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급식비 52만원
현모양처 병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집안 꾸미기와 새로운 레시피 도전과 아이들 플레이 데이트 주최 및 베이킹.. 혼자서 고군분투하다 문득 느꼈다.
아, 또 나 자신을 우선순위의 제일 끝으로 밀어버렸다.
자괴감이 막 밀려오는데 그 누구를 탓하리오. 내가 좋아서 한 것을.
말했던가? 스위스 초등학생들 점심시간이 2시간이라는 것을.
아, 귀에 딱지 앉도록 말했다고? 그럼, 딱지 앉은 김에 한 번 더 하겠습니다.
11시 30분에 학교 종이 땡땡땡 치면 우리 집 스위스 어린이 두 명은 집으로 향한다. 총총 걸어와서 띵동, 엄마가 깨끗이 정돈된 집에서 웃는 얼굴로 맞이한다.
잘 갔다 왔어? 손 씻고 와. 밥 먹자.
오늘 점심 뭐 먹어? (우리 애들 단골 질문, 드물게 한국어로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엄마가 정성껏 차려준 점심을 먹으며 재잘재잘 오전에 학교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양치를 한 후 13시 30분에 맞춰 엄마와 작별 뽀뽀 쪽, 다시 집을 나선다.
엄마는 창가에서 손을 흔들고(어여 가, 차 조심혀!) 화창한 날씨에 저 멀리에는 만년설이 덮인 알프스산이 보인다.
페이드 아웃...
여기까지가 아름다운 일상의 한 장면이다.
대부분의 날들에는.
사실 학교에서 일하는 부모들을 위해 급식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긴 하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일하는 목, 금요일에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다. 그런데 이 급식이라는 것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무언가 케어를 받지 못하는, 남겨진 아이 같은 느낌이 드는지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작년에는 일하는 날 외 나의 연습 또는 글쓰기, 자유시간을 위해 화요일은 나만의 날로 지정, 아이들을 학교급식에 등록했었는데 올해는 아이들의 거부+나의 뜬금없는 절약정신이 발동해 월요일부터 수요일은 집에서 점심을 챙겨준다.
스위스는 부모가 할 일을 누군가에게 양도하는 순간 듣고 움찔할 정도로 모든 것이 비싸진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한국에서 애를 안 키워봐서.
큰 애 유나가 태어나고 6개월이 지나 일터로 복귀를 하려는데, 나와 남편은 당연히 어린이집으로 보낼 계획이었던지라 일주일에 3일, 내가 일하는 날 9시~17시까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자리를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위해 이것이 최선책이라는 결론이 나서였다.
그것이 우리 가정에 재정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다음과 같다.
스위스는 공립 어린이집이라는 게 드물고, 보통은 사립 기관인데 그 둘의 다른 점이라 하면 공립 기관은 부모의 벌이에 따라 어린이집 가격이 조정된다는 점이다. 적게 벌면 적게 내고 많이 벌면 많이 내는 시스템으로 어느 정도 선부터는 Mehrverdiener (우리 나라말로 의역하면 고소득자) 카테고리로 들어가 조정이 안되는데, 그 상한선이라는 게 맞벌이하는 부모의 벌이를 생각했을 때 꽤 낮아서 결국엔 사립기관이나 공립이나 같은 값을 지불하고 보낸다.
우리 애들이 어린이집 다니던 2014-2023년에는 어땠냐면:
하루에 120프랑 x3= 일주일에 360프랑
360x4= 1440프랑
한 달에 1440프랑, 한화로 약 240만 원을 지불한 것이다.
둘째 수아가 태어나고 한동안 둘을 함께 보냈으니, 한 달에 약 480만원(허걱!)을 어린이집에 대령한 것이다.
잠깐 현타가 와서 커피 한잔 더 시켰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그 돈 다 모았으면!
아니지, 아니야. 정신 차리자.
그놈의 그 돈 쓸 바에는 라는 생각은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에 1도 도움 안 되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다.
이미 쓴 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지나간 돈에 미련 안 갖는 스타일).
다시 오늘 아침으로 돌아와서,
나는 항상 내 머릿속에 그리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대로 살아가려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발버둥을 치는 면이 있다. 예쁘고 유머러스한 엄마이고 싶고, 쿠키 구운 냄새가 나는 아름다운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반기는 게 내가 그리는 예쁜 그림이다.
