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수련

지금, 느낄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by 이소연
KakaoTalk_Photo_2021-11-19-21-51-32.jpeg 아무도 없을 때 비 오는 날 요가원의 모습.


나는 브런치에서 글 쓸 때, 몇 번씩이고 다시 글을 읽고 읽고 읽고서 퇴고를 몇 번 거치고 며칠 있다 다시 읽어보면서 그제야 나의 마음이 괜찮으면 그때 글을 발행한다. 그래서 사실 글을 쓸 때와 글이 올라가는 날이 일치한 적은 별로 없다. 그리고 특정한 날과는 상관없이, 내가 계속해서 생각하고 느껴왔던 걸 글로 표현했기에 특정한 시간대라는 건 나의 글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오늘 글을 쓰고 오늘 글을 발행해야만 되는 글이다. 그런 날이 있다. 왜냐하면, 오늘의 내가 겪어서 오늘 이렇게 글로써 표현하고 발행해야 비로소 '오늘'이기에 가능한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번 주의 나는 아주 마음이 엉망진창이었고 오늘의 나는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졸업작품 제작에 참여했던 아는 선배의 졸업작품이 티브이에 방영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번 주 나는 아주 들떴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배의 작품과 인터뷰를 눈에 담았다. 나도 내년 졸업작품을 무사히 잘 만들어서 저렇게 보람찬 경험을 해보고 싶단 욕구가 마구 솟던 참이었다. 선배의 인터뷰 순서가 끝나자, 내게 상처를 줬던 타인의 모습과 인터뷰도 같은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약간의 충격과 묘함을 느꼈다. 내게 상처를 줬던 사람이 자기가 잘났다는 듯 떠들고 티브이에 나오는 모양새는 충분히 역겨웠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의 모습과 티브이에서 번지르르하게 나온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처음으로 그날의 나는 세상의 아이러니함을 몸소 실감했다.


겉으로 나는 당당하고 괜찮은 척, 쿨한 척 있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의 근황을 전혀 궁금해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나는 오늘의 내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착실히 해나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된 모습은 너무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마음과 감정이 뒤섞였다.


'왜 쟤가...?'


특별할 것도, 특출 난 것도 없었는데.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나의 머릿속과 마음속에선 빙글빙글 맴돌고 이윽고 그 타인에 대한 미움과 질타가 내게로 향했다. 그때의 나는 왜 저 사람과 어울렸지? 나는 왜 그 사람에게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기만 했지? 왜? 왜? 왜? 왜.


그렇게 며칠 내 마음과 속을 들끓고 나니 나는 급격히 힘들어졌다. 그리고 오늘의 수련이 아주아주 고될 것임을 예측했다. 처음 오전 수련은 힘이 들었다. 허벅지는 터질 것 같았고 가슴을 열려고 하면 복부가 아우성이었다. 나의 몸도 뻣뻣하고 나의 마음도 경직이 되어 참으로 고달픈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전 수련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느낄 수 있는 것에 집중하세요. 지금이라서. 지금 밖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에 계속 의식을 집중하고 느끼려고 하고 호흡하려고 하세요."


나에게 마음속 깊이 울리던 그 말. '지금'. 지금의 나는 무얼 하고 있나. 그래. 요가 수련에 왔잖아. 수련을 하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지? 그래. 현존. 지금의 나와 지금에 함께 있는 것. 함께 하는 것. 내가 그토록 들어왔고 노력해왔고 계속 지키려고 하는 그것. 그런데 오늘의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지?


막판에 와서 나는 제일 어려운 아사나를 수련할 때 돼서야 오롯이 집중을 내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하는 나를 본 선생님께서 내게 도움을 주러 오셨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약간의 도움을 주러 오셨다고 한다. 나는 스스로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선 나의 가능성을 보신 모양이다. 선생님의 따스한 핸즈온과 그 손길, 그리고 격려가 내게 벅찬 응원과 위로로 다가왔다.


오전 수련이 끝나고서 나는 요가원에 오기 전보다 평온한 상태로, 조금은 행복한 모습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후 수련을 하기 전에 나는 명상을 했다. 짧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진지하게 임했다. 그랬더니 어디선가 (아마도 나의 마음속?) 한 마디 한 마디씩 웅웅거렸다.


'넌 지금도 잘하고 있어. 네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무딘 사람이 아니야. 넌 그 사람과 있을 때에도 너의 할 일을 잘 해냈잖아? 그리고 그 일은 너의 멋진 경력사항 중 하나가 되었지. 넌 충분히 이성적이고 단단해.'


'네가 수동적인 사람이었다면, 네 스스로 그 사람이 너와 맞지 않는 사람이란 걸 단번에 깨닫고 그 사람과의 교제를 단칼에 자를 수 있었을까? 그건 네가 똑 부러지고 자기 기준이 명확히 세워진 사람이란 증거야.'


내가 잊고 있던 나의 모습들. 내가 스스로이기에 잘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과소평가했던 모습들. 하지만 마치 나 스스로를 내가 위로하듯, 들려온 이 말들이 어찌나 신비롭고 새롭게 느껴지던지. 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감고 있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바로 그 순간 눈이 떠졌다. 어쩌면 이 눈물이 나의 미련과 안 좋았던 마음들 그리고 자책감이 녹아져 나왔는지도 모른다. 눈물을 흘리고 나니 마음속이 어쩐지 후련해졌다.


결국 나는 요가원에서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정말로 미워했던 건, 내게 상처를 준 타인이 아니라. 그 타인에 수동적이었던 내가 싫었던 거였다. 하지만 나는 다시 '나'를 되찾았다. 나쁜 것만이 불쑥 튀어오는 게 아니라 좋은 것도 갑자기 떠오르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후 수련은 조금 더 안정적인 마음과 몸으로 임했다. 조금은 힘들지라도 그 순간순간에 '지금'에 머무르려 애썼다. 그랬더니 나는 조금씩 나의 몸과 마음이 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사바아사나인 송장 자세, 이른바 시체 자세에서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모순적이게도 시체 자세는 요가 자세들 중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는 자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에 '죽음'과 가장 가까운 자세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오늘 여기서 '내가 살아있음'을 알아차렸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두근거리는 몸의 혈관들. 나의 땀이 흐르는 피부결과 두근거림에 맞춰 미묘한 움직임과 진동, 반동을 일으키는 나의 몸 구석구석들. 오로지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느껴지는 것들. 느낄 수 있는 것들. 그렇게 나는 오늘의 수련을 무사히 마쳤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고통스러운 과거와 얽혀있는 상대를 본다는 건 역시 익숙지 않은 일이다. 그게 어떻게 어떤 식으로든 마주할 수밖에 없다면, 마주해야 한다. 나의 감정은 마치 날씨와도 같아서, 그 전엔 폭풍우와 비가 몰아치다가 오늘에서야 서서히 맑아졌다. 사람이기에 받는 충격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아직도 내가 그 과거에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리고 마주했다. 명상을 통해 나는 나의 마음속 위로의 말들을 받았다. 그 말들을 통해 잊고 있던 나의 모습을, 수련을 통해 잊고 있던 나의 태도를 깨닫게 되었다. '지금'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게 있다. '지금'.


지금 당신은 무엇을 느끼고 있습니까. 현재의 '나'와 함께하시나요?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줄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기를. 오늘도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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