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휴학, 그 내면엔

요가도 창작도 나도 포기할 수 없었다

by 이소연

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중 나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두 번 휴학을 하게 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휴학은 계획 상 한 번만 할 것이었다. 하지만 휴학 1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고, 요가 지도자 과정이 나의 첫 휴학 계획 상에 있었으나 요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서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나의 첫 휴학은 여러 가지 도전들을 달성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요가와 잠시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요가를 하지 않는 시기가 길어질수록 요가에 대한 애정도 사그라들고 당장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노도 생기는 등, 여러모로 탐탁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


요가를 몇 년이나 했는데 이렇게 금방 그만둬질 수가 있는가. 사람도 언제 이별하고 연을 끊을지 모르는 게 인생인데 나는 그동안 너무 순진무구했다. 당연히 요가를 멈출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했고 계속할 수 있는 게 요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내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렇게 아름 답지 많은 않았던 것이다. 창작을 계속 해오면서도 내심 나의 마음 한 구석엔 요가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같은 학번인 동기들이 졸업작품을 준비하며 아는 선배의 졸업작품 작화를 도와주고 있을 때. 졸업작품을 진행하는 것을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본 나는 비대면으로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실감하고 있었다. 간접적으로도 느껴지는 학생들의 노고가 체감이 되었다. 졸업을 앞둔 친구들은 내게 비대면으로 작품을 제작한다는 건 너무 힘들고 지친다며, 휴학을 권유했다. 학교는 코로나로 비대면 체제에 들어갔고 전면 비대면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졸업을 해야 하는 4학년들은 교수님들과 직접 만나 상담도 하고 논의도 해야 하는데 거의 만날 수 없어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었다.


엄청난 아비규환의 상황을 본 나는 문득 엄마에게 말씀드려야겠다고 결심이 들었다.


휴학을 해야겠다!


물론 무턱대고 휴학을 할 순 없었다. 그에 따른 마땅한 대안이 있어야 했고 어떻게 1년을 또 효율적으로 시간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나는 그동안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요가'가 떠올랐지만 이야기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나의 요가적 여정을 응원해준 든든한 존재였기 때문에 먼저 내게 요가 지도자 과정을 언급하셨다. 그리고 쉽지 않았을 또 한 번의 휴학을 허락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포기하고 잠시 제쳐둔 요가 지도자 과정을 수강하기 위해 1년 휴학을 결정했다. 코로나로 상황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고, 비효율적으로 졸업작품을 진행하느니 그 시간을 벌어 '요가'에 투자하자는 게 모녀의 결심이었다.


요가원.jpeg 현재 다니는 요가원의 바닥. 내가 항상 수련할 때 바라보는 공간이다.


요가가 없었다면 나는 미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과장된 표현 같은가? 그런데 전혀 아니다. 이 말은 나의 진심이다. 척박한 미대 입시 속에서 나는 나를 잃지 않고 치열하게 경쟁 속에서 살아갔다. 요가의 힘을 깨닫지 못해도 요가를 놓지 않을 수 있던 건, 요가가 내게 주는 치유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창작은 아주 치열한 세계이다. 남들과 비교도 하고 당하기도 한다. 항상 새로운 것에 눈이 띄어있어야 하며, 안일하게 머무는 순간 새로운 존재들에게 뒤쳐진다. 그만큼 항상 열려있어야 하며 깨어있어야 한다.


한 곳에만 고여버리면 그 물은 썩는다. 창작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한 생각으로만 판단하고 모든 걸 하나의 기준으로만 바라본다면 그 사람은 창작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생각보다 미술이란 분야는 매우 거칠고 험난하다. 낭만적이지 않으며 많이 힘들다.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이 살 얼음판 같은 창작의 세계에서 나는 아주 험난한 시간들을 보냈다. 입시에 실패한 사람들. 미술이 쉬워 보여 쉽게 입문했다가 된통 당해버리는 사람들. 입시에 학을 떼 미술을 포기하는 사람들. 여러 부류의 사람들도 보았다.


그리고 미대에 입학해도 그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도태되고 뒤쳐지는 사람들은 존재했으며 처음의 마음가짐을 잃고서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미대에 어찌어찌 입학을 했으나, 자신의 상상과 괴리가 있어 절망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자퇴하는 사람들도 간간히 있었다. 다들 창작이라는 꿈을 가지고서 이곳에 왔을 텐데 어째서 그 꿈을 가졌던 자신에게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창작을 놓지 않았다. 더욱 그 꿈을 크게 부풀렸다. 요가를 하면서 남들의 의식과 생각에 흔들리지 않고서 나만의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서 내릴 수 있었다. 요가를 하면 나를 알게 되고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어떤 걸 느끼는지 더 잘 알게 된다. 수련 속 매트 위에서의 나의 모습이 곧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요가 선생님들께선 요가 매트 위에서 수련하는 모습만 보아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쌓인 수년간의 몸의 언어가 요가 수련 속에서도 그대로 보이기 때문일 런지.


요가를 통해 깨우치게 되는 몸의 감각, 감성도 창작에 큰 영감을 가져다주며 요가 자체로 내게 여러 가지 창작의 갈래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요가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돋보기 같은 존재이며 나는 나로서 괜찮다고 알려준다. 치열한 창작의 삶 속에서 나는 나를 놓지 않고 요가와 함께 지켜나갔다. 그와 동시에 창작을 하는 나를 꾸준히 지탱했다. 어떤 아픔 속에서도 절망만 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기 위해. 그래서 더욱더 앞으로 도약하기 위해. 나는 '창작'과 '요가'를 통해 결국 '나답게' 있을 수 있었다.




이런 내가 '요가'를 하기 위해 다시 두 번째 휴학을 하게 된 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인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 다시 돌고 돌아 요가에게로 왔으며 지금도 행복하게 수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학을 두 번이나 하면서 남들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요가 때문에 두 번이나 해야 하냐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냐고. 나는 그렇다고 당연히 대답할 것이다.


나는 창작도, 요가도 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휴학을 결심했다.



'나'라는 존재는 창작도, 요가도 없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 이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요가가 있었기에 창작을 할 수 있었고 창작을 하면서 나는 행복을 느꼈다. 내가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들이 내 곁에 없다면, 그게 '나'라고 할 수 있나? 그게 진정한 '나'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나? 나는 삶을 크게 바라보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을 느끼지 않는 삶엔 무엇이 남아있겠나. 그렇기에 나의 최종적 목표는 '행복'이며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을 느낄지 가장 잘 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계속 바라보고 마주하기 때문에. 요가는 내게 신체적 뿐만이 아닌 심적으로도 구원을 안겨줬다. 요가에 대해 짤막한 나의 깨달음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가를 하면, 가장 낮은 부분에서부터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말은 무엇이냐 하면, 수련을 하면 요가 바닥을 자주 보게 된다. 바닥면이 나와 가장 가까운 지점이며 나의 몸이 계속 밀착하는 부분이다. 가장 낮은 지점부터 나는 수련을 하게 된다. 마치 내게 '겸손'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높은 곳에선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 수련을 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바닥을 바라보면 나와 지금 맞닿아 있는 이 지점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가장 낮은 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전체를 바라볼 수 있다. 요가원의 전체 공간이 보인다. 그렇기에 나 자신도 이 바닥에서부터 바라보는 걸 연습하려 한다. 요가는 내게 이런 점을 가르쳐 준다. 그렇기에 지금도 계속 수련을 해야 하는 이유다.

이전 06화요가 공백기를 가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