그렇지만 육아를 해보신 분들은 아시지 않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나의 패턴은 내가 그리는 이상향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참다 참다 내 풀에 지쳐 어떤 포인트에서 돌변해 폭주해 버리는 아주 나쁜 패턴이다. 남편이 유일하게 힘들어하는 나의 성향인데, 그의 입장도 이해된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사랑스럽던 와이프가 힌트도 없이 정색하고 돌변해 폭주기관차 스타일로 칙칙폭폭거리니. ㅎㅎ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나.
그동안 밀린 일이랑 연습, 볼일들을 볼 심산으로 아이들 점심을 차려놓고 집 열쇠를 안겨주려 했던 나의 계획은 아침부터 유나의 매니큐어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온갖 짜증과 눈물바다로 무산되었고, 밀린 일들에 안 그래도 스트레스받던 와중에 계획까지 틀어지니 나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져서 우는 아이에게 과하게 화를 냈다. 아, 내 머릿속의 그림의 내가 아니다. 싫다.
훌쩍거리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는 유나 얼굴 보기가 부끄럽다. 애들도 다 안다. 이 엄마가 타당한 이유로 혼내는지, 아니면 본인이 빡쳐서 빡침이 빡침을 불러오는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남편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와서 하는 말,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면 화요일 애들 급식 신청하자. 당신이 화요일 애들 점심 먹으러 온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지. 일 할 시간이 없으면 얘기를 해. "
"내 딴에는 그 돈이면 그걸로 다른 거 하려고 했지."
여기서 잠깐, 급식은 얼마냐고?
하루에 점심값+2시간 동안 돌봐주는 값= 19.5 프랑 x2명 = 39프랑, 한화로 약 65000원 되겠습니다.
점심시간 2시간 급식 보내는 값으로 치르기에는 오바스러운 가격이다. 한 달 내내 보낸다고 치면 한 명당 52만원꼴이 된다. 허걱! 써놓고도 깜짝 놀랄 가격이다.
"그 돈 아끼려고 당신이 할 일 못하고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애들 잡고, 그럴 바에는 급식 보내는 게 맞다고 봐. 그리고 나중에 유나 오면 얘기하고 오늘 일은 사과해. 유나 잘못이 아니잖아."
"알았어." 깨갱..
미안한 마음에 유나가 좋아하는 고기도 사고, 디저트로 먹을 아이스크림도 사서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유나야, 엄마가 아침에 열쇠 주면 집에서 수아랑 밥 먹고 다시 학교 가라 그래서 무서웠어? "
(짜증의 이유가 이에 대한 두려움일 거라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응."
"그럼 그렇게 말해. 그럼 엄마가 집에 있으면 돼. 아까 아침에 화낸 거는 엄마가 잘못한 거야. 미안해."
" 응. 괜찮아."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도 대답한다.
우리 딸들은 나의 사과가 익숙하다. 광고 속의 아름다운 집의 예쁘고 상냥한 엄마 코스프레하는 여인이 한 번씩 주어진 역할을 망각한 채 폭주 기관차가 되기 때문. 그럴 때마다 누가 되었든 피곤하다는 이유로, 기분이 별로라는 이유만으로 너희에게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가르치며 사과를 했었다. 10세, 6세가 된 지금은 내가 폭주하고 나면 남편과 셋이서 똘똘 뭉쳐서,
"엄마 아까 진짜 무서웠어. 피곤하다고 우리한테 화내면 안 되는 거잖아."
"맞아. 미안하다고 해."
이렇게 맞서기도,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기도 한다(남의편).
이긋들이...
아무튼, 그렇게 저녁을 먹으며 가족회의를 열어 이러이러하니 화요일에도 급식을 먹고 오는 것이 어떻겠냐는 안건은 참석 전원 찬성하며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한다.
그래,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한 달 급식비 78만 원.. 기꺼이 내자! 따흐...(우는 거 아님)
저녁을 다 먹고 치우면서 남편이 물어본다.
"그래서, 그 돈 아껴서 뭐 하려 했어?"
"에... 에르메...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