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공백기를 가지며

갑작스러운 요가와의 이별 그리고 변화된 창작세계

by 이소연

요가 예찬을 연신 열심히 쓰고 있는 내게도 요가를 하는 데 있어 '공백기'가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계속 해왔던 요가였기에 한 번도 요가와 이별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익숙해진 상태가 무서운 것이었던가. 요가를 계속할 수 없는 외부적인 상황과 나의 내면적 상태가 맞물려 결국 요가를 잠시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가 첫 번째 휴학을 했던, 두 번째 학년을 마치고서 삼 학년 되기 직전의 해였다. 그동안 많은 정이 들었고 너무 큰 힘이 되어준 요가를 한 순간에 못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마치 터널 속 암흑 길을 걷는 듯했다. 그리고 요가를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요가는 내게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너무나 증오스러운 그런 느낌. 내가 요가를 잠시 그만두게 된 건 자세한 내막은 서술할 수 없지만 요가 원장님의 작은 오해로 요가원을 그만둔 게 큰 원인 중 하나였다. 사람 간의 신뢰를 잃어버렸던 것이 가장 큰 상처가 되었다.


참으로 애석했다. 내게 격려해주고 요가가 얼마나 멋진 존재인지 알려주고 내 몸을 바르게 쓸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 내게 거짓말했다는 사실이 나를 참 미치게 했다. 먹먹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 하는 것처럼 나는 많이 아팠다. 그렇게 잠시 놓게 된 요가의 공백기가 1년 반이나 흘렀다. 그 공백기 동안 나는 대외활동과 여행 그리고 복학 후 학과 생활을 하면서 요가에 대해 점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게 되었다. 희미해져 가는 그 찰나. 요가에 관련된 기사를 봤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당장 할 수 없기에 외면했던 존재를 다시 제대로 마주했을 때, 마음에서 폭발적으로 나오는 나의 열정. 애정. 사랑. 그 모든 것들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요가를 했을 때 자연의 곡선이었던 나의 몸이 점점 아스팔트 위 빽빽한 도시 속 건물들의 직선과도 닮아져 간다고.


그 기분 나쁜 변화를 알아차렸을 때, 나는 절망했다. 요가를 필사적으로 외면했던 결과가 결국 나 자신을 점점 굳어지게 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실내에서라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요가 동작들을 조금씩이라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가원에서의 깊이 있는 수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자꾸만 바쁜 현실에 범람되었다. 나는 살고자 했지만 살려고 버둥거리지도 않았다. 그건 비유를 하자면 이미 가라앉아 심해 속에서 앉아있는데 뒤늦게 물 밖으로 나와 햇살을 보려고 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 심해 속에서 나를 끄집어내려면 얼마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야 할까.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내게 격려와 응원을 아끼시지 않았다.



분명, 그 이전에 요가를 했던 경험들이 너를 단단하게 지탱해줄 거야. 그 경험들은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단다.



나는 막연히 절망할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내 눈앞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 요가를 다시 만날 길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언젠가 다시 만날 요가를 꿈꾸고 그리워하며 나의 과제들을 해나갔다. 그리고 그 과제들을 하면서 나의 창작세계는 조금씩 변화되었다.


sound visulazation 복사본 2.jpg 재즈의 시각화 작업.


작업했던 많은 과제들 중 하나이다. 재즈를 주제로 즉흥적인 시각화 작업을 진행했는데 다양한 질감과 직선, 곡선들이 어지럽게 혼재되어있는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그렸다. 마지막에 좀 더 재즈스러운 색감으로 조정하면서 지금의 최종 이미지가 완성되었는데, 위의 작업이 당시의 나의 상태를 잘 반영해주는 듯하다.



난잡하고 어지럽고 아득하다. 하지만 경쾌하다.


나의 작업 스타일은 보통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서 그 계획을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기에 계산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떤 과제들은 딱딱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업은 다르다. 이때까지 했던 작업들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이번 건 철저한 무 계획성으로 진행되었다. 어딘가 경쾌하고 신나는 흐름이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언젠가 요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나의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지금이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어두워도 괜찮다고. 지금은 지금대로 괜찮다고. 그렇기에 어두운 배경이지만 그렇게 어둡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과제를 끝내고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고서 엄마는 내게 요가 지도자 과정을 다시 언급하셨다. 항상 엄마는 나의 요가적 여정을 응원해주셨다. 잠시 포기하고 잊고 있던 나의 꿈을 다시 엄마가 일깨워주었다. 2021년엔 조금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는 전망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고, 이 상태로 학교도 못 나가는 상태에서 졸업작품을 진행해봤자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어 휴학을 한 번 더 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결정을 엄마는 지지해주셨다. 그리고 다시 요가를 하기로 결심했다. 요가 지도자 과정을 수강하기로, 그렇게 나는 휴학을 다시 하게 되었다.




정말로 다시 요가를 만나 신기하게도 요가적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지금의 느낌은 마치 긴 터널의 암흑 속에서 빠져나와 빛을 본 것 같다. 그 암흑 속에서 나는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절망도 겪었다. 마음껏 겪었기에 더 이상의 후퇴도 후회도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그 암흑 속이 괴롭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위의 작업물이 당시의 '나'를 말해준다. 경쾌한 암흑 속에서 나는 기다렸던 것이다. 요가를 다시 할 때를. 그리고 다시 요가를 만나 더욱 행복하다. 어두운 것은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밝은 빛을 다시 만났을 때, 그 빛이 얼마나 밝고 눈이 부신지를 실감 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공백기란 긴 터널의 암흑 속을 지나, 요가라는 '빛'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