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낯선 타지에서 만난 뜻밖의 따뜻한 마음씨, 정.
흔히들 미국이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개인주의와 서로의 삶에 간섭을 하지 않는 평행선을 이루는 수평적 관계를 떠올린다. 나 또한 그러했고 실제로도 생활이나 학교나 모든 면에서도 그러했다. 서로에게 간섭하는걸 예의가 아니라고 하고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선을 긋는 것도 당연하다. 모든 부분에서 서로 영역을 침범해서도 아니 되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 그 이면엔 어딘지 차가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기록적인 Winter Storm 눈 폭풍우가 미국 동부를 덮쳤을 때, 나는 뜻밖의 '정'을 느끼는 경험을 마주했다.
한국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할 만큼 엄청난 눈 폭풍우가 지나간 이후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집과 나의 차에 쌓여있던 터였다. 코네티컷 주는 운전하는 차량에 눈이 뒤덮인 채로 운전하면 불법이기 때문에 꼭 외출 시 차의 옆면과 윗면에 쌓인 눈은 다 털고서 운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나의 차는 거의 눈 무덤에 쌓여있었고, 그 양은 평범한 여성 혼자서 치우기엔 엄청난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일단 있는 눈 치우는 도구를 들고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열심히 삽질하고, 자동차 뚜껑에 덮인 눈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마침 건너편에 이웃 동에 사시는 남성 주민분도 열심히 본인 차량을 치우고 계셨다. 그리고 그분은 생각보다 일찍 차량 청소를 마치시고서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눈을 치우기 전까진 외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안간힘을 다해 눈을 파내고 쓸어내렸다. 그럼에도 엄청난 두께의 눈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열심히 쓸고 있었다.
그때였다.
"Can I help you?"
아까 봤던 그 남성 분께서 삽을 들고 계셨다. 성큼성큼 삽을 쥐고서 내게로 다가오는 그 모습에 나는 적잖이 놀랐으나, 나는 일단 눈부터 치우고 봐야 했기 때문에 냅다 "Thank you!"를 지르고 봤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미국인 남성 분과 함께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분은 능숙하게 삽으로 차량 주변부를 쓸었고, 차 밑 부분 쌓인 눈까지 쓸어내셨다. 그리고 차량 위에 두툼하게 쌓인 눈을 삽으로 퍼내어 한쪽 구석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나는 눈 청소용 브러시로 열심히 차량에 쌓인 눈을 치우고, 그 남성분께선 주변부 눈부터 삽으로 퍼내는 작업을 했다. 마치 처음 일하지만 제법 손 발이 척척 맞았다. 그렇게 장장 20~30분 동안 서로 말없이 땀을 흘리며 연신 눈을 쓸어내렸다.
눈을 다 치우고서 내가 멀뚱하게 있으니 그제야 그 남성분께서도 나를 바라보며,
"Are you all good?"
이라고 물어보셨고, 나는 "Yes, thank you so much."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나 친절을 베풀시다니. 한국인으로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나는 아파트 몇 호수 사시는지 여쭸고 그분은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만 하셨다.
"당신이 안전하게 차를 몰고 다닐 수 있게 되면 상관없어요.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안전 운전하세요!"
그분의 말을 의역하자면 이런 의미였다. 그리고 홀연히 집으로 사라지셨다.
나는 혹독한 추위와 폭설 속에서 한국에서도 느끼기 힘들었던 이웃 간의 '정'을 경험했다. 이 머나먼 타지, 미국에서 말이다.
서로에게 간섭 안 하기로 유명한 나라에, 심지어 동양인 비중이 월등히 낮은 백인들만 가득한 이 코네티컷 땅에서 이러한 조건 없는 친절과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이라니.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던 조합과 경험이었지만 그래서 사람은 여전히 살 맛 나나 보다.
나 또한 언젠가 도움에 처한 어려운 이웃을 볼 때 당당히 그 남성 분처럼 삽을 들고서
"Do you need any help?"라고 말할 수 있는 이웃이 되어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하는 하루를 보냈다.
이웃 간의 정은 국경이 없고 나라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