하면 더 심각하니 농담 한마디 하셨을 낯익은 얼굴의 우리 쌤이 보고 싶었다(선생님은 그때 아페롤에서 베니스 한잔 더 하셨다 한다).


그렇게 나는 남의 반에 껴서 수학여행 간 고등학생 스타일로 병원에 잘 머무르다 일주일이 지나 무사히 퇴원했다. 그 후에 둘째 임신 때는 우리 선생님도 마음에 걸렸었는지 진료 시작도 전에 예정일 뽑아서 보시고는

"아, 이때는 다행히 내가 있다."라고 확인시켜 주시고는(선생님도 모히토가 안 넘어갔다 한다), 실제로 둘째 제왕절개시에 첫째 때 미처 신경 쓰지 못해 보기 흉했던 수술자국을 최소화해 주시겠다며,

"너 이런 거 중요하잖아." 하셨었다. (무슨 의미였을까? ㅎㅎ 아시는 분!)

 라헬 생후 2일

잠시 시간여행 몰입에서 빠져나와보니 오마이! 애들 올 시간이네. 얼른 밥 해야겠다.

아기 태어나자마자 소변줄 달고 있는 산모가 신생아를 데리고 자도 되는 스위스 병원 시스템, 미역국은 못 먹었지만 온갖 맛있는 음식을 우아하게 먹었던 그 일주일의 나와 스위스 산모들, 집에 와서 나를 보살펴준 은인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난 언제나처럼 애들 밥 줘야 해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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