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영, 수 보다 중요한 이것!

라이프 스타일을 과외시키는 스위스 부자들

by 스위스 아주미

아, 스위스맘 슬슬 스트레스받는다.


얼른 학원 등록해야 하는데 자리 다 찼으면 어쩌지?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가격이 비싸져 얼른 발권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네.. 남들 다 하는데 우리 애들만 뒤쳐지는 거 아닌가?


대치동맘 뺨치게 스트레스받는 이유는 수학 선행학습? 아니고요, 영어 유치원 자리 확보? 네, 아닙니다.

논술 학원도 뭐도 아닌 그것은 바로 스키! 스위스 국민으로 태어났으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 아빠가 산으로 데리고 가 스키에 얹어서 뒤에서 밀어버리는 스위스 4세 어린이 인생 최대 역경, 스키이다.


예중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방학 동안에 갔던 스키 캠프에서 배운 스키가 다인 한국 엄마는 겨울마다 스키를 타러 가는 것이 아직은 몸에 베지 않아, 10월부터 준비해야 하는 스키 시즌을 크리스마스다, 새해다 자꾸 미루다 2월 스키방학을 앞두고서야 오마이! 허둥지둥 남들보다 늦어서 비싸게, 마지막 남은 자리로 겨우겨우 등록을 한다.


국, 영, 수도 아닌 취미 활동에 왜 이렇게 목숨 거냐고?

우리의 이웃이자 친구인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슈테판이 한 명언이 있다.


"스위스에서 스키 안 가르치는 건 아동학대지."


헑!


물론, 슈테판은 과장도 좀 있고 중간이 없는 양반인 데다가 이 아이와 맨 정신에 만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와인 친구이니 슈테판과 와인의 콜라보로 탄생한 명언이긴 하다.

그렇지만, 취중진담이라고(아, 아직도 이 단어가 뭔지 모를 아련함을 느끼게 한다 싶으면 네, 당신은 이 아주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간 동년배인걸 인증하셨습니다. 반갑다, 친구야!) 은연중에 스위스 국민들이 하는 생각에 MSG 좀 많이 친 발언이라 생각한다.


스위스 부자들도 사교육 한다. 강남 엄마들 못지않은 라이딩, 엄마들끼리 조짜서 이 엄마가 여기 데려다줬다

저 엄마가 학원 마칠 때쯤에 아이들 모아서 집에다 데려다주는 치맛바람 엄마 부대 톡방도 여러 개다.

그런데, 이 사교육이라는 것 중에 초등학교 4학년이 되도록 국어(이곳의 국어는 독일어), 영어, 수학이라고는 없고 대부분이 예, 체능 사교육이다. 필수로 들어가는 게 수영, 겨울에는 스키이고, 그 외에도 가라데, 하키, 축구, 체조, 승마 등등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옵션이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친하게 지내던 몇몇 가족들이 수영과 스키를 시작하는 걸 보고도 그런가 보다 했었다. 우리는 그때쯤 3살짜리 둘째로 인해 이제 좀 살만해진 때라 애들 스키보다는 내 삶의 질 되찾기가 먼저였기에 옆에서 같이 보내자는 제안에도 시큰둥, 뭘 그리 고생스럽게 하나 생각했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는 그저 학교 들어가면 공부나 시켜야지(그 다짐도 안 지키고 있음) 했었는데, 아이들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공부 외에 별도로 시키지 않는 내 주위의 스위스 부모들이 그때 이미 아이의 라이프 스타일을 디자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름이 되면 이태리에서 또 프랑스에서 수영을 하며 휴가를 즐길 터이니 수영은 필수, 그리고 겨울에는 산공기 마시며 스키 타는 그런 라이프 스타일.


나도 생각을 해봤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살기를 바라는 삶을.

여름이 되면 호수에서 얼굴만 동동 내고 친구랑 얘기하며 유유히 떠다니고, 겨울에는 환상적인 경치를 보며 스키, 봄, 가을에는 하얀 니트에 하얀 스커트 입고(이게 중요!) 테니스를 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케이, 그럼 우리도 이번 겨울방학엔 스키 강행군이다!


그리하여 오늘이 되었고, 오늘은 스키 강습 시작하는 날이다.

오늘이 되기까지 내가 한 일은:

1. 남들 이미 10월에 다 산 시즌 리프트권 2월이나 되어 들어가 보니 시즌권은 이미 사기 너무 늦었고, 아이들이 레슨을 받을 10일 동안의 리프트권 가장 비쌀 때 구입하기.

이노무 시즌권은 일찍 사면 살수록 저렴해서 차일피일 미루며 넋 놓고 있던 아주머니(저요) 자다가도

아놔 오늘도 안 샀네, 더 비싸지겠군. 악몽 꾸게 하는 치명적 매력이 있다.


2. 다음은 스키 레슨 등록. 웬만하면 다 찼고, 게으른 자는 돈을 더 내어라! 개인 레슨이나 애매한 시간대만 남았다. 그것도 오케이, 누굴 탓해. 등록을 마침


3. 가만히 있어봐, 애들 스키 옷들 다 밑에 지하실에 있을 텐데? 지하실에서 스키 용품이라 쓰여 있는 상자를 가지고 올라와 보니 아놔, 스키복, 가글 및 헬멧은 있는데 장갑, 얼굴에 두르는 귀마개 몇 가지가 안 보인다. 애들이 겨울에 눈싸움한다고 꺼내달라 한 기억은 있는데 다 어디 간 거야?! 물건을 썼으면 제자리에 둬야지, 쯧! 방금 깨서 잠도 덜 깬 애들을 잡고는 온 집안을 뒤져 찾아낸다. 그것도 인상 팍쓰고 코에서 불 뿜어내며.


