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50대는 일본을, 10대는 한국을 선망한다.

고급화가 우리의 길

by 스위스 아주미

11:00 K-pop 디몬즈의 소다 팝을 TV에 틀어놓고 안무를 연습한다

14:00 엄마와 함께 나간 시내에서 줄이 길게 늘어져있는 인기 있는 버블 티 맛집에서 버블티를 사 마시고 행복해하다

15:00 꿈에 그리던 라부부를 손에 넣고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 자랑한다

18:00 불닭볶음면을 끓여서 핫뜨거핫뜨거뜨거핫 매운 걸 참아가며 맛있게 먹는다


대한민국, 서울의 11세 소녀의 하루일까? 그럴지도.

하지만 내가 지금 서술한 이 하루는 놀랍게도, 스위스 흔한 11세 소녀의 하루 일과이다.

내가 스위스 흔한 11세 소녀의 하루 일과를 아는 이유는? 내 딸과 그녀의 친구들의 이야기이므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 슈퍼파워가 나에게 강제로 주어졌다.


아시아의 문화는 유럽인들에게 낯선 문화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한류가 최근 몇 년 동안 그 까다롭다는, 문호 개방(?)을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한다는 의심 많고 까다롭고 보수적인 스위스인들에게까지 퍼졌다. Half Korean 아이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나의 아이들의 엄마(저요)의 문화가 아이들 주변인들에게 각광을 받는다는 건 기쁜 일이다.


시작은 10대들의 BTS 사랑이었다. 그렇게 시작해 오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다 보니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생기고, 보다 보니 어? 재밌네? 빠져든다 빠져들어.

10대를 자녀로 둔 4-50대 엄마들은 청소기 돌리며 왔다갔다 옆에서 곁눈질로 보다 리정혁씨에 빠져서 청소기 끌어 안고 함께 울고 웃던 것이, 오징어 게임, 피지컬 100으로 남성들까지 합류, 케이팝 디몬 헌터스로 스위스 전국 초딩들까지.

이제 다 넘어왔다.


사실 아시아 문화는 오래전부터 이미 유럽인들의 생활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문화가.


2008년쯤인가? 독일에서 푸치니의 나비 부인을 연주했었는데, 그때 리허설 중간중간에 무대를 훔쳐보면서

'1900년대 초에 작곡된 이 오페라에 어쩜 이리 일본이 이질감 없이 묘사되었지?'

신기했었다. 배경인 나가사키라는 지명을 이 서양인들이 그 시절에 어떻게 알았으며 한 번씩 나오는 일본 민요들, 국가까지.. 어떻게 알고 등장시켰을까? 물론, 이때의 나는 기미가요를 듣고도 뭥미? 했었는데 같이 일했던 그 시절 절친, 첼리스트 유끼가 쉬는 시간에 알려주었다.

유끼짱, 갱끼? 저 첼로 니꼬잖아. ㅎㅎ


나비 부인은 19세기말에 쓰인 소설을 각색한 것을 푸치니가 오페라로 만든 것인데, 그 무렵이 일본의 나가사키 항이 개항을 한 40여 년이 지난 때이다. 그 당시 오페라는 지금의 넷플릭스이다.

TV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던 오락이었고, 그전에는 귀족들을 대상으로 하던 오페라가 19세기 이후에는 더 넓은 관객을 대상으로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는 경향이 강해졌고, 대중적인 멜로디가 더욱 중요해졌다. 한마디로 이 시절의 가장 핫한 드라마가 오페라였던 것이다. 이렇게 핫하디 핫한 장르에 일본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이 한국인인 설정 정도의 임팩트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그 당시에 유럽에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핫했는가이다. 특히 나 예술 좀 해,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일본에 대해 좀 다뤄줘야 어디 가서 나 좀 잘 나간다고, 성수동에서 감자탕 좀 먹는다고 할 수 있었던 것.


그렇게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쭈욱, 유럽인들의 인식에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의 문화는 귀하고 고급진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일본식 레스토랑은 같은 동양인이 보기에는 재료며 요리가 형편없을지라도, 보통은 현지 투자자가 있어 일단은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우며 잘 차려입은 유럽인들이 뭔가 본인의 젓가락질 솜씨를 뽐내러 가는 곳이며, 우리가 청담동에 가면 커피 한잔을 15000원에 마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찾아오는 이도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오케이, 그럼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과거가 어떻든 지금 우리의 때가 왔다.

케이팝 디몬 헌터스의 노래 Golden 에도 나오지 않는가.


We're going up up up, its our moment!


건국 이래 처음, 지금 전 세계의 관심이 우리나라에 쏠려 있다.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 오스카 여우주연상, 작품상, 빌보드 차트 순위권, 쇼팽 콩쿠르 1위..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이제는 우리도 Korea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두 유 노 김치? 두 유 노 불고기?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왔다.


