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처를 부탁합니다
아, 이 얘기할까 말까.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아침 운동 갔다가 커피 한 잔 내려서 오전 시간을 즐기는 중이었다.
현대인의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의 하루는 메일 확인으로 시작된다.
애들 학교, 나의 일 관련 이메일, 내가 좋아하는 루체른 시내 부띠끄 세일 관련 이메일..
메일을 하나씩 읽으면서 지워나가는데,
응? 이거 뭐지?
못 보던 주소는 둘째 치고, 제목이 심상치 않다.
내용은 내가 최근에 접속한 적이 있었던 웹사이트에 아동 성매매 관련 불법 포르노 영상이 있었는데, 그 사이트에 접속한 사실의 유무와 그에 대한 설명을 72시간 내로 보내지 않을 시 법적 조치를 가한다는 내용이다.
이게 무슨?!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올라갔다.
내가 그런 사이트에 접속한 적이 없는데, 애들이 내 아이패드 가지고 놀다가 어디 팝업 된 걸 눌렀나?
한 번씩 한국 예능 프로그램 보러 들어가는 웹사이트에 다른 영상들이 있어도 잘 살펴보지 않았었는데 그런 영상들이 있었나?
잠시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심장도 두근거리고 더워지면서 등에서 땀이 났다.
발신자를 보니 이메일 상단에 스위스 연방 경찰국 Fedpol의 로고가 찍혀있고 사이버 범죄 수사관의 실명과 싸인이 첨부되어 있다. 수사 후 사실로 드러날 시, 최대 5년 징역에 벌금 최고 500.000프랑, 그리고 아동 성범죄자로 분류되어 나의 주변인들과 일터, 관련인 모두에게 이 사실이 자동으로 통보된다는 내용.
큰일 났다. 뭔가 대단히 잘못되었다.
일단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평화로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토마쓰,
“자기야, 나 방금 온 이메일이 좀 이상해. 지금 좀 와봐.”
내용을 설명하니, 남편이 말한다.
“그 메일을 일단 나한테 보내봐. 내가 한번 볼게.”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남편에게 전송하려는데, 어? 안된다.
“이게 전달할 수 없는 장치가 되어 있나 봐. 어떡해! 나 무서워! 얼른 와.”
“그거 피싱 메일이야. 걱정 말고 그럼 전화기로 screen shot 찍어서 보내봐.”
“그냥 빨리 집에 와. 지금 올 수 있지?”
남편은 괜찮을 거라는 말을 하면서도 내가 너무 멘붕 상태인지라 일단 오겠단다.
남편이 사무실에서 집으로 오기까지 10분, 그 10분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5년 징역? 그러면 나오면 2030년(마음은 이미 옥살이중). 우리 애들 도대체 몇 살인 거야? 지금 제일 엄마손이 필요할 때인데.
아, 72시간 내로 해명글을 보내라 했으니 일단 그거부터 해야겠다.
본인은 위의 동영상을 시청한 적이 없고, 접속했더라도 한국 오락 TV 프로그램을 시청하였을 뿐, 아동 성매매와는 관계없음을 토로하며 이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는 바임. 주저리주저리..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
보내기 sent 완료.
그러고 있는데 남편이 왔다.
나는 이미 사회적 매장을 당할 생각에 머리가 어질어질한데 너무나 느긋하게 들어온다.
“빨리 와서 이거 좀 봐봐. “
옆으로 와 내가 받은 이메일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발신자 메일 주소를 보고는 말한다.
“이거 스캠이네! 주소가 이게 뭐야. 말도 안 되는 주소야."
혼자서 빵 터졌다.
나는 안심이 되면서도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다시 한번 봐봐. 저 로고랑 보낸 사람 직함에 이름, 서명이랑 다 있는데 이게 어떻게 스캠이야?!”
“저 이름 검색해 보자..
.. 그럼 그렇지. 이거 봐봐.”
컴퓨터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 보여준다.
토마쓰가 간 사이트는 스위스 경찰청의 웹사이트로 최근 아무개 아무개를 사칭한 스캠 이메일(앗! 나한테 메일 보낸 그 사람! )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으며, 이런 메일을 받았을 시 답하지 말고 즉시 신고하라는 내용이다.
그들의 수법으로는 아동 성매매 사이트에 접속했다는 이유로 징역 운운하며 협박했…….
…………………………. 아놔………….
토마쓰가 뭐가 그리 행복한지(아내가 안 잡혀가서?)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다.
“아니, 이런 거 누가 속나 했더니? 내 와이프였네?”
……. 조용히 해. 말 걸즈마…..
“이런 거 받으면 일단 이메일 주소를 잘 살펴봐. Official 한 주소가 아니잖아. 딱 봐도.”
그 이후에도 피싱 메일을 알아보는 법에 대해 잔소리를 한 바가지를 하고는 덧붙이는 남편.
“그리고 이런 거 받으면 절대로 답장하지 말고.”
“어?! 나 벌써 답장했는데?!”
“응?! 뭐라고?!”
“해명을 하라길래 해명해서 보냈지.”
“........ ㅋㅋㅋㅋㅋ 해명글 어디 보여줘 봐. 한 번 보자.”
“아.. 안돼!!”
아오, 창피해.
고백합니다. 맨날 똑똑한 척 해도 사실은 저…. 허당이에요.
“스위티(남편이 나를 부르는 애칭. 43 짤 스위티), 세상 어디에도 범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해명하라는 나라는 없어. 와서 당장 체포해 가지. 이렇게 순진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니? Poor you.. 스위티 귀여워.”
아놔……
듣고 보니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내가 또 오바오바 상오바한 것이다.
굳이 해명하자면(오늘 해명 많이 하네?) 분명히 버스표 갖고 있는데, 불현듯 나타난 버스 검표원을 보는 순간
내가 표가 있었던가?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었달까?
아오, 누구랑 얘기하니. 이미 동네방네 허당인 거 소문났음.
그러고 있는데 아까 내가 해명글 보냈던 곳에서 답장이 왔다.
“ 귀하의 입장을 잘 알겠다. 초범(?) 임을 감안해 선처할 테니 xxxxxx-xxxxxxxx계좌로 5000프랑을…”
이긋들이…..
옆에서 남편이 거든다.
“오, 5000프랑 센대? 이런 식으로 낚이는 사람들이 돈 보낼 거 아냐. 너처럼.”
아니라고!!!! 안 낚인다고!!!! 흑…..
그 이후로도 토마쓰는 나 놀리는 게 재밌는지 스위스 감방은 좋다더라. TV도 있고 밥도 잘 나와서 홈리스들이 일부러 들어가려고 범죄를 저질러서 거꾸로 그게 사회 문제라더라. 안물안궁 사실을 옆에서 얘기한다.
그날 저녁을 먹는데,
“너네 엄마 오늘 감옥 갈 뻔했다?”
한 대 때리고 시원하게 감빵 한 번 갈까? (이건 내 속마음)
“엄마, 왜?”
걱정을 한가득 안고 나를 쳐다보는 유나 옆에
“Cool!”
응..? ㅋㅋㅋ
요즘 유치원에서 깜빵놀이에 심취해 있는 수아.
이러저러해서 이러저러했으니, 너희들도 인터넷에 있는 모든 걸 믿어서는 안 되고, 나쁜 사람들도 많고 모르는 이와는 접속도 하지 말고 또 잔소리 대잔치를 벌이고는 잘 준비를 하는데,
“근데, 뭐야. 이상한 동영상 보고 그러는 거야? 사람이 야해.”
나 안 봤다고! 안 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