어떻게 저떻게 준비 다 하고는 아이들 장비, 간식 다 챙겨 차에 한가득 싣고, 드디어 출발이다.

20분가량 운전해 가 주차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우리 동네에는 비가 왔었는데 해발 1600m 위에는 눈이 오는구나. 아 좋다!. 잠시 둘러보는데,


"엄마, 나 스키 안 탈래."

"응...?"


집에서 떠날 때부터 표정이 안 좋던 둘째가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나 스키 안 좋아~~~~~뿌엥!"


아놔.....

유나 어릴 때 같았으면 어떻게든지 설득하려고 온갖 아이디어(feat. 젤리, 장난감.. 등등)를 냈을 텐데 둘째는 짤 없다.


"좋든 싫든 해야 해. 울어도 가야 하니까 울고 싶으면 울면서 해."


6살 수아가 나를 원망 가득한 얼굴로 쳐다본다. 그 얼굴이 귀엽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본인을 귀여워한다는 걸 조금이라도 느끼는 순간, 오우노! 스키 수업은 그냥 수업료 날린 거라 생각하면 된다.

선생님이 와서 아이들 데려갈 때까지 먼 산 보다 선생님에게 인수인계 하고서야 아이를 보며 웃어줬다.


"수아 잘할 수 있어. 끝나고 보자! 뽀뽀!"


이 엄마가 짤 없다 싶었는지 선생님에게 멱살 잡혀 끌려가긴 가는데 그 와중에도 곁눈질로 원망스러운 눈빛을 나를 향해 뿜어댄다. 자리를 뜨지 못하던 나와 남편은 두 번의 시도만에 엉덩이 리프트(내가 지어준 이름으로 실제로는 Platter lift이라 함)도 혼자 척 타고, 스키 타고 내려오면서 두 손 들어 힘차게 흔드는 아이를 보고서야 옆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몸을 녹이려 간다. 큰 아이는 벌써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레스토랑에 가서 남편에게 말했다.


"나 애들 스키가 학교 공부보다 더 스트레스인가 봐. 애들 스키 수업 들어간 거 보니까 이제야 부모의 도리 한 것 같고 막 뿌듯하고 그래."

"알아, 너 엄청 스트레스받았던 거.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우리 집 공기가 초록색이었어. 너 스트레스로."


촴놔. 내가 또 뭘 어쨌다고.

물건 없어졌다고 짜증 좀 내고, 등록 미리미리 G가 안 해놓고 남편한테 한숨 쉬고, 뭐 그러.. 했네 내가. 내가 잘못했네.


"몰라, 이게 뭐라고 나한텐 너무 중요해. 스위스 애들은 다 하고 자라는 거 우리 애들이 못하고 자란다고 생각하면 왠지 속상해. 우리는 외국인 부모라 스키가 인생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어도 애들은 다르잖아. 나중에 애들 결혼해서 스위스인 남편이랑 스키 타러 갈 텐데 애들이 여기서 자랐으면서 못 타면 사돈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워워, 뭐 그렇게 멀리까지. 오바야."


남편은 맨날 나보고 오바라 하지만, 내가 살짝 오바스러운 거 뭐,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제야 한시름 놓인다.

애들이 잘 따라와 주는군.


수업 끝날 시간이 되어 데리러 가 보니 예상대로 두 아이 모두 기분이 극도로 좋아져 있다.


"엄마, 엄마! 나 진짜 무서운 데 가서 했어!"

"엄마, 엄마! 재밌었어! 내일도 올래!!" (수아, 너 이럴 줄 알았지. 캬캬)


아이들을 데리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둘러보니 다음 레슨 받을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데 엉엉 울고 난리가 났다. 아이 엄마와 눈인사를 하고 우리 애도 아까 그랬어 이런 얘기를 주고받다 그 집 아이도 무사히 멱살 잡혀 질질 끌려가고 나서도 서서 얘기를 나누는데, 스위스 엄마가 말하길,


"우리 애도 태어나서부터 역경도 없고 뭐 하나 힘든 게 없는 삶을 사니, 스키 배울 때만큼은 두려움, 내 앞의 역경을 이겨내고 해내는 법을 배워서 좋아. "


그렇네, 결핍 없이 편안한 삶을 사는 스위스 아이들에게 스키는 역경을 학습시키는 방도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이런저런 의미에서 스위스인들에게는 역시 국, 영, 수보다 스키!


오늘의 역경 극복!

참고로 국, 영, 수 사교육을 안 했던 큰 애 유나는 4학년이 되도록 여전히 학교 공부 외에는 다른 사교육(예체능 제외)을 한결같이 안 하며, 일 년에 다섯 번 있는 방학에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공부를 놓고 휴가를 다녀오거나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한다. 그럴수록 몰래 아그들이 공부인지 모르게 시키는 게 엄마의 능력이라는 유나 한국 할머니(마이 마덜)에게,

"애들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 절대로 안 하지."


했더니 딸 한 명은 예능, 한 명은 의대 보낸 왕년에 치맛바람 잔잔하게 날리셨던 맹모 사루비아 여사께서는,


"이쁘게 생긴 것이 공부 못하면 더 없어 보인다! 명심하셔!"


라고 하셨다 합니다.


유나야, 그렇대. ㅋㅋㅋ

우리 집 가훈: 이쁜 게 공부 못하면 더 없어 보인다. 밑줄 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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