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 (2018.08.17. 금요일 맑음 무더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다.
혼자 걷는 길이었고,
오늘은 굳이
목적을 정하지 않은 방문이었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수형 기록 카드들 앞에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름, 나이, 죄목, 형량.
한 장, 한 장.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간단한 정보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 카드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살아온 시간은
어쩌면
나 하나를 중심으로
짜여 온 너무 이기적인 삶은
아니었을까.
불평하던 순간들,
힘들다고 여겼던 날들,
견디기 어렵다 말했던 시간들 앞에서
이 기록들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행복의 기준조차 달랐을
그 시절의 표식을 지나
고문을 재현한 공간으로 들어섰다.
몸보다 먼저
숨이 잠겼다.
고통을 상상하려 애쓰는 것조차
이미 안전한 자리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이
천천히 마음에 내려앉았다.
그 생각을 품은 채
격벽장을 걸어본다.
높은 벽으로 나뉜 공간.
수형자들이
운동과 햇빛을 쬐던 곳이라고 했다.
대화도, 시선도,
도주도 막기 위해
세워진 벽.
잠시
붉은 벽돌의 질감과 색감이
묘하게 눈에 들어왔다가,
그마저도 이내
의미를 잃었다.
저 벽은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곳은
햇빛조차
함께 나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세워진 공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치료를 이유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그 거리에는
선택과 배려가 있다.
같은 ‘떨어짐’이라 해도
의미는 전혀 다르다.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알고 있고,
다시 만날 사람들을
기다릴 수 있다.
오늘의 고요는
고통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고,
나의 혼자는
누군가에게 빼앗긴 결과도 아니다.
그 사실이
이곳에서는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그분들 앞에서
지금의 나를 떠올리니,
내 상황은
너무 작고,
어쩌면 하찮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작음이
부끄럽다기보다,
고마웠다.
이렇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이렇게 기다림을 전제로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것.
형무소의 벽 앞에서
나는
그 차이를 이해했고,
그 차이만큼
지금의 시절을
조용히 감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