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동네, 우리 마을을 소개합니다.

부자나라의 부자 동네는 도대체 어디?

by 스위스 아주미

부자(富者):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


부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저렇게 나온다.

세 번째 브런치북의 제목을 스위스 부자 부모가 전하는 메시지로 정했으니 부자의 정의쯤은 한 번 짚어봐야겠다 싶어 검색했는데 프흣 정의가 뭔가 귀엽다. 왠지 살림이 넉넉하다는 정의는 스위스 은행 깊숙한 금고에 쟁여놓은 금덩이보다는 곳간에 쌓여있는 쌀가마니 정도는 언급해 줘야 어디 가서 명함이라도 내밀 것만 같은 느낌? 자고로 곳간 열쇠 쥔 사람이 실세랬어. ㅎㅎ


안 그래도 부의 기준이라는 건 상대적인 거라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던 터인데, 정의 너마저 이리도 애매모호하면 아 몰라, 그냥 스위스인들 다 싸잡아서 부자라고 부르련다. 근데 너 스위스 아주미 왜 자꾸 제목은 자극적으로 지어놓고 그렇게 얼버무리냐 하시기 전에 제 말 좀 들어보소.

2025년 기준 1인당 GDP 2위에 빛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에서 한국인 입장에서는 어림없을 장기 휴가도 턱턱 낼 수 있어, 여가 시간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질 높은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 스위스인들은 복 받은 사람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핑! 옆에 있는 핸드폰이 문자가 옴을 알린다. 일하던 중에 힐끗 보니 나와도 친하게 지내는 유나 친구의 엄마 Karin이다. 무슨 일인가 핸드폰을 열어보니 그녀가 남긴 보이스 메시지:


"안녕, 잘 지내지? 어쩌고저쩌고 근황 토크 어쩌고....

본론은 우리가 다다음 주말에 애들을 데리고 이틀정도 파리 디즈니 랜드에 가. 유나도 데려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유나가 좋아하려나? 생각해 보고 알려줘. 참고로, 우리 프라이빗 비행기를 타고 우리끼리 갈 거야."


응...?


스위스에 살면서 산전수전 공중전 이제는 놀랄 일도 없겠다 싶을 만하면 아, 깜딱아. 나를 놀라게 하는 이들.


일단은 와우, 브라보! 프라이빗 Plane이라고 했으니 그건 전용기? 프라이빗 제트? 뭐, 그런 건 거지 지금?

그러고 나선 뭔가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와 잘 아는 가족이고, Karin과는 같이 운동을 같이 다녀 친한 사이이지만 뭔가 유나를 혼자 딸려 보내기에는 내가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 더구나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보내기에는.. 내가 또 오바하나?


퇴근해 집에 가서 남편과 상의를 했다.

내 얘기를 들은 토마쓰의 첫마디, "안돼."

우리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그것도 보호자 없이 돌아다니게 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우리가 너무 애를 끼고 키우나? "

우리가 이상한 건가? 누구 대답 좀 해주세요!


그 이후에 Karin에게 전화해,

"제안해 줘서 고마워. Private Plane이라니, 정말 멋진데? 근데 토마쓰도 나도 아직 애를 그리 멀리 보낼 준비가 안되었어. 몇 년 후에 다시 물어봐줄래?" (한 10년 후에?)


Karin도 너희 마음 존중한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자며 우리는 다음 운동 약속을 잡고 통화를 마쳤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우리 아이들의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몇 가족이 이런 식이다. 스위스는 유럽 안에서도 세금이 적은 나라 중 하나라, 유럽의 부자들이 많이 와서 사는데 보통은 취리히, 제네바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산다. 스위스에서 말년을 보낸 유명인 중에는 찰리 채플린, 오드리 헵번, 티나 터너 등등 무수히 많다. 내가 유명인이라도 자연환경 좋고 보안 잘 되어있는 나라, 그 와중에 세금도 조금만 내라네? 스위스에 와서 살고 싶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루체른 주에 적을 둔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있는데, 그래서 외국인들이 많이 섞여있는 동네이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외국 출신이라 적절히 외국인들이 섞여있는 곳이 마음이 편하다.


