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는 거지

세 가지 일 (2018.07.25. 수요일 폭염 속 짧은 비)

by 재생지

에어컨으로도

사무실의 공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무기력한 날씨 탓인지,

할 일 없이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는

연도별 수첩을 꺼내 뒤적여 본다.


빼곡히 적힌 방문 기록과 업무 메모들.

때론 경쟁에서 뒤처지기도 하고

내 한계를 느낄 때도 많았는데,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아온 흔적 같기도 하다.


부쩍 마음이 가라앉는 요즘은

생각도 자주 제자리를 맴돈다.


문득

어디선가 들은

이외수 님의 말이 떠오른다.


“마흔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일이 필요하다.


첫째, 밥 먹고 사는 일.

둘째, 재미있는 일.

셋째, 의미 있는 일.


셋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 있다면

인생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말을

조용히 나에게 대입해 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에게

가장 재미있는 일은

아내와 함께 보내는

이런저런 시간에 있다.


수술하기 전날,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아내가 보려고 챙겨 온 책 사이에

짧은 편지를 하나 끼워 두었었다.


'평생에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그 인생은 충분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 친구가

매일 볼 수 있는 당신이어서 행복하고,

함께 하는 모든 일이

감사하고 즐겁다'라고...


물론,

그날 아내는

책을 펼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의미 있는 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마도,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조용히 해내는 일.


어쩌면 일이라는 건

무언가를 이뤄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고,

그 누군가로 인해

다시 하루를 견뎌볼 힘을 얻으며,


그 과정 속에서

뒤늦게

의미라는 이름이

따라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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