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댁에서 분갈이하다

교수님의 식물 분갈이 해보신 대학원생 계실까요?

by 이소연



나의 식물 덕질과 식집사로서의 삶은 2020년 코로나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나의 대학과 서울로 학원을 다닐 것을 고려하여 수도권으로 마침 이사도 했겠다, 코로나로 외부 활동이 멈추고 자제되던 시절. 마실처럼 나갔던 화원에서 나는 식충식물인 "파리지옥"을 들여오게 되었고 그것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식물 키우기를 이어가고 있다.


엄마는 이럴 줄 알았으면 파리지옥조차도 들이지 못하게 했을 텐데라며 한탄을 하셨지만, 나는 언젠가 식물을 키웠을 거란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거니와, 예전부터 식물 기르기에 관심이 많았고 플랜테리어가 주는 감성에 대한 동경과 식물을 가꾸면서 느껴지는 자연을 맛보고 싶은 욕망 등등 언젠가는 하고 말지 않았을까 한다. 그냥 예상보다 좀 더 빨리 그때가 온 것뿐.


그런데 이젠 하다 하다 한국에서의 가드닝도 모자라 미국에 유학까지 와서 지도 교수님 댁의 식물들까지 봐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때는 교수님의 식사초대로 불려 갔을 때였다. 미국식 집답게 매우 크고 넓은 집이었는데 곳곳에 배치된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전부 선물로 받은 화분들이었고 꽃도 있었고, 관엽식물, 다육이 등등 참으로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그날 나의 눈 레이더에 포착된 한 화분이 있었다.


"어라, 교수님 이거 곰팡이 핀 것 같아요."


그렇다. 통풍이 잘 안 되는 입구에 위치한 화분이었는데 그 화분 하나에 마란타와 홍콩야자와 정체 모를 잎과 여러 식물들이 한 곳에 옹기종기 심긴 분이었다. 심지어 유약분이어서 한번 물 주면 환기가 잘 되지도 않는 데다가 한꺼번에 4~5종류의 식물들이 한데 심겨있으니 당연히 통풍이 잘 될 리 없다.


그렇게 흙 겉 표면에 소복한 눈송이 같은 곰팡이가 피어있었는데, 곰팡이가 식물에게 엄청난 해를 가하는 건 아니지만 외관상 보기에도 안 좋고 결국 흙 표면을 막기 때문에 바람이 통하지 않아 장기적으로 식물에게 좋은 건 아니었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어머! 소연 씨, 어쩜 그렇게 식물에 대해 잘 알아요? 그럼 이거 어떻게 해야 해요?"


한번 발동된 식집사 모드 ON 스위치.


"그럼 제가 분갈이해 드릴까요?"


"어머, 정말?"


그렇게 교수님께서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서 나는 대대적인 식물 분갈이에 들어갔다. 교수님께 새 흙과 배수층을 만들 약간의 멀칭 재료들, 그리고 빈 화분들을 요청드렸고 교수님께선 흔쾌히 본인이 가지고 계신 모든 식물용품과 물품들을 꺼내오셨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나는 능숙하게 늘 그렇듯, 식물들을 가쪽에서부터 살살 흙을 파 내어 안전하게 뿌리까지 완전히 식물들을 꺼내어 하나씩 분리했다.


그리고 각 화분마다 배수층을 만들어 주었고, 그 위에 약간의 흙들을 덮어 식물을 넣을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1개의 화분이 5개가 되는 마법이 일어났다.


"교수님, 이 아이는 계속 곰팡이가 피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재 너무 축축해서 건조를 시킨 다음에 심겨주세요. 그리고 과산화수소로 계속 소독을 해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교수님께선 내가 분갈이하는 동안 옆에서 이것저것 도와주시고 챙겨주셨고 뒷정리 마무리도 함께 끝냈다.


그렇게 교수님 댁의 식물식구들이 순식간에 늘어난 하루였다.


그 이후로 교수님 댁에 방문할 때마다 교수님께선 지인분들께 자랑스럽게 내가 분갈이했다며 언급하신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교수님께서 한 식물을 직접 분갈이하셨다고 했다.


졸지에 하다 하다 미국에 까지 와서 교수님 식물 분갈이까지 하는 못 말리는 식집사 대학원생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주변에 식물의 멋짐을 전파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한 행복이 있으랴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지금, 이사 온 미국 집에서 나는 여전히 식물을 키우고 있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나의 식물 덕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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