우리 가족이 사는 스위스 중부의 도시는 루체른 호수를 끼고 있는 동네로, 루체른을 둘러싸고 있는 위성 도시들 중에서도 부유층이 많이 사는 동네이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은 2018년 유나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수아가 태어나던 해이다. 스위스 공립 유치원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배정되는데, 보통 유치원과 학교가 붙어있어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쭉 가게 된다. 우리가 살던 알프스 산이 병풍처럼 펼쳐있던 동네의 유치원과 학교는 그 동네에 대대로 할머니, 증조할머니가 물려준 집에 살고 있는 원조 토박이 스위스인들이 많았다. 그것이 스위스인들에게는 크나큰 장점으로 작용하겠지만 부부가 둘 다 외국인 출신인 우리 가정에서는 다른 얘기다.


우리 아이가 너무 튀지는 않을까? 대대로 서로 알고 지낸 이 거미줄 네트워크에서 우리 애가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오바스럽지만, 거기 살았어도 잘 풀렸었겠지만 그때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스위스 애들이 우리 아이를 따돌릴 것만 같았고, 무뚝뚝한 스위스 엄마들 사이에서 겉돌 것만 같은 나 자신이 싫기도 했다. 주변의 한국 엄마들에게서 들은,


"내가 아는 누구네 아들은 애들이 따돌리고 자기네들끼리 뭉쳐서 생일 파티에도 그 애만 초대 안 하고 그랬대."


하는 무서운 카더라도 한몫했다. 그때는 그런 얘기에 왜 그리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그리하여 루체른 주변에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법한 동네를 찾아보니, 지금 우리가 사는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동네는 조상 대대로 살던 가족, 스위스에 일하러 와서 살아보니 좋아 눌러앉은 외국인 출신 가족, 아빠는 스위스인 엄마는 외국인인 가정(혹은 그 반대) 등등 원주민(?)과 외국인이 적절히 섞여 조화를 이루며 사는 곳이다. 우리 아이들의 학급 아이들만 봐도 대부분이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은 외국인인 가정으로 학급 아이들 보통이 엄마언어, 아빠언어 2-3개 국어는 당연하게 한다. 직업군으로는 가족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이가 대다수, 개인 사업자, 금융업, 전문직 등등 본인의 자산이나 연봉이 상위권에 속하는 이들이 사는 루체른 주에서 부자 동네로 일컬어지는 동네 중의 하나이다.


이런 부자 동네에서 뭐 하고 있냐고? 우리 가족은 평범한 가정 중의 하나로 용의 꼬리를 자처하며 적절히 묻어가는 중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한 부류는 본인이 우두머리에 서야 마음의 평안을 얻고 아래 것들(언어 죄송ㅎ)을 널리 이롭게 하는 부류가 있고, 한 부류는 본인보다 어떤 의미에서든 나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서 배울 점을 샅샅이 살펴 본인에게 널리 이롭게 적용하는 데에서 평안을 얻는 부류의 사람. 나는 두 번째 부류이다.


경제적 위치가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건 아니기에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 와서 아이들 학교 친구들을 통해 가족끼리도 친해진 몇 가족은 내가 인간적으로도 좋아하는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좋은 사람이든 아니든 모두에게 배울 것이 있어 곁에 둔다는 언젠가 나의 지인이 했던 말이 신선한 충격이긴 했지만 내 스타일은 좋은 사람이 아닌 사람을 곁에 두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나에게도 묻어난다고 생각하기에 좋은 사람만 곁에 두기로 했다.

내가 왜 용의 꼬리로 사는 것을 선호하는가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시작점에서부터 나는 항상 바이올린을 했다. 자연스레 중학교를 예중으로 진학하고 예고, 대학도 음악대학 관현학과를 다녔다. 아직까지도 어린 시절에 들었던 엄마, 아빠의 친구들이 하는

"하이고, 애 예능시키면 집안 기둥뿌리 뽑힌다던데.." 하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다들 한 번씩은 들어봤을 거다.

