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은 절댓값이 아닌,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상대값이다

최선이 주는 이중성 (2018.06.13. 수요일 구름 낀, 무더위)

by 재생지

요즘 들어

하루와 일상에 대한 애착이

부쩍 깊어졌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가

괜히 고맙고,

무사히 끝난 저녁이

작은 성취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알게 된다.

그 하루를 떠받치고 있는 건

느슨한 마음만은 아닌,

때로는

꽤 단단하고,

조금은 경직된 선택들이

하루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전 내내 회의가 이어졌다.

타사와의 경쟁,

줄일 수 없는 비용과

서로 다른 이해관계,

각자의 입장과 계산이

테이블 위에 나열됐다.


누군가는 효율을 말했고,

누군가는 원칙을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이후를,

누군가는 안전을 선택하려 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한다.

각자가 믿는 가치의

최선을 향해.


물론

효율과 능력의 활용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최선’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이중성이 보인다.


내가 선택한 최선이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결과 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우리는 흔히

최선이라는 것이

도덕적이고,

상식적이며,

모두에게 바람직할 거라 기대한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사람마다 지키고 싶은 가치가 다르고,

그 가치를 지키는 방식 또한

서로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세상만사에

옳고 그름이

또렷이 갈리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흑백보다

회색의 결이

훨씬 많은 것이

삶에 더 가깝지 않을까.


살아가는 일을 하다 보면

의견의 차이,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

입장과 책임의 차이가

끊임없이 드러난다.


회의를 마치고,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선택한 이 최선은

정말 모두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나에게만 가장 편한 선택이었을까.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최선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의식한 채

고개를 숙일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최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골라야 될

수많은 선택들,

그 선택 위에

겨우 올려놓은

오늘이라는 하루


그 하루를

소중히 여길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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