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에 밀려 멈춤을 잊어버린 우리들
우리 요가원에는 원장님이 두 분 계신다. 한 분은 철학 선생님, 또 한 분은 티칭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 이 두 분의 분위기와 수업 방식 그리고 느낌은 아주 상반적이다. 두 분께선 가끔 혹은 자주 제자들에게 자신들의 경험, 깨달음 그리고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시곤 한다. 철학 선생님께선 덤덤히 말씀을 전해주시는 편이라면 티칭을 알려주시는 선생님의 경우엔 좀 더 자신의 감정이 짙게 드러나신다. 그리고 꽤나 솔직하시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시는 편이다. 그러한 태도와 이야기 속, 나는 선생님의 진심을 마주하고 공감할 때가 많다. 이번엔 내 마음에 좀 오래 남아있던 이야기를 한번 짧게 적어볼까 한다.
티칭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선 좋은 책의 글귀들을 많이 알려주시는데, 내가 기억하기론 대충 이러했다.
한 제자와 스승의 대화 중,
제자가 말했다.
" 너무 바빠서 미처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잠시 멈춰서 오늘의 햇살이 따스한지 느껴볼 겨를도 없이 바빴단 말이냐."
그리고 선생님께선 뒤이어 말씀하셨다. 우리는 너무도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 '멈춤'을 잊어버린다고.
그런데 그렇게 바쁘지 않으면 마치 큰일 날 것처럼 우리의 일상은 바삐 흘러간다.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정신 차리고 보면 정작 자신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선생님께선 그러한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셨다. 들으면서 나도 참 적잖이 공감이 되었다. 나도 때론 '현재'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에 쫓겨 현재를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현재의 나와 함께한다는 것. 어디론가 계속 빠르게 흘러가는 중이라면 잠시 멈춰서 오늘의 하늘이 어떤지 위를 향해 쳐다도 보고, 오늘의 햇살이 따스한지 한번 느껴도 보는 그런 잠시 동안의 멈춤을 가져보는 것. 요가할 때 '현존'을 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는 일상에서도 그리 거창한 단어가 아니다. 그저 지금의 나와 함께 현재를 바라봐주는 것. 오늘의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그리고 느꼈나.
요가를 할 때에도 나의 발의 접지는 잘 이루어지고 있나. 나의 내전근을 통해 다리의 기반이 잘 다져졌나. 이러한 작은 변화, 움직임들로부터 천천히 이루어나가는 것. 나의 일상에선 오늘의 날씨가 어떠했는지, 나는 어떠했는지를 바라보는 것. 그런 작은 것들에서부터 시작한다.
막상 글을 쓰면서 오늘 오후 4시의 하늘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아, 참으로 애석하다. 이렇게나 좋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무심코, 오늘의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음이. 바쁘게 흘러가는 생활 속에서도 요가에서 '현존'과 '멈춤' 그리고 '머무름'을 수련을 통해 적용하는 것처럼 이러한 요가의 태도, 배움을 적용시키려 계속 노력해야겠다. 적어도 오늘의 하늘은 어땠는지 정도는 기억할 수 있도록.