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함이 주는 유일함

환생 (2018.06.02. 토요일 맑음, 초여름의 느슨한 오후)

by 재생지

둘만 있는 시간이 많아진

느슨한 주말 오후였다.


마트로 향하는 차 안,

아내가 며칠 전 종영했다는

'우리가 만난 기적'이라는 드라마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며 꺼냈다.


죽음과 삶이,

한순간에 뒤엉킨 사람의 이야기라는데,

나 역시 그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다.


제목만 스쳐 들었을 뿐,

내용은 자세히 알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춘 사이

아내가 불쑥 물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아니면 여자로?”


예전 같았으면

별 고민 없이 상상의 답을 골랐을 텐데,

내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다시 태어나는 게...

과연 큰 의미가 있을까?”


하루 삶의 대부분은

생각보다 많은 순간,

감정 없는 반응들의 연속이며

습관처럼, 자동으로 흘러간다.


그 위에

사소한 욕구와 불만이 쌓이고,

작은 피로와 걱정이 겹쳐진다.

정작 우리가 애써 붙잡으려는

기쁨과 웃음의 순간은

의외로 드물다.


그래서일까.


다시 태어나보는 상상 앞에서

완전히 다른 인생보다는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의

순간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안녕이

오히려 더 고맙게 느껴진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 해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같은 기억과

같은 온기를

다시 나눌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기억 없는 다음 생의 나는

과연 지금의 ‘나’일까.


어쩌면

환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시 지금의 나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이

지금의 시간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기억을 붙잡고,

심장이 온기를 내뿜는 동안

내가 사랑하고

나를 기억할 사람들을

헤아릴 수 있다는 사실.


이미 지나간 날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보고 느낄 수 없게 될

그 언젠가의 시간들까지.


오늘, 차 안에서

지금 이 삶이

유한하다는 자각과 함께,

얼마나 유일한지

그 사실이 애틋함을 더 깊게 한다.


이전 16화연습이 필요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