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 (2018. 11. 22. 목요일 겨울로 가는 아침)
아침 출근을 앞두고
옷장 앞에 잠시 멈췄다.
두꺼운 외투를 꺼내야 할지,
아직은 가벼운 재킷으로도 괜찮을지
잠깐 망설이게 되는 날씨였다.
억지로 답을 정하기엔
아직 계절이 완전히 바뀌지 않은 느낌.
그래서 오늘은
몸이 느끼는 온도에
따르기로 했다.
우리는 계절을 따라 산다.
겨울은 겨울답게 입고,
여름이면 여름에 맞는 옷을 꺼낸다.
몸이 느끼는 온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옷을 바꿔 입는 일.
대단한 논리를 들이대지 않아도
이 단순한 움직임이
삶의 진리를 충분히 말해주는 것 같다.
흐름대로 사는 것.
억지로 버티지 않고,
무리해 맞추지 않고,
몸과 마음이 흘러가는 방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순리고,
삶이 자연스러워지는 방식 아닐까.
하지만
'순리'라는 말을 꺼내는 내가
예전보다
덜 치열해진 건 아닌지,
혹시 동력을 잃은 나를
스스로 위로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말은 아니었을지
문득 그런 의심이 들기도 한다.
요즘 들어 부쩍
회사 일도, 앞으로의 계획도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그림은 없고
막연한 방향만
생각 속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더 부딪혀보지 않는 선택이
혹시 포기나 체념은 아닐까,
흐름을 따른다는 말로
무언가를 내려놓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의심 앞에서
나는 '순리'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순리는
세상에 복종하는 태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아무 방향 없이
달려가는 무모함을
용기로 착각하지 않는 것,
지금의 몸과 마음이
더 이상 가지 말라고
말해주는 방향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 것.
그것이
순리라는 이름에
더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남의 속도에 맞추느라
내 몸을 혹사하지 않는 것,
어긋난 방향임을 알았을 때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
그 또한
삶을 책임지는 방식일 수 있다.
남의 시선을 기준 삼아
살 필요는 없다.
남이 정해 놓은 속도에
내 삶을 끼워 맞출 이유도 없다.
누군가와 경쟁하며
더 많이 가지려 애쓰는 일도,
괜한 의식으로
쓸모없는 걱정을 늘려
스스로를 소모할 이유도 없다.
내 의식이 흘러가는 곳,
내 몸이 향하는 자리,
지금의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
아마도 그것이
지금은
내 삶의 순리일 것이다.
자연 앞에서
계절을 따르듯,
삶 앞에서도
흐름을 따르는 태도.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고,
포기가 아니라
방향을 지키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리다
다시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타는 것 또한
삶이 허락한
자연스러운 순리일 것이다.
그 단순한 사실을
오늘 아침,
옷장 앞에서
다시 한번
마음에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