그뿐인가.

가족과의 휴가 중 파리에서 또 밀라노에서, 20대 호텔리어나 백화점의 직원의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코리아라고 대답하는 순간 돌아오는 유창한 한국어에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다. 한국어를 하는 유러피언의 대부분은 내 경험으로는 BTS오빠들의 노래에 나오는 한국어를 알아듣고 싶어서거나, 한국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었다. 파리 호텔의 컨시어지 프랑소와는 이메일의 끝에 항상 자기 이름을 한글로 프.랑.소.와라고 적었는데, 직접 만나 얘기해 보니 한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2년 계획하는 중인데 비자가 안 나와서 지금 한국 대사관으로 매일 출근 중이라는 얘기에, 내가 처음에 독일로, 스위스로 유학 나올 때 추적추적 비 오는 날에 스위스 대사관에 가 학생비자를 연장하던 게 생각났다.


그 당시 스위스 정부가 모든 외국인 학생들에게 요구하던 각서,


"나 이 사람, 공부가 끝남과 동시에 내 나라로 돌아갈 것을 굳게 맹세하오니 믿어주세효."


쓰면서 됐거등, 나도 여기서 안 살고 싶거등. 흥칫뿡

했던 게, 이제 스위스 아주미가 되었으니 사람 일 정말 모르는 거구나.


또 한 번은 이태리에서 휴가 중, 호텔 식당에서 오다가다 마주치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점원이 있었는데, 하루는 남편과 아이들이 먼저 가서 아침을 먹는데 넌지시 물어보더란다.


"너 와이프 한국인이야?"

"응, 맞아. 어떻게 알았어?"

"너희 아이들과 하는 대화를 듣고 한국어구나 알았어. 나 한국 여행 가려고 요즘 한국어 공부하거든."

한국 드라마의 팬이라는 그녀는 그 이후로도 나만 보면 힐끗힐끗 그 어떤 팬심(?)으로 얼굴이 빨개지며 우리 아이들과 내가 하는 대화에 신경이 가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왜 있지 않은가. 옛날 우리나라 8-90년대에 서양인 지나가면 그냥 다 톰 쿠르즈 같고 미국말만 하면 시트콤 주인공 같고 했지 않은가. 나만 그랬어요?

지금 그녀의 눈에는 내가 최소 손예진인 분위기인데, 예진 아씨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리오.


우리 딸들도 이태리 언니의 팬심이 느껴졌는지 평소에는 내가 한국말로 물어도 독일어로 대답하는 애들이 웬일로,


"우리 나중에 수영할 때 스무디 마셔도 돼?"

"언니, 이거 가져가야지."

왠욜, 어깨가 으쓱해서는 한국어로 대화를 한다. (평소에는 언니라고도 안 부름)


물 들어왔을 때 노도 열심히 저으면서 한편으로 미래를 위해 우리가 전략을 좀 짜야할 터인데,

고급진 것 좋아하는 아주미로서 우리나라의 문물이 예쁘고 고급지게 유럽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


내가 사업가도 경제학자도 뭣도 아니지만,

혹시 이 글을 읽는 이 중에 유럽, 특히 스위스와의 교역을 꿈꾸는 자가 있다면 말해주겠는데

이들은 고오급을 좋아한다. 품질의 고급.


스위스인들이 어떠냐 하면,

이 나라에는 싸구려(?) 물건이 잘 없다. 작게는 치약, 칫솔 등과 같은 생필품에서 시작, 크게는 집의 창문, 마룻바닥까지 허투루 된 물건은 살아남지 못한다. 품질이 좋은 물건을 쓰려면 응당 그 값을 치러야 하는데, 그 값을 치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은 가성비를 택하기보다는 돈을 좀 줘도 좋으니 품질이 좋은 물건을 택한다.

테무, 아마존의 물건들이 질이 좋지 않고 자본주의의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스위스인들이다.


지금은 아직 뭘 모르는 10대들이 한국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갖고 슈퍼마켓에서 떡볶이, 불닭볶음면을 사 먹는 것만으로도 해피하지만, 그들이 커서 좋은 거 많이 해보고 써본, 안목 있는 50대가 되었을 때,


짜잔! 이거 코리아 꺼야. 장난 아니지?


혹하게 할 수 있는 품질 좋고 세련되고 고급지며, 한 번 사면 소중히 해야 하는, 돈 좀 줘야 살 수 있는 물건들이 유럽에 많이 들어오길 바란다. 나도 좀 쓰게.


그러니 기업인 여러분, 겁내지 말고 스위스에 수출할 물건은 좋은 재료 팍팍 쓰고 제일 좋은 자재, 제일 좋은 친환경 포장으로 고급지게 만들어서 자신 있게, 쫄지 말고 가격도 팍팍 세게 매기세요. 뒷일은 제가 책임 못 집니다! 난 이만 바빠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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