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담을 수 있는 선택

Day 9 (2018. 08. 16. 목요일 후텁지근한 하루)

by 재생지

가벼운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젊은 남녀가

작은 말다툼을 하는 듯 한

모습이 보였다.


그 옆을 지나치다

어젯밤 우연히 보게 된

연애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로맨스 패키지.’


낯선 남녀가 호텔에 모여

서로에게 시선을 건네고,

하루하루

관계의 가능성을 살펴가는 이야기.


그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저들은 과연 인생의 몇 퍼센트를 걸고

저 자리에 나온 걸까.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지금의 직업,

그리고 살아온 시간과

수많은 선택들까지


어찌 보면

턱없이 부족한 몇 단어와 표정으로

지금까지의 인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자리.


누군가는 사업가로,

누군가는 작가로,

또 누군가는 연구원으로

각자가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나온 사람들.


누군가는 배우자를 찾기 위해,

누군가는 사랑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새로운 인연을 향해

조금은 떨리고,

조금은 두렵고,

마치 자신을 시험하듯

그 자리를 선택했을 것이다.


사랑을 찾는 일이

이토록 많은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니

참 기묘한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랑이란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을 걸고,

마음을 걸고,

때로는

지난날의 상처까지 꺼내놓으며

누군가에게

나의 삶을 건네는 일.


누구를 만난다는 건

내 삶의 일부를 내어주는 일이고,

어쩌면 내 인생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가장 큰 모험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불현듯,

내가 이미 많은 것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에

조용히 웃음 짓게 되었다.


이미 내 삶을

함께 걸어갈 사람을 만났고,

함께 시간을 쌓고,

기억을 만들고,

서로의 일상을 견디고 끌어안으며

삶을 겹겹이 이어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적어도 반 이상

성공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지금,

인생의 일정 퍼센트를 걸고

새로운 선택 앞에 서 있을 테지만,

나는 오래전

한 사람에게

그 대부분을 건넸다는 사실을

뒤늦게 돌아본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도.


한 손에 담을 수 있는 양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무엇을 더 쥘 수 있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끝내 내려놓지 않았는지가

결국 남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때로 모험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삶 전체를 데우는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축복을

품고 살아가는 일이

선택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어쩌면

필수에 더 가까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전 10화동행과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