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은 채로도 머물 수 있는 자리

Day 11 (2018.08.18. 토요일 맑음)

by 재생지

아침에

측정기를 다시 꺼냈다.

며칠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던 숫자.


수치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이제는

집으로 가도 될 것 같다.


문을 나서며

혼자 머물던 방을

한 번 더 돌아본다.


낯설게 시작했던 공간인데,

이상하게도

익숙해진 공간.


혼자였던 시간은

생각보다

외롭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몸이 어떤 상태인지,

마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

그저

있는 그대로 두고

지켜볼 수 있었던 날들.


일상에서 떨어져 지내야만

비로소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때도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앞으로도

감정이나 몸의 리듬은

꽤 오랫동안

고르지 않을 거라고 했다.

다른 환우분들의 이야기를 보며

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도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오늘은

조금 위로처럼 들린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 같아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익숙한 길,

익숙한 신호,

익숙한 풍경.


그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게 당연할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그 익숙함이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건

모든 게 괜찮아졌다는 말이 아니라,

괜찮지 않은 채로도

나를 품어 줄 자리가

여전히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문을 열고

신발을 벗는다.


오늘은

무언가를 마무리한 날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맞아준 날로

기억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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