결론을 말하자면, 맞는 말이다.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 ㅎㅎ


돈 많이 드는 예능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를 다니다 보면 주위에 예능 좀 시킨다고 결코 집안 기둥뿌리 안 뽑힐 사람들이 많아진다. 십 대 시절 기사 아저씨를 대동하고 등, 하교하는 친구들을 보며 막연히 옴마, 쟤네 집 좀 사나 보네. 했던 것이 대학에 가보니 국내 굴지의 S사 손녀, H사의 손녀.. 등등 그건 뭐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으며, 같이 쉬는 시간에 라면이랑 김밥 사 먹던 친구들의 대부분이 나중에 알고 보니(그것도 아주 나중에 친구들의 결혼식에 가서야) 서울 안에서 말만 하면 아는 집의 딸들이었다. 가십걸의 서울 버전이 있다면 그녀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하기에 우리 집도 결코 나쁘지 않았지만 한 번씩은 나와는 다른 씀씀이의 친구들을 보며 신기하기도 했고, 대중매체에서 소비되는 부자 이미지와는 또 다른 그녀들을 보며 배우는 것도 많았다. 나도 모르게 그녀들의 매력에 스며들어 선망을 하는 동시에 내가 본받아야겠다 하는 점은 비슷해지려 노력했던 것 같다. 자격지심이나 초라한 마음이 생기지 않은 건 나도 나쁘지 않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2000년대에 이화여대에서 대학생활을 한 그녀들, 편의상 가십걸들이라 하겠다. 가십걸들은 일단 착하고 유쾌하다. 드라마에 나오는 형편이 안 좋은 애 괴롭히는 그런 류의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소한 걸로 자존심 싸움하고 대결하는 일도 없었으며 누군가의 말을 꼬아 듣지도 않았다. 실력이 모든 걸 말해주는 예술의 세계에서 우리 모두는 실생활에 도움 1도 안 되는 음악에 집중하여 장인의 정신으로 한음 한음 한 땀 한 땀 실력을 갈고닦으며 그 끝에 나온 결과에는 깨끗이 승복하는 분위기였다.


그 시즌 하이엔드 브랜드의 신상품이 무엇인지 궁금하면 백화점을 갈 필요가 없이 수업 시간에 쓱 둘러보면 대충 각이 잡혔는데 본인이 소유한 물건으로 기싸움을 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디자이너의 가방이 예뻐서 샀을 뿐 그것으로 인해 나의 가치가 올라가거나 사람의 급을 나누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에 가십걸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고, 그 정도로 물건에 많은 의미를 두지도 않았다.


유럽에 와서 꽤 오랜 시간, 외국인 친구를 사귀면 무언가 말하지 못할 이질감에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단순히 문화차이, 언어의 장벽 때문이라고 하기엔 인간적인 접점도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스위스에 와서 경제활동을 시작하니 유학생 신분으로 살았던 독일에서와는 달리 좋은 동네, 살고 싶은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살고 싶은 곳으로 선택을 하여 살기 시작하니비로소 생긴 마음을 터놓는 친구들은 나의 가십걸들과 닮아있었다.


사실, 내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생각이 많아졌던 부분은 나 자신의 포지셔닝이다. 내가 쓰는 글이 읽는 이에게 어떤 식으로 비칠까에 대한 고민이다.

부자 나라, 부자 동네에 살아서 여러분, 이것 보세요. 내가 이렇게 잘 나가요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니고, 그렇다고 어쩌다 보니 주변에 포진해 있는 부유한 이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쓰는 신파극은 더더욱 아니다. 나의 가장 솔직한 마음은 나의 딸들에게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메시지란, 부자 동네에 가서 사는 건 부동산 가치 상승폭이 높아서만이 아니라(그것도 중요하다, 딸들아 밑줄 쫙!) 주위의 부자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고, 그렇다고 나와 많이 차이나는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 필요 없는 이유는 우리의 삶도 나쁘지 않으며 소중한 다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존감이다.


애기 엄마가 되고 40대가 훌쩍 넘으면서 주위의 사람들이 걸리지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제한된 시간에 누군가와의 만남에 온 가족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자연스레 만나는 이들이 추려졌다.

나에게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건 만나서 이야기할 공통 주제가 다양해야 하며, 인간적으로 상식적으로 공감이 되는 인성, 거기에 만났을 때 무엇이 되었건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에서 정립이 된다. 그렇게 결국 내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배울 점이 있는 친구들이다. 구구절절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번 책에서는 그들이 나에게 주는 긍정적 여운을 하나하나 짚어보려 한다.


몇 화째 내가 이 주제로 글을 쓰기로 한 이유를 읊은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설명이 된 것 같아서 자신 있게(쫄지 말자!) 다음 화부터 구체적으로 들어갈 것을 약속하며 난 바빠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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