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가만히 두세요

가만히 두면 가마니, 손대면 덧나는 식물들

by 이소연



사람들은 생각보다 식물들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괜히 손대지 않아도 될 일까지 손을 대서 일을 그르치곤 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식물들이 약하기만 한 존재라서, 보호해야 할 존재라서, 특히 우리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는 지난 몇 달간 식물들과 공존하며 지낸 결과 단단히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식물들은 강인한 존재고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능력과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존재였다.


이 말은, 우리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고 식물 스스로 안 좋은 상태를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식물이 조금이라도 시들거나 기운이 축 쳐져 있으면 물을 평소보다 더 주거나, 영양제를 주거나, 심지어 분갈이를 할 때도 있다. 정말 식물이 뿌리까지 썩어 들어가서 불가피하게 분갈이해야 하는 응급상황이 아니면, 대부분의 우리들의 성급한 손길은 오히려 식물의 상태를 더 망치거나 악화시키는 때가 많다.


나 조차도 그런 시행착오를 지금까지도 겪고 있다. 식물이 보내오는 과습과 물부족의 신호는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잎의 누렇게 뜨거나 이파리가 축축 쳐져있는 상태를 보면 바로 물을 주기보단 내가 언제 물을 줬는지를 복기하고, 현재 흙의 상태가 축축한지 마른 상태인지를 먼저 확인해 본다.


나는 분갈이하는 걸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식물이 안 좋아지면 곧장 분갈이부터 했다. 그리고 이 방식은 맞을 때도 있었고 틀릴 때도 있었다. 또, 성장세가 급증하여 몸집이 커졌을 때도 분갈이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작년에 기르던 미니 호접란을 그렇게 어이없게 보내버렸다. 나름 3개월 넘도록 우리 집에서 자라던 아이였는데 꽃이 다 지고서 계속 몸집이 불어나자 나는 토분으로 옮겨주었는데 그러고 나서 뿌리가 썩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식집사 노릇을 하면서 섣부른 분갈이와 혹은 나의 판단 미스로 인한 과습 때문에 여럿 식물들을 떠나보내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섣부른 나의 손길을 식물들한테서 거두었다.


우리집에서 현재 3개월째 꽃 피운채로 유지중인 새로운 미니 호접란.


그리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지켜보았다.


식물들의 잎이 상해도, 식물들이 축축 쳐져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랬더니 정말 놀라운 사실은 잎이 누렇게 뜨던 알로카시아와 안스리움이 스스로 과습을 극복하고 새로운 잎을 내주었으며 새로 들여온 호접란 또한 매우 잘 자라고 있다. 최소 4개월 넘도록 얼음이었던 필로덴드론 또한 최근에 새로운 잎을 내기 위해 움트는 중이며, 교수님의 식물 '난'을 좀 더 잘 이해하고자 들여왔던 또 다른 난 종류 또한 새로운 잎들을 연신 틔우고 있다. 심지어 이 식물은 기존에 새로 틔우려 했던 줄기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시들어 버린 상태였다. (그게 꽃인지 잎이었는지는 모른다)


최대한 새로 들여온 식물들은 우리 집이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일주일 넘게 분갈이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었고, 기존의 식물들은 최대한 자라던 환경에서 키우려 노력했다.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자라던 그 자리에서 계속 키우려고 했고 이동은 식물들한테 스트레스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제했다. 특히 햇빛이 모자란 겨울이란 상황에선 더더욱 조심스러운 관찰이 필요했다.


그렇게 정말로 2~3일 뒤에도 계속 잎이 쳐져 있는 알로카시아 녀석들은 흙을 만지고 정말 물을 줘도 되겠다 싶을 때 물을 주었으며 안스리움도 수태 목도리가 바싹 말라져 있으면 그때 물을 주었다. 물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과습으로 인한 상태가 더 안 좋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한 쪽을 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물부족은 물을 주면 금방 회복하기 때문에 바로 물을 주지 않으려 정말 노력했다.


지금은 나의 정신없는 대학원 생활로 바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와 함께 이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살아있는 개체들이라는 점. 그 식물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알리고자 하는지를 좀 더 살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내가 바로 '키우고 있다'란 자만심으로 얼룩진 손길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반자'로서 필요한 부분을 내가 가꾸고 채워주고 인내심으로 그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일일터.


그리고 이 식물들의 강인한 재생과 생존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또한 내재된 스스로의 회복할 수 있는 능력과 살아갈 수 있다는 강인함을 일깨워준다. 이건 꽤나 많은 위로와 힘을 주는데, 우리 스스로 바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에게 내재된 재생 회복 능력의 힘을 잊을 때가 많다. 무언가에 실패하거나 쓴맛을 보는 고통을 겪다 보면 계속 주저앉게 되고 거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다시 도전하고 일어서는 걸 무서워하게 된다. 하지만 식물들이 스스로 본인에게 닥친 문제와 고통을 인내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더욱 큰 성장세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말도 하지 않는 이 조용한 개체들 속에서 대체 어떤 힘이 있길래 이렇게 강인한 능력을 보여주는지 실로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힘이 들고 지칠 때마다 나는 나의 작은 정원 속 식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들에게서 초록빛의 위안과 격려를 받는 듯하다. 자기네들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지만 그것조차 극복하고 지금 잘 자라고 있지 않느냐고.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위기는 충분히 나도 넘을 수 있다고. 식물들은 허투루 성장하는 법이 없다. 잘 자라다가도 성장을 멈추기도 하고, 성장을 멈추면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도 있고, 과습으로 뿌리가 썩어 들어가는 치명상을 입다가도 이내 회복해서 더욱 많은 새 뿌리를 내기도 한다.


겉으론 고요해 보이지만 그 속에선 치열한 그들만의 생존법을 우리는 겉으로 봐선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하건, 식물의 성장세가 뜸하거나 아파 보인다던가 심상치 않은 기류가 보인다면


그냥 가만히 둬보자.


일단 가만히 숨고르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봐 보자.


그러고 나서 판단하자.


물을 줄 것인지, 분갈이를 할 것인지, 혹은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식물 위치를 바꿔줄지를.



생각보다 식물들은 우리 생각보다 강한 존재이며 우리가 손대면 덧나는 때가 많다.


그 사실을 나는 식집사가 된 지 5년 차가 되었으나 여전히 기르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았다.

그리고 그 현재진행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니, 가만히 식물을 둬보자. 오늘부터 한 발 걸음치 멀리서.


새로운 잎을 틔우고 있는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