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쓰러져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
누구나 살면서 힘들거나 넘어질 뻔한, 넘어진 적이 많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그리고 그 과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중이다. 벌써 스무 살이 넘은지도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대학 입학 처음 했던 새내기 시절에 머물러있는 듯하다. 가끔 나이를 자각하고 나면 새삼 믿기지 않고 실감 나지 않는다. 여전히 목표한 길이 남았고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기에 계속 꾸준히 성장해야 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뭐든 진행하고 이루고 싶은 걸 꼭 언젠가는 이루고 마는 성격인 나는 가끔 그런 내가 힘들고 꽤나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나 스스로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성향이 강하다. 자존감이 높고 남들과 나를 비교 선상에 놓지 않으며 항상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성실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성향이 도가 지나치면 내가 만들어놓은 '이상적인 나'에 못 미칠 때의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 우는 때가 참 많았다. 지금 4학년을 앞둔 시점에서 보면 그땐 왜 그리도 울 일이 많았나 싶다. 하지만 앞으로도 난 또 울 때가 생길 것이다.
어라? 요가 수련 일지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갑자기 '나'의 이야기를 이리도 길게 서두를 장식하는 걸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여러 차례 강조를 한다. 요가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수련'이라고. 그리고 그 수련 속에서 요가를 대하는 나의 태도, 감정 등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를 마주하고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요가를 한다는 건, 곧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한 때 요가를 집중적으로 하지 않을 때. 일상 속 여러 가지 외부적 요인들에 의해 나의 마음은 이리저리 요동치고 휩쓸리며 흔들려 쓰러지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요인들은 외부적인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새삼 요가를 수련하며 최근에 깨달았다. 외부적인 요인들이라 하면 인간관계나 날씨나 환경 등등이 될 수 있겠다. 나는 내가 지쳐 쓰러지고 힘들 때 그 원인을 항상 외부에서 찾았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 나의 마음 상태였고, 나를 힘들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나에게서 오는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자, 다시 나의 성향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나는 나를 그동안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었는가. 나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함부로 대하고 더 헐뜯고 이상적인 기준에 못 미쳤을 때 더 실망하고 그러지 않았나.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보다 '나'이기 때문에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고 대하기가 더 편하니까. '내'가 '나'라서. 암묵적으로 폭력적인 상황을 나 스스로가 자처하고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어느 날 요가 수련할 때 한 선생님의 센터링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선생님께서 무언가 안 좋은 일을 당하셨는데 그날 수련 때 자신의 마음속에서 '괜찮다'란 한 마디가 들리셨다고. 수련 중 누군가가 말할 리가 없고. 그렇다고 선생님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말 한마디는 바로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한 말인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묘하게 공감이 되었다. 내적인 말 한마디가 들린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우울하거나 울적할 때 요가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감이 채워지고 자기애가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가만히만 있어도 나 자신이 아주 사랑스럽고 좋다. 그런 경험은 요가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 했을 그런 경험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설령 내가 스스로에게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요가를 하고 나면 나는 정말로 '괜찮아진다.'
수련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괜찮아. 괜찮아.'라고 암시를 하는 듯하다. 한 동작 한 동작을 할 때마다 나는 나와 교감을 하며 한 손, 한 발짝 나아간다. 비록 매트 위가 그리 넓진 않지만 내게 있어 마음의 넓어짐을 가져다준다. 내가 오롯이 나와 함께 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구나. 힘이 되는구나.
나는 그냥 나로서 괜찮구나.
요가 수련을 하면 많은 것을 얻어가고 느끼지만 그중 소중한 것 중 하나는 '나'는 '나'만이 위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란 걸 깨닫는 것이다. 남들이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나 자신이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나는 힘을 잃는다. 남이 결코 '내'가 되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계속 나 스스로를 위로해주어야 한다.
무기력해질 때. 지쳐 쓰러져 울고 싶을 때. 아무것도 결실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화가 나 미쳐버릴 때.
그럴 때 스스로에게 한 마디 건네보자. '괜찮다'라고. '나'이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하지 못했을 그 한 마디.
우리는 어쩌면 그 한 마디를 스스로에게 건네지 못해 울적한 하루를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가 철학에서 제일 중요하게 배우는 것이 '아힘사' (산스크릿어로 비폭력을 의미한다)이다. 폭력적인 것은 물리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가하는 심리적인 것도 폭넓게 포함될 수 있다. 아힘사는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남에게뿐 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 요가 철학을 알려주신 요가 선생님께선 이를 이렇게 알려주셨다.
사랑하라. 비폭력은 사랑이다.
'나'를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나를 위한다는 것. 나를 존중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 남들의 언어는 사실 그다지 와닿지 않다. 나는 나이기에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존재는 나 자신이란 걸, 수련을 통해 배운다.
오늘 하루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기를.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